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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고미 Oct 24. 2020

13. 홈베이킹의 매력

원하는 게 없으면 만들어 먹어야 하는 슬로우 라이프 in 스웨덴

나는 빵, 커피 그리고 디저트를 좋아한다.

정말 소화만 잘 되고 살만 안찌면 무한대로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것들!

내가 유럽으로 간다니까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너는 빵도 좋아하고 커피도 좋아하니까 먹는 건 걱정 안해도 되겠다."

라고 말하더라고.

그래서 나도 먹는 건 그리 걱정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가끔씩 생각나는 얼큰한 한국음식이 그립기도 하지만.


스웨덴의 빵들은 한국에서 보던 것과는 차이가 있다.

시나몬번, 카다멈번은 어디를 가나 필수로 거의 다 갖춰져 있고

한국에서 보던 잡곡빵, 식빵, 바게트 이런 것들은 쉽게 볼 수 있지만

그 외에는 종류가 그리 다양하게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케이크류도 스웨덴 전통 '프린세스 케이크' 아님 그냥 생크림 케이크 정도?

빵을 구하기는 쉽지만 내가 원하는 빵을 구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한국에서 파는 카페의 다양한 디저트들이나 

대형 프렌차이즈 빵집만 가도 수십가지는 되는 그런 빵들이 여기 오니까 문득 그리워진다. 


없으면 만들어 먹어야 하는 이런 셀프 시스템...

다행히(?) 스웨덴 가정집에는 오븐이 거의 필수로 갖춰져 있으니

오븐만 있으면 간단히 기초적인 베이킹은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서 요즘엔 틈만 나면 집에 있는 재료를 최대한 활용하여 베이킹을 한다.


1. 오트밀 쿠키

아침대용 혹은 식사대용으로 오트밀을 챙겨먹는 남편 덕에 집에 오트밀은 항상 구비되어 있다.

오트밀이 아닌 달달하고 바삭한 쿠키가 먹고 싶어서 검색하다가 레시피를 찾아서 구웠다. 

사실 나는 레시피를 찾아도 내맘대로 살짝 재료의 양을 가감해서 만든다.

베이킹 한답시고 전자저울도 사고 했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건 많이 넣고 부담스러운 재료는 살짝씩 빼게 되더라고...

오트밀쿠키는 구수하고 커피랑 먹어도, 우유랑 먹어도 좋았다.


2. 코코넛 로쉐

'로쉐'가 프랑스어로 '바위'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쿠키는 바위 모양으로 위를 송긋 올라오게 굽는 게 핵심이라고. 우리가 아는 유명 초콜릿의 모양도 바위 모양이라 로쉐라는 말이 붙었나보다. 달걀 흰자가 집에 많이 남아 있길래 만든 정말 재료가 간단하고 만들기도 쉬운 쿠키. 코코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코코넛 씹히는 식감도 오독오독 좋다. 겉바속촉(겉은 바삭, 속은 촉촉)이란 말이 어울리는 그런 쿠키이다.


3. 애플시나몬 머핀

스웨덴에 오니 사과도 왜이렇게 다양하게 많은지... 4~5가지 다른 종류의 사과가 항상 마트에 구비되어 있는 것 같다. 나는 살짝 새콤하면서 달콤한, 그리고 무엇보다 아삭한 사과의 식감을 좋아하는데 아직 완전히 내 스타일을 찾지 못했다. 사과를 할인하면 자꾸만 사게 되는데 그냥 먹어보고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사과가 아니면 머핀으로 만드는 게 낫겠더라고. 사과를 설탕, 레몬즙, 시나몬을 넣고 조려서 머핀으로 만들었다. 머핀은 진짜 반죽도 쉽고 완성품도 근사해서 자꾸만 굽게 되는 베이킹 종목 중 하나. 내맘대로 구우니 사과도 큼직하게 썰어서 듬뿍 넣었다. 그리고 우리는 시나몬을 너무너무 사랑하니까 시나몬 양도 기본으로 거의 3~4배는 늘여서 만들다. 가을에 커피랑 피카하기 딱!


4. 잉글리쉬 머핀

한국에 있을 때 빵을 만들고 싶으면, 아니 배우고 싶으면 원데이 클래스를 갔었다. 거기서 배운 것 중 하나가 잉글리쉬 머핀. 반죽기로 보통 수업을 했어서 반죽기가 없인 '제빵' 종목에 도전하기 엄두가 안난다. 그런데 이 잉글리쉬 머핀은 손반죽으로 만드는 법을 배웠기에 용기내서 도전했다. 결과는... 실패...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얻지 못했다. 약간 햄버거빵 같이 생겼는데 겉은 딱딱하고 속은 좀 부들부들해서 바게트에 가까운 식감이다. 가운데 짜부러진 모양의 빵은 내가 발효하다가 주저 앉아서 저렇게 되었다... 소파에 이불 덮어 두고 발효하면서 남편한데 '절대 앉지마!"라고 신신당부 해놓고 내가 앉았다. 아무튼 내가 문제다... 그래도 열심히 만들고 버리긴 아까우니 이래저래 다 먹긴 했는데 아쉬움이 많이 남은 그런 빵.


