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담긴 것이 생각이 되고, 말이 되고, 때론 글이 된다.
하지만 그 말들이 언제부터인가 자주 낯설어졌다.
요즘 들어 말에 담긴 뜻을 자주 검색하게 된다. 어디서 본 듯한 단어인데도, 막상 무슨 의미인지 몰라 머뭇거리게 된다. 문득, 내가 쓰는 언어의 폭이 참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을 편독으로 보냈다. 주로 종교 서적.
집에 쌓인 책이 꽤 되었기에, 이사 올 때 이삿짐 나르시던 분이 물었다. “혹시 목사님이세요?”라고. 웃어넘겼지만, 그 순간 마음 한편이 조금 뻘쭘했다. 내가 읽은 책들이 모두 나의 언어가 된 줄 알았는데, 현실에선 젊은 세대의 신조어나 줄임말에 자꾸 걸려 넘어진다. 글을 읽다가 뜻이 통하지 않아 페이지를 덮는 일도 많아졌다.
그래서 요즘은 다른 책들을 기웃거린다.
언어에 대해, 우리말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어졌다. 말이 곧 사람이고, 마음이라면, 나는 조금 더 따뜻하고 단정한 언어를 쓰고 싶었다. 그 무렵 만나게 된 책이 황선엽 작가의 『단어가 품은 세계』였다.
작가는 말한다. "단어는 기억의 그릇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내뱉는 말 한 줄기에도 삶의 흔적이 쌓여 있다고.
‘존재’, ‘마음’, ‘경청’, ‘책임’ 같은 익숙한 단어들을 그는 마치 오래된 항아리처럼 하나하나 열어 보이며, 그 안에 담긴 시간과 감정을 꺼내 놓는다.
예컨대 ‘경청’이라는 말은 단순히 잘 듣는다는 의미를 넘어서, 상대를 향한 깊은 존중을 담고 있다.
‘존재’ 하나에 하이데거의 철학이 담겨 있고,
‘책임’이라는 단어엔 누군가를 향한 선택과 응답의 무게가 실려 있다.
단어는 그렇게, 말 이상이 된다. 사람의 태도이고, 삶의 모습이며, 사유의 구조다.
책은 단어를 분석하기보다 감상한다.
차갑게 해부하지 않고, 따뜻하게 들여다본다.
그래서 더 쉽게 마음에 스며든다. 분석보다 공감, 설명보다 묵상. 덕분에 나도 모르게 천천히, 오래 머물러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쓰던 말들이 조금씩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괜찮아”, “고마워”, “사랑해” 같은 말들이 더는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안엔 누군가의 마음이, 오래된 시간이, 그리고 나의 서툰 진심이 담겨 있었다.
이제 나는 말 앞에서 조금 더 멈춰 선다.
조심스럽게 단어를 고르고, 그 안에 담길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려 한다.
말은 곧 마음이니까. 그리고 단어를 아끼는 사람은 결국, 사람을 아끼는 사람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