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단톡방에 문자를 올렸다.
“오늘 나와 점심을 같이 먹어줄 사람 있을까요?”
그 문자를 보내고 나서야 조금은 쑥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누군가와 밥을 함께 먹을 수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갈 것이고,
아무도 없으면 뜨끈한 쌀국수를 한 그릇 먹고 서점에 들러 책을 읽어야지, 그렇게 마음을 정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바로 답이 왔다.
“언제, 어디서?”
단순한 그 한마디가 내 마음을 스르르 녹였다.
비록 이미 점심시간이 지난 뒤라 “다음엔 미리 알려 달라”는 답으로 마무리되었지만,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의 온도가 1도쯤 올라간 듯했다.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 내려오는데 또 한 분이 댓글을 달았다.
“밥 줄 테니 와요.”
그 짧은 문장에 이끌려 발걸음을 원적산 공원 쪽으로 향했다.
내가 도착하려면 식사 때는 한참 지났을 텐데도 기다려 주셨다.
그 마음 하나에 이미 따뜻함이 느껴졌다.
나는 계획형 인간이 아니다.
즉흥적인 감정과 생각에 따라 움직인다.
그래서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에게는 때때로 이해하기 힘든 존재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오늘, 나의 즉흥적인 ‘번개’를 기꺼이 받아 주시고
그 안에서 함께 기뻐해 주신 분들이 있었다.
밥상 앞에 마주 앉았을 때, 말보다 눈이 더 많은 이야기를 했다.
입술은 닫혀 있었지만 그분의 눈에서는 위로가 흘렀다.
순간, 난 이미 정답을 알고 있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시간이, 이 만남이 바로 주님이 예비하신 선물임을.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알기에
그저 이 따뜻한 자리에 머물며 밥 한 숟가락을 감사히 뜰 수밖에 없었다.
식사가 끝나자 조그만 가방에서 예쁜 잔과 따뜻한 물이 나왔다.
직접 준비해 오신 커피였다.
거기에 나중에 합류하신 목사님이 보따리를 하나 풀어놓으셨다.
그 안에는 과일, 과자, 그리고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마도 내 연락을 받고 집 안에서 눈에 보이는 마음들을 다 챙겨 오신 듯했다.
우리는 넓은 공원의 벤치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분들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내 마음의 온도를 한층 더 올려 주셨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뭐라도 손에 들려 보내고 싶어 하시던 그 따뜻한 마음에
문득 아버지의 사랑이 겹쳐 보였다.
그렇게 주님은 오늘도 나의 하루를 선물처럼 포장해 주셨다.
계획도 없이 시작된 하루였지만, 결국 주님은 그 무계획 속에 가장 완벽한 계획을 숨겨 두셨다.
그분을 통해 내 걸음을 인도하시고, 사람을 만나게 하셨다.
그것이 오늘 내 하루의 기적이었다.
간사님들은 늘 말없이 나를 품어 주신다.
오늘도 그랬다.
간사님이 전해주신 글귀가 마음에 오래 남아 이렇게 적어 본다.
사랑은 미안해하는 것이다.
에릭 시걸의 소설 『러브스토리』에는 유명한 문장이 있다.
“사랑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거야.”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정말 사랑한다면,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해야 한다.
때로는 ‘사랑해’라는 말보다 ‘미안해’라는 말이
더 큰 위로와 치유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기네스북에 80년간의 최장수 부부로 기록된
영국의 애로 스미스 부부도 행복의 비결을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늘 미안하다고 말했어요.”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부모가 자녀에게 “미안해”라고 말할 때
그 말 한마디가 사랑의 회복을 일으킨다고 한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안해’라는 말을 기다리게 만드는 일,
그것보다 더 미안한 일은 없다는 것이다.
오늘 간사님이 내게 전해준 이 글은
그분의 마음이 그대로 담긴 위로였다.
그리고 나에게도 깊은 울림이 되어 다가왔다.
‘미안해’라는 짧은 글자 속에는
사랑, 배려, 그리고 관계를 회복시키는 힘이 있었다.
오늘 하루는 계획에 없던 만남이었지만
그 만남 속에서 ‘미안해’와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가 교차했다.
그 덕분에 내 마음의 온도는 다시 1도, 아니 그 이상 올라갔다.
주님이 허락하신 하루,
그 안에 담긴 사랑의 온기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