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진 《페른베》

우아하고 완벽한 곡선

by Clare books


"그런데 저는 뮌헨에 가보고 싶어 했던 게 아니라 그리워했던 것 같아요.
한번도 가본 적 없지만 그건 그냥 그리움이었던 것 같아요. 조금 이상한 말이긴 한데…


그런 마음, 나도 알아요. 한 번도 만난 적없는 누군가 혹은 되어본 적 없는 나를 그리워하는 마음.

페른베, 그걸 독일어로 페른베라고 해요.
그런 마음을 알아요?"


열일곱개의 칸막이방 하나에서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의 전화를 받아주고, 그들의 불행을 받아 적는 그녀.
그녀는 그 부서진 말을 꿰매어 매일 이야기를 쓴다.

아무 연고 없는 소도시로 떠나와, 아무와도 말하지 않고 사는 그녀의 아픔이 나에게 전해져왔다. 마음이 너무 아픈 소설은 읽고 싶지 않아 책을 덮었다.
며칠 후 다시 책을 펼친 것은 이 초대의 말이 궁금해서였다.

"우아하고 완벽한 곡선
쓸수록 선명해지는 세계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그녀가 찾아간 곳에 니나가 있었다.
니나는 그곳에서 우아하고 완벽한 곡선을 그린다. 가만히 기다리면 저절로 찾아오는 글을 낚는 것이다. 그곳은 함께 글을 쓰는 곳, 글방이었다.

페른베(Fernweh)라는 독일어를 처음 들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그리움..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누군가,
여기 아닌 어딘가에 있는 진짜 나를 그리워하는 마음..
그것은 도대체 어떤 느낌인 것일까.
가본 적 없고 만나본 적 없는 어떤 것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신유진 작가는 바쁘게 돌아가는 현실 세계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않는 나를 붙들어, 한 순간 모든 것이 아련해지는 '페른베'로 데려갔다.

그곳은 문학의 세계인 것일까. 소설 속 그녀, 그리고 니나, 동이씨, 승호.. 인물들의 알 수 없는 고통, 슬픔, 외로움이 깊이 느껴졌다.
니나는 삶의 극단에까지 가고자 했다. 껍데기를 벗고, 지금보다 조금 나은 진짜 나를 만나고자 했다. 그리고 다시 쓰고자 했다.
내가 모르는 진짜 나.. 그것은 나를 매료시키는 결핍과 갈망, 무의식적인 욕망 속에 있다고 한다. 그 껍데기를 벗어갈 때에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
또는 타인의 삶 속으로 내가 들어가 그 자리에 서서 이야기를 이어서 쓰는 것의 아름다움과 그 강력한 힘을 펼쳐 보인다.

니나와 그녀는 소설을 이어썼다.

그녀는 애인과의 마지막 여행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 6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했고, TV에서 본 뮌헨에 가보려고 함께 돈을 모았지만, 이제는 지쳐서 헤어지려는 두 사람이 폭설이 내리는 고속도로 차 안에 있다.

니나가 소설을 이어썼다.
니나는 두 사람을 차에서 내려 눈내리는 추운 시골길을 함께 걷게 한다. 그들은 6년 동안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했던 일들을 이야기한다.
애인은 오래전에 그녀가 좋아하는 겨울바다 앞에서 차를 세우지 않고 그냥 지나친 것을 사과한다. 그녀는 오래전에 그가 좋아하는 영화를 같이 보러가지 못한 것을 사과한다.
눈이 그치고 차로 돌아와 그들은 헤어진다.

니나의 소설을 통해 주인공인 그녀와 애인은 서서히 지워지고 박수를 받으며 퇴장한다. 그 이야기는 지쳐서 헤어진 어느 연인의 이야기가 되었고, 더는 실제 그녀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녀는 이제 다시 쓰고 싶어졌다.
그녀가 살아보지 못한 그녀 자신의 이야기, 눈속의 연인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녀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의 전화를 받아주며 말했다.
기다려 보죠. 무더위도 결국 지나가요. 그러면 가을이 와요. 11월엔 커다란 눈송이도 떨어져요.

그녀는 니나에게도 말했다.
눈보라 속에 갇혀도 다시 이어쓸 수 있어요. 눈은 언젠가 멈추게 되어 있어요. 계절은 무슨 일이 있어도 결국 지나가요. 새로운 계절에는 새로운 이야기가 있을 거에요.

니나는 진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 소설이 오래전 11월 그 시간의 그 남자와 니나를 구하기를 바래 본다.

문장들
- 잘 가. 내 걱정 하지 말고.
잘 있어. 엄마 걱정 하지 말고.
엄마가 갔다. 하나도 슬플 일이 없는데 속에서 몇 번씩이나 울컥하는 게 올라왔다. 뭘까? 이런 마음은. 써볼까? 쓰고 나면 선명해진다고 했는데, 아닐 것 같다. 이건 영원히 모를 것 같다.
나는 동이 씨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혼자 중얼거리며 오르막을 올랐다.
엄마, 나는 그냥 키울 거야. 너를 키우는 게 너무도 당연하고, 너는 그저 온당한 존재라고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도록.

- 쓸수록 선명해지는 세계가 있다면, 내게도 그런 세계가 열릴까? 그런데 선명해지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일까? 사실 나는 두렵다. 다 썼는데 내 모든 마음이 미움이면 어쩌나.


"페른베"(Fernweh) 신유진 소설. 시간의 흐름.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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