엄마, 이모, 여동생의 제주여행 가이드
# 이호테우 해변 - 하귀 애월 해안도로 - 한담 해안산책로 - 카페 봄날
# 도깨비 도로 - 제주마 방목지 - 가시 식당 - 김녕 미로공원 - 스위스 마을 - 서우봉 산책
오빠, 오늘은 어디 어디 갈 거야?
동생은 정말 아무런 여행 계획이 없었다. 자기는 원래 느긋하게 쉬면서 다니는 걸 좋아한다며, 제주도에서 몇 주씩이나 지내고 있는 오빠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냐는 거였다. 맞는 말이긴 했다. 녀석이 엄마와 이모를 모시고 온다고 했을 때 여행 코스며 이동 수단을 걱정하지 말라고 한 건 분명 나였다.
둘째 날 아침, 차를 타고 호텔 앞으로 가서 셋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나온 동생의 손에는 편의점에서 산 빵이며 우유가 담긴 봉지가 있었다. 조식 대신 잠을 택했다고 자랑하는 녀석이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조식 쿠폰은 내가 쓸걸 그랬다며, 건네받은 빵을 한 입 크게 베어 물고 우물우물 불평했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제주 지도를 들춰보며 이제 어디로 갈거냐며 눈을 반짝이는 동생이었다.
어제와는 반대로 서쪽으로 향했다. 역시 다른 어느 곳보다 애월 부근을 일찌감치 안내하고 싶었다. 가던 길에 제일 먼저 이호테우 해변에 들러서 목마등대를 구경하며 바닷바람을 쐬었다. 이렇게 잠깐 차를 멈추고 발자국 도장과 사진을 찍는 일이야 말로 여행에 있어 워밍업이라 할 만한 게 아닐까.
하귀-애월 해안도로를 천천히 달렸다. 제주에서 가장 유명한 드라이브 코스로, 내가 참 좋아해서 벌써 몇 번이나 달려본 도로라고 설명하며 한껏 가이드 흉내를 내봤다. 모닝이 오픈카가 아니라서 처음으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바닷가를 잘 볼 수 있을만한 널찍한 곳을 찾아 잠시 차를 멈춰 세웠다. 모자를 쓴 엄마와 양산을 쓴 이모가 나란히 있는 모습이 귀엽고 정겨워 보였다.
한담 해안산책로에 도착, 주차장에 차를 대고 봄날 카페까지 걷는 익숙한 코스를 안내했다. 몇 번이나 들르면서도 주의 깊게 보지 않던 석상 앞에서 이번에는 사진도 찍었다.('물허벅여인상'이었다)
봄날 카페에서 시원한 주스를 마시며 분위기를 만끽했다. 여동생이 예뻐 보이기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인데, 애월 바다를 배경으로 예쁜 곳에서 사진을 찍으니 다르긴 달랐다.
몽상 드 애월의 반사 유리에서 다 같이 거울샷도 하나 찍고,
돌아오는 길에 한담 해안산책로에서 삼각대를 놓고 네 명 모두의 예쁜 사진도 남겼다. 원래는 카약을 탈 생각이었는데, 내가 재밌다고 남들도 무조건 좋아할 거라는 예상은 금물이었다. 엄마와 이모가 크게 흥미를 보이지 않으셨다. 동생도 생각 외로 시큰둥했다. '별로 힘들지 않고 좋은데...'라고 몇 번 중얼거렸으나 이미 다들 차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가이드로서 플랜 B의 중요성을 다시 깨달았다. 카약을 타면서 최소 1시간가량을 느긋하게 보내려던 계획을 바꾸고 보니, 다른 장소를 한 군데 정도 더 가야 시간이 뜨지 않겠다는 판단이 들었던 것이다.
점심 식사로 생각해 둔 식당으로 가려면 내륙을 가로질러야 했다. 가는 길에 제주마 방목지를 들러야겠다는 동선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렇게 가던 중, 일명 도깨비 도로라 불리는 '신비의 도로'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어렸을 때 가족들과 방문했던 곳이었다. 굉장한 기대를 품었지만 별거 아닌 풍경에 실망했다가, 오르막으로 보이는 길이 사실은 내리막이라는 가이드 아줌마의 설명에 갸우뚱했던 기억이 선명했다. 따로 들를 일은 없을 테니 가는 길에 잠시 멈춰 구경하기로 했다.
