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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Apr 17. 2020

목욕탕이 뭐냐구?

#06. 국제커플 문화 차이 극복기

어릴 적 엄마 손 잡고 다니던 목욕탕이 생각난다. 목욕이 다 끝나면 아빠와 남동생이 늘 밖에서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도 뒤따라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집에 갔던 기억이다. 뜨끈한 탕에 있다가 상쾌하게 나와서 먹는 아이스크림은 아직도 내가 먹어본 아이스크림 Top 5 안에 들어갈 정도. 그렇게 한국에서는 여유가 된다면 주말마다, 안되더라도 한 달에 2번 정도는 다니던 목욕탕인데... 미국에서는 갈 수가 없으니 몸이 근질근질하기 시작했다. 막연히 미국은 목욕탕도 비싸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알아볼 엄두조차 못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날이 점점 따뜻해지고 묵혀두었던 각질을 목욕탕에서 시원하게 벗겨내고 싶은 욕구가 극에 달했을 무렵, 회사 동료로부터 목욕탕 한 곳을 추천받게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목욕탕이었는데 불가마 찜질방도 있는 그야말로 한국식 목욕탕. 너무 궁금한 데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추천받은 바로 그 주말, 날씨 좋은 토요일 아침에 그 목욕탕으로 향했다. 그냥 목욕하러 가는 길일뿐인데 여기서는 이것조차 이렇게 설렐 일이냐며 혼자 피식했던 기억이 난다. 도착한 곳은 정말 한국 목욕탕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것 같았다. 입구의 신발 넣는 라커 하며 탕 내부, 거울 앞 드라이기와 선풍기, 준비된 빗들까지 내가 한국에서 다니던 동네 목욕탕과 싱크로율 100% 아니, 200%였다. 심지어 찜질방에서 파는 한식들까지. 목욕+찜질방 패키지로 1인당 $60이라는 사악한 가격만 아니면 자주 다녔을 것 같은데 아쉬웠다. 


목욕을 마치고 찜질방용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수박 슬라이스를 주문하며, 뭐 하고 있냐는 그의 문자에 '나 목욕탕 왔는데, 이제 수박 먹으려고~'라고 답장을 했다. 목욕탕을 영어로 아무리 생각해봐도 Spa밖에 떠오르지 않아 그대로 썼는데, 'Oooo spa? 에스테틱? 마사지받는 거야?'라고 묻는 그를 보고 '아.... Spa는 동네 목욕탕 느낌이 아니겠구나. 이걸 뭐라 설명해야 하지?' 하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보니 public bath 또는 sauna라는 단어로 사용된다는 걸 알았지만 영 한국 특유의 동네 목욕탕 느낌이 나지 않아 덧붙여 이것저것 더 설명했었다.


'목욕하는 곳은 남자, 여자가 공간을 나누어서 쓰는데, 건식 사우나하는 곳은 공동 공간이야. 거기서 나눠주는 옷을 다 같이 입고 사우나도 하고 밥도 먹고 간식도 먹고 하루쯤 묵고 오기도 해.' 했더니 대뜸 목욕하는 공간에서 그럼 다들 naked로 있냐는 그. 목욕하는 곳에서는 그렇다고 했더니 오 마이 갓을 외쳐대며 상상할 수 없다 했다. 게다가 찜질방에서 하루쯤 그냥 자고 오기도 한다는 말에는 소스라치게 놀라는 눈치였다. 모르는 사람 옆에서 내가 자야 하기도 하냐며, 아님 방이 한 칸씩 따로 있냐고 묻는 말에 더 이상 설명이 어려울 것 같아 다음에 한 번 같이 가자 하고 말았었다.


사실 다른 국제커플들 얘기를 들어보면 한국에 관심이 많아 한국으로 일 하러 왔거나 여행으로 왔을 때 만나서 연인 관계로 발전하는 케이스가 많은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이미 한국 문화에 익숙하거나 그것에 열린 마음인 사람들이 많아 문화적으로 서로 충격받거나 어려움을 겪는 케이스를 잘 보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케이스가 아니었다. 그는 나를 통해 전혀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중이었고 때로 놀라기도 하며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는 중이었던 것이다. 간혹 '이건 절대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아'라며 단호하게 말하기도 하고 말이다. 이번에 말했던 찜질방에서 하루 자고 오기가 그에겐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찜질방을 갈 순 있지만 자고 올 수는 없을 것 같다며 누군지도 모를 사람과 옆에서 잘 수는 없다 말하는 그를 더 이상 설득하는 건 무의미한 것 같아 그럼 어떤 곳인지 언젠가 한번 같이 놀러나 가보자며 그를 진정시켰다. 


이것처럼 나에게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것인데 그에게는 이상하게 느껴진다거나, '이건 정말 이해하기 힘든데?' 하고 말하는 그를 보며 가끔 서운할 때가 있었다. 예를 들어 나는 닭똥집도 좋아하고 염통 꼬치도 좋아하는데, 그에게 그것들은 절대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든가, 날 것을 그대로 먹는 문화를 본인은 이해할 수 없다며 육회비빔밥은 절대 안 돼.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모습 같은 것 말이다. 좋아하는 만큼 함께 하고 싶은 마음도 큰데, 그러지 못하니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의견차는 누구의 잘못도 아닐뿐더러 상대방에게 본인의 것을 강요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서로가 노력해야 하는 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같은 한국 땅에서 태어나 결혼한 사람들도 신혼 초기에는 그렇-게나 많이 싸운다고들 하는데, 우리는 심지어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지 않는가. 찜질방에서 자고 오는 건 힘들 것 같지만, 어떤지 같이 가서 구경해보고 오자 하는 것에는 흔쾌히 오케이 하는 그의 모습에 그도 많이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넘어야 할 산들이 얼마나 더 남아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서로가 가지고 있는 마음가짐과 노력들을 쭈욱 이어가는 게 중요하겠다 생각한 날이었다. 




* 내가 갔던 곳은 뉴저지 Palisades park에 위치한 King SPA&SAUNA였다. 뉴욕/뉴저지 셔틀버스도 있고, 어릴 적 다니던 동네 목욕탕이 그리운 사람이라면 이곳 추천! 가격은 홈페이지에 나와있고, 온라인으로 티켓을 미리 구매하면 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그루폰에서도 종종 할인가로 판매하고 있으니 미리 온라인으로 티켓을 구매한 후 방문하길! (kingsaunanj.com)


* 이후 그와 함께 방문한 목욕탕은 뉴저지 Fortlee에 위치한 SoJo Spa Club이었다. 이곳은 동네 목욕탕이라기보다는 사우나&노천탕&찜질방이 어우러져 있는 신식 목욕탕이다. 평일 $55, 주말 $75에 내부에서 먹는 식사도 그리 저렴한 편이 아니었기에 조금 부담스럽긴 했지만, 하루 날 잡고 푸욱 쉬다 오기에 안성맞춤이고 그만큼 값어치를 한다. 저녁쯤 됐을 때, 야외 노천탕에서 바라보는 맨해튼 뷰는 정말 말도 안 될 만큼 훌륭하고 무엇보다 시설이 너무 깨끗하게 잘 되어있어서 좋았다. 그가 그의 가족&친구들에게까지 추천한 곳! 강추 강추! (www.sojospaclu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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