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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자별나 Mar 16. 2020

아이를 낳고서야,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

내 인생의 변곡점

 내가 고등학생일 때는 수능 점수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거라고 믿었다. 대학을 가고 나선 어느 회사에 취업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거라고 믿었다. 취업을 하고 이제 결혼을 하면 인생이 달라질 거라고 믿었다. 아니었다.



아이가 태어난 그 날 이후로  내 인생은 송두리째 변했다.  

아이를 낳기 전의 나는 모든 일에 '내'가 제일 우선인 이기주의자였다.
“내가 제일 잘 나가~”라는 마인드와 함께 한마디로 콧대 높은 차도녀였다. 회사에서는 일만 잘하면 됐지 다른 사람의 상황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팀원들의 배려 없이 타인이 잘못한 것들은 콕 집어냈다. "이거는 OO 씨가 잘못한 거 아니에요?”라고 팀원들에게 말하거나 모두가 협력해서 해야 하는 일에는 “제가 할 일은 다 했는데 왜 더 해야 하죠?”라고 말하기도 했다.

상대가 누구든 솔직하게 할 말 다하는 사람. 그게 나였다. 오히려 팀장님 눈치를 보며 하기 싫은 일도 아무 말 못 하고 하는 다른 팀원들을 보면서 답답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연말에 하는 동료 평가에도 어김없이 나오는 피드백들은 ‘팀의 목표를 위해 헌신하는 자세가 부족하고 다른 팀원들에 대한 배려심이 부족하다’였다. 이렇게 ‘나’만 잘났다고 생각하는 ‘나잘난’씨인 데다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내가 엄마가 된 것이다.



아이를 낳고 산후 조리원에서부터 우울증이 시작되었다.

이 작은 아이를 온전히 내가 돌보고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이렇게 부족한 것 투성이인 하찮은 인간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이 힘들었다. 아이를 낳기 전엔 그냥 막연히 귀여운 아이의 모습만 상상하고 아기자기 조그마한 아기용품들을 사면서 설레기만 했었는데 막상 내 품에 아기를 안고 나서야 진짜 내 자신이 보였다.

늘 ‘내’가 중심이던 내가 더 이상 ‘내’가 아닌 ‘아이’ 중심으로 살아내야 하는 시간들이 힘들었다.

남을 도와주거나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했던 내가 누군가를 책임지고 돌봐야 한다는 현실이 나를 옥죄었다. 이런 내가 한 사람의 엄마여도 괜찮은 걸까 하는 생각이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전의 내 모습을 내 아이가 닮을까 덜컥 겁이 났고, 내 아이가 나보다는 더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랐다.  




우울한 마음을 극복하려고 시간이 나면 무조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 속에는 내 육아 강박증을 덜어줄 해법이 있을 것만 같았다. 수많은 육아서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라고. 책을 읽으면서 다짐했다. “그래, 내가 달라지면 돼! 내가 아이에게 바라는 모습! 그런 사람이 내가 먼저 되도록 노력하자! 내 자신은 내가 변화시킬 수 있어! 내가 행복하게 내 인생에 만족하면서 살면 아이도 나처럼 행복하게 살게 될 거야!”어쩌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같은 이 당연한 이야기가 나에겐 커다란 깨달음을 주었다. 내가 낳은 아이니 당연히 나를 닮을 텐데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고 나서야 그동안 살아온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된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잘못이나 부족한 점들은 그렇게도 잘 집어내고 말하기도 쉬운데 정작 내 자신에 대해서는 한 번도 깊게 고민해 보지 못했었다. 내가 왜 우울한 지를 생각해보면서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인 고민들도 함께 하게 되었다. 결국 내가 행복해 지기 위해서는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회 속의 사람들도 함께 행복해져야 한다. 타인을 조금 더 배려하고,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이 결국 내 자신이 행복해지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육아휴직 후 회사에 복직한 나는 나의 솔직하게 말하기 전에 한번 더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생각하며 말하려 노력 중이다. 예전에는 “저는 이거 싫어요~”라고 바로 말했는데 요즘은 그래도 “이렇게 하는 건 어떠세요?”라고 말한다. 




아마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나는 계속 까칠하고 조금은 재수 없는 사람으로 살아갔을 것이다. 

나는 내 아이를 위해서 더 좋은 사람, 더 행복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 중이다.  

아이를 낳고서야 시작된 ‘나’를 알아가는 여행을 계속할 것이다. 

앞으로의 여정 속에 더욱 성장한 사람이 될 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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