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살아냅니다.

by 막둥님

비 온 뒤라 공기 중에 습도는 더 정중하다.

함부로 나대지 않는 정직한 날씨다.

물기 가득한 공기가 조금은 무겁게 스며든다. 그래서 나의 몸도 보이는 이의 얼굴도

조금 더 무겁게 느껴진다.

보고 배운 게 도둑질인가?

이때면 또 한여름 든든하게 지낼 수 있게 여름 반찬을 준비를 해야 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엄마가 늘 했던 그것을 나도 습관처럼 하고 있다.

장에 나가 오이지용 오이 한 접을 사고

갑자기 메밀전병이 먹고 싶어졌다. 한 번도 내 손으로 만들어 보지를 안았는데

강원도 어디쯤에서 먹어봤던 그 맛이 그리워졌다.

이건 엄마의 손맛이 아니다. 그저 나의 감으로 해야만 한다. 그흔한 레시피 찾는 것도 오늘은 귀찮다.

신 김치는 집에 있고, 두부 한 모와 메밀가루를 샀다. 짐에 당면이 있는지 기억이 없지만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해야겠단 생각으로 안 샀다. 사실 당면 넣는 게 싫었다.

이렇게 장을 보고 집으로 향했다.


아카시아꽃이 산책로를 하얗게 물들이고 있었다. 바닥에도 하얗게 아카시아 꽃잎이 흐트러져 있는 게

마음을 심쿵 하게 한다. 무거운 바람결에 묻어오는 아카시아 향기가 무거운 머리를 상쾌하게 해줬다.

어느 오래된 기억 속 따스한 순간과 맞닿아있는 향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길가에 민들레 홀씨가 보였다.

바람결에 훅 나라가 어느 자리에서 또다시 사랑을 전하겠지?

부서지기 전 순수함에 혹여 누가 일부러 바람 불어 날릴까

잠시 담아본다. 지금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못 볼 민들레 홀씨.

바람을 기다리다 몸을 날려 어디서 다시 작은 행복의 조각이 되어 다시 피어나겠지.


아카시아 향에 취해 걷다가, 습한 바람에도 애써 때를 기다리는 민들레 홀씨까지

그리고 배달 오고 있는 오이 한 접.

별거 아닌 하루가 나의 오늘이 되었고,

그래, 나 잘 살아내고 있다고 칭찬한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그것들이 모여 오늘의 풍경이 되고

내 삶도 그에 물들어 조금씩 조금씩 아름다워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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