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식의 정치학, 그리고 민생지원금

by 막둥님

휴먼들 세상엔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날들이 참 많다. 초복, 중복, 말복 같은 것도 그렇고, 무슨 날마다 뭐 좀 먹어야 한다는 이상한 문화가 있다. 특히 여름이면 “몸보신”이란 이름으로 이것저것 챙겨 먹는다. 뭐, 우리 집 여자 휴먼도 한때는 그런 몸보신이 꽤 중요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 막둥이와 함께 살며 개과천선했다. 날 만나고 나서 변한 거니까, 나한테 참 고마워해야 할 거다.

내가 어릴 적, 길을 걷다 보면 ‘영양탕’, ‘보신탕’ 같은 간판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마음이 철렁했었다.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간혹 그 글자들이 눈에 들어오면 털이 쭈뼛 선다. 난 고기 좋아하지, 근데 그 고기는 아니야.

그런데 요즘 들리는 얘기론 ‘민생지원금’이라는 게 나왔단다. 우리 집 남자 휴먼은 그걸로 내 간식을 샀다고 자랑이다. 웃기지 않나? 내가 간식을 먹을 때마다 "이거 내 지원금으로 산 거야!" 하고 꼭 강조를 한다. 나한테는 그저 간식일 뿐인데, 이 간식 하나에도 휴먼들의 복잡한 정치가 들어있단 말이지.

며칠 전, 우리 집에 남자 휴먼의 친척이 놀러 왔는데, 내 간식을 왕창 사다 줬다. 세상에, 나는 그렇게 맛있는 간식을 처음 먹어봤다. 소고기를 돌돌 말아놓은 간식!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고, 그 향은 나를 천국으로 데려가는 맛이었다. 평소 내가 먹던 건 관절 영양제, 유산균 이런 것들이었는데 말이지. 그건 뭐랄까, 맛보다는 건강에 더 신경 쓴 느낌?

그날 이후, 내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우리 집 여자 휴먼은 걱정스럽게 내 얼굴을 닦아주며, “알레르기 아니야?” 하고 속상해했다. 닦아주는 손길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맡기게 됐다. 그런데 문제는 남자 휴먼이다. 닦아준다더니 아주 거칠게 문질러서, 눈꺼풀에 상처까지 생겼다. 내가 좋아하겠나? 안 그래도 눈물 나는데 더 짜증이 났다.

그런데 남자 휴먼은 또 기분이 나쁜 모양이다. 내가 여자 휴먼에게만 애교를 부리는 것 같다고, 자기를 무시한다고. 아니, 내가 무시하는 게 아니라, 자꾸 아프게 닦으니까 그렇지. 그래도 자존심이 상했는지 요즘은 간식을 열심히 갖다 바친다. 물론 그럴 때만 살짝 꼬리를 흔들어준다. 나도 나름 전략이 있는 개다.

간식이 오가며 여자 휴먼과 남자 휴먼은 또 티격태격했다. 알레르기로 눈물 난 이후로 여자 휴먼은 그 간식을 봉인해 두고, 대신 남자 휴먼의 민생지원금으로 새로운 간식을 사 왔다. 남자 휴먼은 "이거 내 돈으로 샀다고! 내 지원금!" 하고 또 한 번 강조. 여자 휴먼은 “그러면 이건 네 간식이 아니라 막둥이 간식이야. 헷갈리지 마.” 하며 정리를 해줬다. 그러니까, 내 간식을 누가 샀는지가 휴먼들 사이에서는 중요한 문제인가 보다.

참, 휴먼들이란… 귀엽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하다.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간식 많이 주면 좋을 텐데. 어차피 다 내가 먹을 건데 말이야.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어떤 간식이든 상관없다. 나를 위해 정성껏 챙겨주는 그 마음이 더 좋다. 뭐, 맛있으면 더 좋고.

요즘은 날이 너무 더워서 새벽마다 시원한 자리를 찾아 방안을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휴먼들도 더운지 밤새 선풍기, 에어컨, 얼음물 삼종세트로 버티고 있다. 나도 밤새도록 눕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다 보니 잠을 설친다. 빨리 가을이 왔으면 좋겠다. 그럼 다시 이불속 파묻히는 계절이 올 텐데.

오늘 아침에도 여자 휴먼은 내 눈을 조심스럽게 닦아주며, “우리 막둥이, 오늘은 눈 안 아프지?” 하고 속삭였다. 나는 눈을 끔뻑이며 대답했다. “웅, 간식은 많고, 눈은 안 아픈 하루면 좋겠어.”



그게 바로 나, 막둥이의 평화로운 여름날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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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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