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앞에서, 다시 낮아지다.

by 막둥님

하나님을 안다고,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었다. 그러나 매번 그 확신이 내 무모함으로 드러날 때마다, 난 주님의 그림자를 다시 보게 된다. 주님은 언제나 내 생각보다 한 걸음 앞서, 조용히 내 걸음을 인도하고 계셨다. 김기석 목사님은 “하나님은 우리의 확신을 흔들어 그분의 신비 속으로 이끄신다”라고 했다. 나는 그 말씀을 이제야 조금씩 이해한다.

매일 새로운 사건 앞에서 주님은 또다시 새롭게 다가오신다. 익숙한 자리, 익숙한 믿음의 언어 속에서조차 주님은 낯설게 오신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다. 그분의 임재 앞에서 한 걸음씩 내딛는 이 걸음이, 어쩌면 믿음의 본질이 아닐까. 오늘도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또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나 주님을 다 안다고 확신하는 순간, 그분의 생각은 늘 내 생각 너머에 있음을 깨닫는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하나님을 말했던 시간들이 있다. 그때의 나를 돌이켜보면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그 부끄러움은 내 자존심을 흔들고, 때로는 나를 더욱 강퍅하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기다리신다. 김기석 목사님은 “하나님은 실패한 인간의 어깨 위에서 역사를 새로 쓰신다”라고 했다. 그 기다림이 은혜임을, 나는 이제야 조금 안다.

믿지 않는 자들이 믿는 자를 바라볼 때, 믿는 자들이 서로를 바라볼 때조차 모순과 판단이 가득하다. 사람은 본래 모순 덩어리다. 완전하지 않은 우리가 완전하신 하나님을 말하려 하니 어찌 모순이 없겠는가. 그러나 그 모순의 깊은 틈 사이로 은혜가 스며든다. 상처 난 자리에서만 꽃이 피듯, 연약함의 틈새로 주님의 빛이 스며든다.

기도의 자리에서 나는 주님께 묻는다. “주님, 지금 제게 주시려는 마음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잠시 머문다. 생각을 내려놓고 그분의 생각을 기다려본다. 그러나 기다림은 쉽지 않다. 조급한 마음에, 주님의 사인을 받기 전 내 생각을 앞세울 때가 있다. 그때마다 주님은 나를 회개의 자리로 부르신다. 얼마나 교만했는지, 얼마나 내 결정에 그분의 동행을 지워버렸는지를 보게 하신다. 김기석 목사님은 “믿음은 내 생각을 관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에 길을 내어드리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 길 위에서 비로소 나는 멈추고 다시 낮아진다.

돌이켜보면 주님은 언제나 그 자리에 계셨다. 내가 외면해도, 침묵해도, 그분은 내 걸음 속에서 나를 붙들고 계셨다. 내가 한 일이라 믿었던 그 자리에, 사실은 주님이 함께하셨다. 그 깨달음 앞에서 다시 고개를 숙인다. 나의 기도 자리에서 누군가가 위로받고, 마음의 힘을 얻으며, 한걸음 주님의 생각에 맞추어 나아가기를 바란다. 그 길 끝에서 나 또한 누군가의 기도의 열매가 되기를 바란다.

오늘도 주님은 내 안의 고요한 자리에서 말씀하신다. “사랑하라. 먼저 사랑하라.”
그래서 나는 다시 나를 껴안는다. 나의 모순, 나의 실수, 나의 부끄러움까지도 품는다. 그 품 안에서 주님의 사랑이 스며온다. 그분이 나를 사랑하셨듯, 나 또한 사랑하려 한다.
그리고 오늘, 주님 앞에 조용히 고백한다.

“주님, 저를 다시 사랑하게 하소서.
주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품게 하소서.”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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