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패스 다섯 번째, 라이크 크레이지.
★★★☆
2011년 선댄스영화제
- 미국 극영화 부문 심사위원 대상(Grand Jury Prize)
- 펠리시티 존스(여주인공) 연기부문 특별상(Special Juri Prize)
미국 상영 7년 만에 국내 개봉(5.30. 예정)
안톤 옐친(남주인공)은 2016년 27세의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사망
미국 개봉 당시 신인이었던 제니퍼 로렌스의 조연 출연
반전은 아니지만 엔딩 장면의 여운이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영화
라이크 크레이지. 제목처럼 미칠듯한 사랑을 다뤘을 법한 이 영화는 그러나 매우 잔잔한 멜로다. 영화 속 두 주인공 애나(펠리시티 존스)와 제이콥(故 안톤 옐친)은 서로를 미칠 듯이 사랑하고 미치도록 그리워했는지 몰라도, 이들의 사랑을 지켜보는 관객들에게 보여지는 로맨스는 지극히 사실적이고 담담하게 흐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대강의 줄거리를 알고 봐도 무방하다. 어떠한 극의 사건이나 전개에 따라 감상의 몰입과 재미가 좌우되는 스토리 텔링의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라이크 크레이지>는 화면에 드러나는 인물들의 대사와 표정을 통해 그들의 감정을 따라가고 상황에 공감하다 보면 러닝타임이 훌쩍 지나있는 그런 작품이다. 관객들은 이 잔잔한 감상을 통해 자신들이 과거에 했던 사랑을 추억하거나, 현재에 하고 있는 사랑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공식 안내에도 소개된 내용을 조금 더 풀어쓴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두 주인공의 사랑은 영화 초반에 금세 이뤄진다. LA 어느 대학의 유학생인 애나가 같은 수업에서 만난 제이콥에게 호감을 표하고 제이콥 역시 그녀에게 설렘을 느끼며 둘은 별다른 우여곡절 없이 연인이 되는 것이다. 각자의 전공에 따라 꿈을 키워가는 두 대학생의 사랑은 말 그대로 풋풋하다. 짤막짤막하게 보여지는 애나와 제이콥의 데이트 장면들은 대부분의 대학생이라면 그려보거나 겪어봤을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청춘남녀 커플의 전형적인 모습이랄 수 있겠다.
그러던 이들에게 찾아온 위기는 현실적이면서도 뜻밖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영국인 애나가 비자 체류기한이 만료되어 감에도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미국에 머무는 것을 선택하며 시작된 불행이 둘 사이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이다. 서로 오래 떨어져 있기 싫어서 내린 순간의 선택이 결국 둘을 갈라놓는다는 영화의 설정이야말로 이들의 사랑이 어떤 면에서는 'crazy'하다는 점을 말해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어서 펼쳐지는 스토리는 이른바 '롱디' 연애를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더욱 공감할 만한 내용이다.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으나 당면한 현실에서 서로는 서로를 분명히 원한다. 하지만 역시 미래를 알 수 없기에 이별이라는 결단을 내려도 보는데, 워낙에 서로를 순수하게 그리워하던 둘이기에 참고 참던 전화 한 통으로 결국 재회한다. 이에 다시금 '인내'(영화를 보면 알 수 있는 둘 사이의 특별한 의미)를 가져보기로 하며 관계는 이어진다.
* 여기서부터는 특정 장면에 대한 언급과 그에 대한 감상입니다. 스포라고는 할 수 없겠으나 개봉 후 영화를 보실 분들보다는 시사회를 본 분들과 나누기에 더욱 좋은 내용일 듯합니다만:)
애나와 사이먼, 제이콥과 사만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두 장면 중 첫 번째는 대부분의 리뷰에서 언급되는 엔딩이 아니다. 나는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유일한 베드씬이야말로 가장 적극적으로 애나와 제이콥의 심리를 드러낸 장면이 아니었나 라고 생각한다. 주인공들의 육체 노출은 극도로 자제하되 심리 노출이 극적으로 이뤄졌다고나 할까.
애나와 제이콥의 순수한 사랑의 과정에 격정적인 베드씬 같은 건 필요치 않았다. 둘은 서로 떨어진 상황에서 각각 곁을 내어 준 이성과 적극적인 사랑의 행위를 나누고, 이러한 두 커플의 침실이 교차하여 화면에 펼쳐진다. 그리고 여기서의 클로즈업은 각자의 상대가 아닌 애나와 제이콥의 얼굴뿐이다. 이러한 상황이야말로 원래의 연인인 둘의 관계가 정신적인 애착에 기반한 사랑임을 극명하게 드러냈다고 본다.
재결합, 샤워 중 둘의 회상
이 영화의 엔딩을 놓고 사람들의 해석이 해피, 혹은 새드로 갈릴 수밖에 없는 건 그만큼 심리 묘사가 모호했기 때문이다. 결국 다시 만나서 함께 샤워를 하는 제이콥과 애나가 서로를 껴안으며 돌이키는 과거와, 이를 추억하며 짓는 표정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해석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난 어쨌든 이 장면을 통해 해피엔딩을 예상해 봤다. 서로의 관계 이외에 불필요한 것들은 결코 보여줄 일이 없던 영화이기에, 둘의 성향과 상황으로 미루어 재결합으로 관계를 이어가는 영화의 연장선을 예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의문은 남는다. 원래의 사랑과 마침내 함께 머묾이 반드시 '해피'한 엔딩인 걸까? 서로가 서로에게 최선이라는 사랑의 결론은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충분히 가능할까? 소소하다면 소소한 이 한 편의 멜로 영화에서 나는 오랜만에 현재의 사랑에 충실한 스스로를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