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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고미 Apr 22. 2023

37. 부활절연휴, 그리고 봄

스웨덴의 연휴 중 하나인 부활절, 그리고 영상기온으로 바뀐 날씨:)

Glad Påsk!

스웨덴어로 부활절에 하는 인사다.

부활절은 종교적인 의미도 있지만 스웨덴에선 긴 연휴를 의미하기도 한다.

봄이 오는 길목에 있는 연휴.

부활절은 일요일이지만 

금, 토, 일, 월을 이어서 쉰다. 공식적으로 달력에 빨간날!


부활절 전 주에 센트럴에 나갔다가 토끼를 만났다.

개인적으로 토끼가 출몰했다는 건 봄이 왔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3월에서 

날씨가 점점 풀리는 4월... 초에는 아직까지도 영하기온이었는데

이때만해도 낮엔 제법 해도 좀 나고 영상기온으로 오를락말락 하던 때였다.

해도 부쩍 길어졌다.

따뜻해진 날씨와 함께(스웨덴기준 영상은 따뜻한 거라고 한다...하하)

해가 길어져서 좋다.

오후 2시만 되도 어둡던 겨울을 지나서

이젠 하지로 다가가는 중이라 그런지 해가 꽤 길다.

글을 쓰는 시점으로 저녁 8시까지는 환하다.

하지가 되면 밤 10시에도 초저녁같은 분위기가 된다.

암튼 예쁜 노을이 반가운 날이었다.

3층 건물 꼭대기층인 우리집.

스웨덴의 일반적인 오래된 아파트는 이렇게 생겼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벽돌건물. 1900년대 초중반에 생겨서 지금까지도 끄떡없이 잘 버틴다.

해가 중요한 나라라서 발코니는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데

최근 생긴 아파트들은 유리가림막을 설치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이렇게 뻥 뚫렸다.

부활절연휴 첫날

날씨도 좋고 집에만 있기엔 아까워서 

긴 산책과 함께 피카를 했다.

처음 와 보는 카페에서의 피카. 좋다:)


스웨덴은 명절에 가족들과 보내거나 시골에 가는 게 전형적인데

우리 남편 가족들은 각자 사는 곳도, 나라도 달라서

우린 항상 연휴엔 둘이서만 시간을 보낸다.

처음엔 좀 휑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지금은 꽤나 익숙해서 둘이서 뭐할까 고민하거나 아님 즉흥으로 정한다.

왼쪽은 모닝롤이라는 이름의 시나몬패스츄리였고(이건 여기서 파는 좀 특이한 빵)

오른쪽은 스웨덴 어느 카페나 빵집에서나 볼 수 있는 국민빵, 카다멈번이다.

카다멈이라는 향신료가 이제 스웨덴에서 좀 살았다고 익숙하다.

처음먹으면 좀 세게 느낄 수도 있다.


피카만 하고 집으로 가서 저녁을 해결하자고 했는데

역시나... MAX를 보더니 먹고 가고 싶다고 남편이 보채는 바람에

못이기는 척 같이 먹었다.

스웨덴의 대표적인 햄버거체인점. 우리나라로 치면 롯데리아같은 느낌.

그런데 좀 더 고급진?

아마 가격이 착한 편이 아니라서 그런 거 같다.

스웨덴에서 값싼 버거를 먹으려면 차라리 맥도날드나 버거킹이 낫다.

스웨덴 버거체인인 MAX는 버거 하나만 시켜도 만원 가까이 한다.

(내가 시킨 한국식버거는 단품으로 만원이 넘는다. 89kr)


우린 새로 나온 'Korean Burger'에 도전했다.

내 기억으론 작년에도 한번 나왔다가 들어갔고

이번에도 나온지 꽤나 되었는데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후기를 봐서는 전혀 한국음식과 연관성도 없고 맛도 그저 그랬대서 안먹으려다

호기심에 시켜봤다.

패티는 비건, 소고기, 치킨 등 고를 수 있는데 나는 치킨 버전으로.

개인적으로 MAX에선 치킨버거가 가장 맛있다.


남편은 세트메뉴로 기본 시그니처버거를 시켰다.


왜 이름이 한국식인걸까? 의문스러웠다.

우선 홍보문구에는 한국식소스와 코리안더, 즉 고수를 넣었다고 강조한다.

고수라니... 진짜 한국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만든 게 분명했다.

나는 고수를 좋아하지 않아서 옵션에서 빼버렸다.

그리고 소스.

빨간 초고추장비주얼의 소스가 쭈욱 흘러나왔다.

맛은 전혀 초고추장도, 고추장도 아닌 이국적인 맛이다.

버거와 따로 논다.

차라리 불고기소스를 넣지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너무 박하게 평가하나 싶어서 남편도 먹어보라고 건네주니

한국에서 꽤나 지내 본 우리 남편도 이건 아니라고ㅠ

한번 먹어본 걸로 만족했다. 

날씨가 좋아서 물가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사진 속 풍경을 참 평화롭지만 역시나 칼바람에 얼굴을 시큰시큰.

부활절 연휴 둘째날 

우린 우리만의 연례행사인 만두를 빚었다.

남편과 나는 여러 날마다 우리만의 음식을 정해두고 먹기도 한다.

그냥 재미로...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이 날엔 이거 먹자! 그냥 정했다.

부활절엔 만두를 빚어먹자고 정한지 3년째.

만두피까지는 못 만들겠고 시판으로 독일의 한국마트에서 주문해뒀다.

