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에 대한 풀리지 않은 숙제를 뒤로하고 다시 직장인이 되었다. 사장의 무게를 내려놓으니 너무 홀가분했다. 직원 급여도 차량 관리도 고객 불만 처리도 안 해도 된다. 더 이상 휴일 출근도 연장근무도 밤샘 근무도 없다. 본사 업무 보고도 실적 관리도 현금흐름에 따른 대차 대조도 손익계산도 필요 없다. 이제 매달 통장에 입금되는 급여와 정해진 시간이 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둘째를 출산하고 분가를 시작했다. 시할머니와 시어머니와 따로 살게 되었다. 어느 때보다 아이들에게 손이 많이 필요한 시기다. 이제부터 가족에 대한 모든 책임과 보살핌은 나 혼자서 해야 한다. 친정엄마 찬스도 없으니, 아이들과 함께 출근하고 퇴근해야 하는 직장인의 삶도 그리 녹록지가 않았다. 걸음마를 떼지 못한 둘째는 아침마다 분유와 기저귀를 챙겨야 했다. 잠든 아이를 포대기에 싸고 큰 애는 자기 몸보다 큰 유치원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준비물을 챙기고 숙제를 확인하고 간식 스캐쥴을 확인했다. 매일 출근하는 길은 전쟁 같았다.
매일 아이들을 뒷자리에 태우고 출근했다. 아이들을 먼저 유치원에 내려 주고 나면 홀가분함과 미안함이 교차된다. 쫓기는 시간에 다그치느라 더 소중하게 대하지 못한 미안함과 오늘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었다는 안도감이 밀려온다. 이제 마지막 힘을 다해 지각하지 않으려고 운전대를 잡고 분 초를 다투며 회사에 도착한다.
8시간 근무가 끝나고, 퇴근하고 아이들을 데리러 가면 매번 우리 아이들만 텅 빈 어린이집에 남아 엄마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 돌아보면 집안일과 식사 준비를 해야 하니 그나마 출퇴근 시간이 유일하게 아이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다. 이렇게 출근길 달콤한 카풀은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어졌다. 야간 자율학습이 있을 때면 퇴근 후 학교가 끝날 시간에 맞춰서 대문 앞에서 기다렸다가 학원으로 이동했다. 이것이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나의 일과였다.
때로는 멈춰야 할 때 멈추지 않으면 멈춤을 당하기도 한다. 내 몸과 마음이 말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업을 시작하고 매일 밤낮으로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수 없이 내 몸과 마음은 그만 멈춰 달라고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를 위한 시간과 정성은 사치스러운 것으로 생각했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다. 그동안 나를 돌보지 않은 세월만큼 엄청난 아픔으로 다가왔다. 세월이나한테만 가혹하다면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나를 되돌아봐야 한다. 내가 걸어온 모든 시간을 들여다보면 안개가 걷히듯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 시작점이 나를 사랑하는 시간이 된다. 작은 점들이 모여 앞으로 선이 되고 면을 이루어 나갈것이다.
지금 나의 내면에 흘러가는 생각이 무엇인지?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지금 나의 몸 상태는 어떤지?
나의 행복은 무엇인지?
오늘처럼 건강한 사람들과 함께 긴 시간 걸을 수 있다는 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원망도 해보고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하던 때가 있었다. 남들에겐 그저 가벼운 일상을 나에게는 기적이라고 불렸다. 그저 걸을 수만 있다면, 아침에 안 아프고 일어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때가 있었다. 죽을 만큼 아파본 사람은 안다. 살려달라고 하기보다 죽여달라고 기도한다는 것을... 신이 있다면 이 고통 속에서 사느니 차라리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라고 기도하기도 했다.
나에게 기적이라는 사건의 시작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기적을 만들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10년 전 나를 돌보지 못한 대가로 얻은 인생의 깨달음은 나를 더 겸손하게 했다. 긴 터널을 지나와야 했다. 엄마의 시계는 37살에 멈췄듯 나도 엄마 나이가 되면 모든 것이 끝나는 건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마흔의 아침을 맞이했고 마흔 너머의 태양도 수없이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희망에 찬 아침을 맞이하는 동안 세상은 나에게만 잔인했다. 악착같이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하필 나에게 이런 고통이 찾아온 것일까. 나에게 닥친 고통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삶을 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럴 때는 누구의 위로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25년간 병원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나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가늠이 갔다. 그래서 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아픔의 긴 터널을 지나오는 동안 어른이 된 것일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세상이 나에게 잔인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잔인했다. 이렇게 모든 걸 내려놓고 나를 인정하고 용서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다. 누구의 탓이 아니라 내 잘못이다. 나를 돌보지 않고 나를 사랑하지 않은 무지에서 생긴 고통이었다.
현재 사물과 현상의 몰입에 있어서 자신을 되돌아보지 못하고 주의 집중의 대상과 현상에만 함몰되는 존재를 경험 자아라고 말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인 대니얼 카너먼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과거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고 스토리텔링하고 있는 나를 알아가는 중이다.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 것도 오늘처럼 나를 되돌아보며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아무 잘못이 없다. 세상은 세상의 시간에 맞춰 흐르고 자연은 자연의 속도 따라 바뀌었다. 어제도 내일도 그다음 내일도 주변의 세상은 그대로일 것이다. 맑은 날이 있듯 오늘처럼 흐린 날도 있다. 하지만 흐린 하늘 속 회색 구름으로 덮여 있는 하늘은 본래 푸른 색깔이다. 내 마음이 행복하면 세상이 온통 핑크빛으로 보인다. 모든 건 나를 돌보지 못하고 내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해서 생긴 나이테 같은 것이다. 구름이 걷히듯 내 생각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뀌고, 그때야 밝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