관광객이 거의 없는 도로는 무척이나 한산했다. 길가에 개 몇 마리가 드러누워 있을 정도였다. 생수통에 남은 물을 도로에 따라 부어서 오르막으로 보이는 길을 거슬러 흐르는지 확인하려 했다. 그런데 남은 물이 모자라서 도로만 살짝 적시고 말았다. 다른 방법도 알고 있었다. 자동차의 기어를 중립으로 놓고 슬슬 오르막인 곳을 따라 올라가는 걸 확인하는 거였다.
어릴 때의 학습이 확실하긴 한가보다. 물도 따라 붓고 자동차로도 경사를 확인하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안내도 없었는데 도깨비 도로에서 잠시나마 되살아난 추억은 확실했다. 또 하나 확실한 건, 다시는 신비의 도로에 가볼 일은 없을 거라는 사실이다.
탁 트인 제주마 방목지의 풍경에 다들 감탄했다. 역시나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장소라며, 말 구경도 구경이지만 서 있기만 해도 그냥 좋은 곳이라고 덧붙이며 모두를 안내했다. 그런데 혼자였을 때와는 왠지 다른 느낌이었다. 마음껏 바람을 맞으며 풍경에 취해 다른 관광객들이 재빨리 사진만 찍고 가는 모습을 안타깝게 여겼던 20여 일 전과 달리, 다 함께 방문할 때는 그런 여유를 부릴 기분이 들지 않았다.
말을 구경하는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을 피해 삼각대로 사진 몇 장을 어렵게 찍고 금세 다시 차로 돌아갔다. 한없이 말만 보고 있기에는 다들 배가 고픈 상태였다. 나만 경치를 여유롭게 누릴 줄 아는 게 아니라 여럿이서 다니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서두름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여행의 상대성'을 깨달았다. 물론 그런 생각에조차 빠져있을 틈이 없을 만큼 나 역시 몹시 배가 고팠기 때문에 서둘러 차를 몰아 식당으로 향했다.
혼자 두루치기 2인분을 뚝딱 먹었던 뒤로도 두 번이나 찾았지만 두 번 모두 휴일이라 애가 탔던 식당, 가시리에 있는 두루치기 맛집 '가시식당'이었다. 4인분이 넉넉히 나온 모습을 보니 너무 행복했다. 엄마와 이모는 함께 나온 '몸국'이 참 맛있다며 고기보다 그걸 더 잘 드셨다. 육식을 좋아하는 나와 동생은 입이 터져라 쌈과 고기를 먹으며 엄지를 추켜올렸다.
다음 코스는 김녕 미로공원이었다. 여자 친구와 워낙 재밌게 놀았던 기억도 있었고, 어른들과 함께 움직이며 즐기기에도 좋은 관광지라 여겨져서 기대가 컸다. 동생이 내가 올렸던 포스팅을 보고는 제일 가보고 싶다는 장소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손에 들고, 누가 제일 먼저 미로를 탈출하나 시합했다. 나는 한 번 와본 곳이므로 제일 나중에 들어가서 천천히 빠져나가겠노라고 말했다.
다들 미로 안에 들어간 뒤 천천히 출발해서 가고 있는데 글쎄 동생이 꼼수를 부리고 있었다. 조경을 위해 쓰였다가 치워지지 않은 사다리가 있었는데, 전체를 한 번 보겠다며 굳이 그 위에서 길을 내려보고 있던 것이다. 하여간에 가끔 보면 내 동생이 아닌듯할 때가 많다. 반칙 쓰지 말고 얼른 내려오라고 했다. 어차피 올라가서 봐도 길은 모르겠다며 반칙은 아니라고 했다. 나는 동생을 이겨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약간 머쓱했다. 두 번째지만 여전히 길은 헷갈렸고, 어느새 이모가 십 몇 분만에 1등, 동생이 또 잠시 뒤에 2등으로 탈출구의 종을 울렸다. 그때부터 나도 서둘러서 운 좋게 탈출하긴 했지만 3등은 3등인 거였다. 길눈이 밝은 이모와, 헤쳐나가는데 거침없는 동생은 나를 비웃었다. 우리 엄마는? 길치 아니랄까 봐 역시 보이지 않았다.
꽤 한참이 지나서야 엄마는 올바른 통과점의 하나인 구름다리에 올라 우리 쪽을 보며 멋쩍게 웃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리 빨리 갔냐며 길 좀 알려달라는데 도무지 방법이 없었다. 내가 웃으면서 미로로 다시 들어가긴 했는데 돌아오는 길을 또 잊을까 봐 사실 걱정이 들긴 했다. 다행히 엄마도 이후로는 헤매지 않고 미로를 탈출해서 같이 나왔다.
