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계곡물은
말이 없었다.
깊었던 겨울이
하얀 이불처럼 세상을 덮고
모든 소리를 삼켜버렸을 때에도
그 물은 멈추지 않았다.
투명한 얼음 밑에서
가느다란 숨을 고르며
은밀하게, 그러나 단단하게
자기 길을 흘러가고 있었다.
차가운 유리장 속에 갇힌 듯
겉은 고요했으나
속에서는
작은 심장들이 뛰고 있었다.
봄을 먼저 아는 것은
늘 보이지 않는 곳.
얼음 아래에서
물은 낮은 목소리로
생명을 연습한다.
사각,
어디선가 금 가는 소리.
햇살 한 줌이 내려앉자
겨울의 가장자리가
조금씩 풀려난다.
맑은 물결은
빛을 품고 더 또렷해지며
차가움을 밀어내고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다.
얼음이 녹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견딤이 끝났다는 신호.
깊었던 계절을 이겨낸 물은
오늘도
맑은 얼굴로
세상 아래를
살아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