만두소는 백종원님의 유튜브레시피를 참고해서 만들었다.

나는 왔다갔다 찌느라 바빠서 모양만들고 빚는 건 남편이 거의 다 했다.

스웨덴사람의 남편이 한국의 만두를 빚고 있는 모습.

언발란스하다 싶다가도 정말 자연스럽다 싶다.

귀엽다. 웃기다. 정말 진지하다.

북한 음식이 궁금하다는 남편의 호기심을 풀어주기 위해서

독일의 한국마트에서 파는 평양냉면키트를 큰맘먹고 같이 주문했다.

냉동식품이었고 안에는 면과 육수 그리고 겨자가 들어있었다.

나도 한번도 평양냉면을 먹어 본 적은 없지만 여기저기 유튜브나 TV에서 본 게 있어서

대충 맛을 상상할 수는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산 이 평양냉면은 그냥 어느 고기집에서나 먹을 수 있는 물냉면 맛이었다.

무난하고 맛있지만 아마 평양냉면을 기대하고 먹는 사람들은 실망할 수도.

나중에 한국가면 남편이랑 평양냉면을 꼭 먹어보리라!


뭔가 허전해서 비비고 열무김치를 얹어서 고명으로 먹었다.

갓 빚어서 찐만두와 물냉면의 조화는 최고였다.

배를 두둑히 채우고서

남은 만두는 쪄서 보관하고

남은 남두소는 남편이 조물조물 동그랑땡으로 빚어서 부쳐주었다.

한국에서 나름 명절 전 부쳐본 남편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동그랑땡 정도는 혼자서 부칠 수 있는 스킬이 있다.

부활절 연휴 셋째날

얼마 전부터 로스트치킨을 먹고 싶다는 남편.

마트에서 1.5킬로 통닭을 사왔다.

스웨덴에선 닭을 통으로 팔거나

가슴살, 다릿살, 혹은 다리로 나눠서 판다.

나는 닭볶음탕이 먹고 싶었어서

통째로 사온 닭을 반은 로스트치킨으로

나머지 반은 토막내서 닭볶음탕으로 만들어 먹기로 합의했다.

담백하게 잘 구워진 오븐로스트치킨.

그냥 먹어도 되지만 우리는 스윗칠리소스랑 스리라차소스랑 같이 먹었다.

날씨가 좋아서 근처 숲길을 걸었다.

아직은 봄이라기에 좀 황량한 풍경일 수 있지만

우린 눈이 다 녹았다는 것에 감격!

해가 난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며 숲을 걸었다.

날씨가 좀 더 따뜻해지면 자리들고 나가서 피크닉을 하고 싶다.


남은 닭 반마리는 남편이 토막으로 손질해주었다.

얼마 전 본 유튜브 마카롱여사님의 레시피를 참고해서 만들었다.

조미료없이 이렇게 맛있다니!

밥이랑 같이 맛있게 먹었다.

맵다는 남편도 매워하면서도 잘 먹어줘서 고마웠다:)

봄이 오는 또 하나의 모습은 

길 청소.

겨울내내 쌓인 묵은 낙엽들과 

눈이 오면서 뿌려 둔 자잘한 자갈들을 치운다.


마트를 장보고 목이 말라서 신상 아이스티를 시켜 먹었다.

처음 스웨덴 왔을 땐 아이스 메뉴가 진짜 드물었는데

지금은 웬만한 프랜차이즈카페엔 다 아이스메뉴가 있다.

지구온난화가 만들어 준 메뉴의 다양화...

Espresso House는 스웨덴브랜드의 가장 큰 프랜차이즈다.

북유럽에는 스타벅스보다 이 에스프레소하우스가 더 많다!

길을 청소해주는 차가 앞에 지나가고 있었다.

앞서 가는 차는 진공으로 자갈을 빨아들이고

뒤에 가는 차는 바닥에 달린 솔로 쓸어준다.

소리가 꽤나 커서 이런 차가 지나다니면 경로를 바꿔서 산책을 하곤 한다.

남편과 즉흥적으로 센트럴로 나가서 점심을 먹고

남편이 사무실에 출근하는 동안 나는 카페에서 혼자 책을 읽고 주변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날은 정말 날씨가 따뜻했고 해가 좋아서 실내에는 나를 포함 몇 명 없었고

바깥 야외석은 만석이었다.

해가 나면서, 봄이 온다 싶으면 무섭게도 사람들이 다들 밖으로 나가 자리를 잡는다.

흔한 유럽의 모습:)

스톡홀름에서 벚꽃하면 바로 여기!

Kungsträdgården

왕의 정원이라는 뜻의 공원이다.

센트럴 한복판에 있는 벚꽃길인데 한국에 비하면

귀여울 정도로 규모가 작지만 여기는 매년 봄에 사람이 참 많다.

아직 꽃은 안폈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꽃망울이 생겼다.

예상컨대 아마 5월 초가 되면 다 만개할 것 같다.

그때와서 보면 좋으련만 

우리 부부는 결혼 3주년, 아니 그런 이유 아니라도

그냥 봄여행으로 계획한 것이 있어서 스톡홀름을 떠나있다.

스톡홀름의 벚꽃을 즐기지 못할 것 같아 아쉽지만

다른 곳에서 더 많은 추억을 만들 예정이라 기대가 된다.


봄이 오는 스톡홀름에서 

지금, 이 계절이 좋다.

Välkommen, vå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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