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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고미 Oct 20. 2020

12. 우리 집 마련하기

스웨덴에서 앞으로 살 우리 집을 갖는 다는 게 이렇게 힘들구나...

한국에서도 집을 사 본 적이 없다.

직업을 갖고 돈을 벌면서 돈을 모으는 목적은 오롯이 내 집 마련과 여행, 이 둘 뿐이었다.

다만 살면서 내가 먹고 싶은 것은 먹으면서 사고 싶은 건 적당히 사면서 살고 싶었다.

명품을 좋아하거나 비싼 브랜드를 그리 선호하지 않는 편이라 돈에 많이 구애 받진 않았지만

집을 마련할 때는 내가 가진 돈이 한없이 적게 느껴졌다.


대학교 때엔 그저 자취를 하는 것만으로 좋아서 허름한 원룸에서 처음 혼자 살았다.

기숙사와는 다른 혼자만의 공간, 자유. 

당시엔 부모님이 월세와 보증금을 대주셨기에 신축원룸은 꿈도 못꾸고

연식이 오래된 건물에 비교적 저렴한 월세로 생활할 수 있는 곳에서 살았다.

그래도 그다지 큰 불만은 없었다.

그리고 직장을 갖고 

살던 곳에서 조금 더 멀리 떨어진 곳에 발령받으면서 이사를 했다. 

거리가 가장 큰 문제라서 지금보다 나은 집이면 되겠다 생각했었다.

그래서 조금 더 넓은 자취방으로 이사했다.

그 집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었지만 

나는 이사를 귀찮게 여기는 사람이라 그냥 참고 살았다.

이사하면 거의 4년 이상은 살았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더 나은 집으로 이사가라고 부추길만큼 

나는 그렇게 집에 예민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돈을 벌면서 항상 마음 속에는 '내집 마련'이 목표였다.

월세-전세-그리고 자가. 이 단계를 밟아가며 집을 사고 싶었다.

그렇게 큰 집이 아니더라도 적당히 아담한 나만의 공간.

그리고 스웨덴으로 올 생각을 하기 전에 

한국에서 마지막 이사라 생각하고 월셋집을 옮겼다.

마지막 1년은 좀 더 편하게 살고 싶었기에 

월세를 조금 높여 전보다 나은 환경의 집을 구했다.

이사 비용이 들고 힘도 들었지만 한국에서 살았던 마지막 1년의 집은 정말 만족하며 살았다.


지금 스웨덴에서 머물고 있는 집은 남편이 혼자 살던 집이다.

스웨덴에서는 전세의 개념은 없는 듯하고 

월세 아니면 자가인데 월세를 구하는 방식이 우리 나라와는 사뭇 달랐다.

성인이 되면 나라에서 관리하는 월세 구하는 사람들 리스트에 등록할 수 있는데

리스트에 사람들이 많이 대기 중이라 자기 차례를 기다리려면 최소 몇 년.

돈이 있고, 빈집이 있다고 월세를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

대기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매년 나라에 일정 세금을 내며 기다리다가

내 차례가 되서 월세 자리가 나면 그 자리에 들어가는 거라고.

남편도 성인이 되자마자 이름을 올리고 거의 몇 년을 기다려서 지금의 집을 구했다고 한다.

그래서 월세를 내면서 살고 있는데 지금 집 크기가 혼자 살기에는 작지 않지만

내 짐이 들어오고 둘이 살기에는 공간 분리가 되어 있지 않은 곳이라 

우리만의 새 보금자리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남편도 나와 같이 돈을 모으는 목적이 여행과 집이었다고 하니 

돈을 모아서 집을 사는 것은 우리에게 당연한 수순이었을 터.

스웨덴에 와서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우리에게 적합한 집을 고르고 계약을 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부동산에 가서 집 매물을 보고 몇 군데 둘러 본 뒤 

가격에 맞는 집을 찾으면 매매하는 사람과 만나서 계약을 쓰는 과정을 거치지 않나.

아님 신축 아파트 같은 경우에는 분양권을 먼저 따서 사기도 하고.

그런데 여기는 조금 매매 방식이 달랐다.

인터넷으로 매매 나온 집들을 대충 조건에 맞게 골라서

집을 구경하는 날짜와 시간에 맞춰 구매자가 직접 방문해서 집을 둘러 볼 수 있다.

둘러보고 마음에 들면 경매형식으로 진행되는데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한 구매자가 집을 살 수 있게 되는 것.

우리는 우리 둘이 살 공간으로 적당히 아담한 사이즈의 집을 원했는데 

스톡홀름의 집값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비쌌다.

물론 우리나라도 서울 집값을 생각하면 비싸지만 

스웨덴은 우리나라보다 땅도 넓고 인구도 적고 해서 이럴 줄은 몰랐지...

여기도 센트럴에 가까울 수록 크기에 비해 집값이 엄청나고 

집이 없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진 몰라도 2년 전에 내가 왔을 때와 달리

요즘 신축 주택건물들은 층수가 꽤 높다. 그리고 신축 건물 자체가 많이 생긴 느낌이다.

역시 어딜가나 집을 마련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인가보다.

지난 주 우리가 보고자 했던 집의 메인 현관.

날짜와 시간에 맞춰서 현관 앞에서 기다리다가 문이 열리면 집을 구경할 수 있다.

집을 팔 사람들이 자기들의 집을 거의 모델하우스 수준으로 싹 치우고 집을 비워 놓으면 

구매자들이 구경을 하러 오는 것이다.

우리 말고도 여러 팀들이 현관 앞에서 대기를 하다가 집을 들어가 구경을 했다.

집을 구경하러 가보면 집을 팔 사람들이 거의 자기들의 짐을 빼지 않고

겉으로 보기에만 싹 치워 놓은 것이기에

옷장 안이나 서랍안에는 쓰던 물건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매매자는 집이 팔리면 그 돈으로 다른 집을 사서 옮기기 때문에 

구매자가 집을 사도 바로 이사를 들어가는 경우는 드물다고.

길에 이렇게 입간판이 세워져 있으면 구경하는 집이 있다는 뜻이다.

중개인의 얼굴 사진과 연락처가 적혀 있는데 

사진이 없는 경우도 있고 연락처가 없는 경우도 있다.

집을 구경하러 들어가면 이렇게 책자 같은 것을 나눠준다.

안에 도면도 있고 사진도 있고 집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있다.

입구에서 부동산중개인에게 이름과 전화번호를 등록하면 

나중에 경매할 때 되서 문자나 전화가 온다.

스웨덴에서는 이런 식으로 집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가보다.

우리도 꽤 많은 집들을 보러 다녀서 책자가 꽤 쌓였는데 아직 경매에 성공한 적은 없다.

아직 집을 구하지 못했다... 

경매에 몇 번 참여는 했는데 우리의 예산 범위 초과로 가격이 오르면 

더 이상 시도해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집을 살 때 모아놓은 돈이 넉넉해서 내 돈주고 사면 가장 좋지만 

우리는 은행의 대출을 받아서 사야 하기에 은행에서 정해 준 한도를 넘어갈 수 없다.


아직 내가 스웨덴어를 몰라서, 

그리고 스웨덴의 집 매매 제도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서 일 수도 있지만

집을 구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한국에서도 스웨덴에서도 집이 없어서 서러운 적이 많았는데 

조만간 우리 만의 아담한 보금자리를 구해서 

지금 쌓여있는 박스들을 얼른 풀어서 정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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