1,2,3등 순서대로 나란히 섰다. 저녁은 꼴등인 엄마가 사기로 했다. 1등을 한 이모는 그런 동생을 아이 쳐다보듯 바라보며 계속 웃었다. 넷이서 가보니 성격도 나오고 역시 미로공원은 기대 이상의 꿀잼 장소가 확실했다.
사실 엄마와 이모를 모시면서도 나는 어디 어디를 몇 시에 가겠다는 정확한 계획으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꼭 들러야 할 메인 장소를 정해놓고, 그곳에서 보낼 대략적인 시간과 근처의 맛집만 염두에 둔 채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동선을 바꿨다. 혼자 여행하던 방식을 가이드에도 그대로 적용했던 것이다. 물론 남한테 돈 받고 안내한다면야 그렇게 할 수는 없겠지만, 가족들과 함께하는 여행의 묘미는 역시 자유로운 선택지에 달려있다는 게 확고한 내 생각이었다.
오후도 제법 늦어서 숙소 쪽으로 돌아가다가 들른 제주 스위스 마을도 그러한 선택지의 하나로 방문했다. 어두운 밤에만 한 번 들렀을 뿐이라 낮에는 어떤지 궁금하기도 했고, 아기자기한 건물이 세 여인의 배경으로 괜찮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선택은 옳았고, 비록 작고 볼 게 많지 않은 곳이었지만 알록달록 건물들을 구경하며 잠시 돌아보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동생 독사진도 그날따라 꽤나 여러 장 찍어줬는데 녀석이 다 마음에 들어했다. 지 오빠만 한 찍사를 구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저녁 메뉴는 보말 칼국수와 파전이었다. 제주 막걸리도 한 잔 곁들여 마셨더니 기가 막혔다. 점심을 워낙 잘 먹어서 배들이 많이 고프지도 않았기 때문에 더 적절한 메뉴였다. 특별한 맛집을 찾은 건 아니고, 함덕에서 칼국수 집을 검색해서 가장 눈에 띄는 곳으로 갔다. 맛이 괜찮아서 엄마와 이모가 합격점을 줬다.
식후에는 서우봉을 오르며 산책을 했다. 적당히 중턱까지만 올라도 아래가 훤히 내려다 보여서 좋은 데다, 마침 정자가 하나 있어 거기 앉아서 함께 쉬면서 사진도 찍었다. 엄마와 이모가 그렇게 제주도에 함께 와 계시는 모습에 새삼스레 마음이 좋았다.
엄마의 언니, 우리 이모는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닮았다. 강인하면서도 따뜻한 분이다. 동생인 우리 엄마를 마치 딸처럼 잘 챙긴다. 연약한 소녀 같지만 속 깊은 우리 엄마는 그런 언니를 잘 따르면서 때로는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두 분은 일종의 '성격 균형'이 잘 맞는, 서로를 감싸고 보완해 주는 좋은 자매다. 덧붙이자면 우리 이모는 어려서부터 나를 많이 예뻐해 주셨다. 꽤 나이를 먹고도 나는 이에 제대로 보답한 게 아직 없는데, 제주 여행의 가이드로나마 올해 그렇게 이모를 모실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재작년에 외할머니와 작별하며 나는 뒤늦게 삶과 죽음의 급작스러운 변화를 경험했던 기억이다. 가까운 사람을 그렇게 잃어본 일이 없던 차에 손자를 많이 위해주시던 할머니의 죽음은 내게 많은 후회와 반성을 안긴 변곡점이었다. 그 이후로 내가 크게 철이 들었다거나 달라졌는가 하면 그건 또 그렇지 못하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다만, 어쨌든 외할머니의 부재는 오히려 존재보다 짙은 기억과 흔적임에 분명하다. 엄마와 이모와 함께일 때면, 나는 늘 외할머니 생각이 난다.
아무리 짧은 여행에도 삶의 무게는 반드시 담겨있다고 보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행을 무슨 리셋 버튼인마냥 획기적인 변화로 여기는 건 지나친 이상론이라는 생각이다. 3박 4일 여행의 중반에 이미 나는 다음 해에도 엄마와 이모랑 가까운 곳에라도 꼭 같이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일단은 남은 이틀부터 더 즐겁게 보내기 위해 푹쉬고 계획을 또 잘 짜야겠기에, 그렇게 너무 앞서간 마음은 다시 붙들어 매고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