5. 브라우니 

가을이 되니까 찐득한 브라우니가 땡기더라고. 한국식 도톰한 브라우니. 위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한 스쿱 가득 떠서 같이 먹어도 맛있는 그런 브라우니가 먹고 싶었는데, 스웨덴 브라우니는 내가 아는 브라우니랑 좀 다르게 생겼다. 두툼하지 않거나 아님 약간 초코무스? 같은 생김새. 그래서 내가 만들어 먹었다. 다크초콜릿을 녹여서 넣고 코코아파우더도 넣고 헤이즐넛도 듬뿍 넣어서 만들었다. 굽고 나서 가운데가 좀 갈라지긴 했는데 맛은 만족! 누군가 '가을에는 브라우니'라는데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진한 커피 한잔, 그리고 브라우니가 정말 조화를 잘 이루었다.


6. 리몬첼로(Limoncello) 케이크

우선 케이크 이름인 '리몬첼로(Limoncello)'는 이탈리아에서 레몬으로 만든 알콜성 음료라고 한다.

알콜을 사려면 스웨덴은 알콜 전용 매장으로 가야 하는데 낮에 이것 때문에 가기가 귀찮아서

그냥 마트에서 파는 '레몬 토닉'으로 내맘대로 대체했다. '레몬토닉 케이크'라고 해야할 것 같은... 이 케잌 레시피는 내가 구독하는 요리 유투버님이 소개하길래 상콤달달하니 맛있을 것 같아서 시도했다. 재료는 진작에 사서 구비해놓았는데 용기가 안나서 계속 미적거리다가 만들었다. 역시나 보는 거랑 직접 해보는 건 정말 다르다. 가운데 부분이 주저 앉아 버렸다ㅠㅠ 그리고 원래 이렇게 잘 모양이 망가는 건지... 접시에 덜어 먹을 때 마다 모양이 완전... 그래도 맛은 나쁘지 않았다. 비주얼이 다만 아쉬울 뿐...


7. 당근 머핀

당근을 싸게 파는 날에 2KG을 업어 왔다. 스웨덴 당근은 한국 당근의 통통하고 튼실한 모양과 다르게 길쭉하고 되게 여리여리 가늘다. 그래서 뭔가 채썰기 힘들다... 다행히 이 머핀은 채칼로 썰어서 준비했는데 평소 요리할 땐 당근 다듬기가 힘들더라고. 한국식 당근 모양에 익숙해서 그런가보다. 당근, 호두, 시나몬을 듬뿍듬뿍 넣고 구웠다. 시나몬 향이 온 집에 그득한 가을~~~ 너무 행복하다. 그리고 이 머핀은 노버터 레시피로 만들어서 생각보다 그리 묵직한 식감이 아니다. 좀 가볍다. 노버터도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나는 버터향 그득한 머핀이 더 맛있는 것 같긴 하다. 그런데 왜인진 몰라도 당근 머핀 레시피는 노버터가 대부분이다. 신기한 베이킹의 세계!


8. 홍차 스콘

얼그레이 홍찻잎을 넣으면 더 향이 좋았을 건데 우리 집엔 왜 홍차들이 다 블렌딩 홍차들 뿐인지... 집에 차나 커피가 꽤나 많은 편인데 얼그레이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있는 대로 가장 블렌딩의 느낌이 적은 홍차를 넣고 구웠는데 역시나... 오븐에 구우면서 이렇게 빵 굽는 냄새가 안나보기도 처음인 것 같다. 스웨덴 와서 차나 커피를 많이 먹으면서 스콘에 관심이 간다. 한국에서는 스콘은 내 스타일이 아니였는데 여기 오니 스콘도 관심이 생겨서 굽기 시작했다. 사실 스콘만 먹으면 거의 無맛에 가깝다... 그냥 구수한? 그런데 저 잼을 더해주면 다르다.  정말 잼이 다 했다. 살구잼이랑 커피랑 스콘의 삼합 조화는 정말 좋았다!


지금은 쉽게 구울 수 있는 초보 베이킹만 하고 있지만 나중에 반죽기를 구비하고 원하는 도구들을 좀 더 보충해서 제대로 제빵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 귀찮고 설거지가 하기 싫을 땐 그냥 가까운 빵집이나 마트 안에 있는 여러 가지 빵을 먹어도 될 것 같은데 굳이 일을 벌리는 나, 참 내가 봐도 신기하다.

스웨덴에 오니 귀찮은 것도 해야 하고 한국에서 안하던 것도 하고 있다. 역시 환경이 사람을 바꾸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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