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악의 날
23년 1월은 내 인생에서
손꼽히는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비자가 거절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절대 거절될 수 없다고 믿었던 학생 비자였다.
유학원의 과실로,
출국 일주일 전에 비자가 거절되었다.
하필이면 남편이 휴직계를 제출한 바로 그날이었다.
운전 중에 유학원에서 전화를 받았다.
더는 운전을 할 수가 없어
길가에 차를 세웠다.
누가 망치로 내 뒤통수를 내려친 것 같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이 일을 또 나혼자 해결하고
견뎌내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했다.
집은 이미 다 정리했고,
나와 아이들은 동생 집에서 임시로 지내고 있었다.
남편은 근처 고시원에서 혼자 지내고 있을 때였다.
ㄴㅏㅁ.
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늘 내 몫이었다.
내가 가자고 해서 가는 유학길이었다.
아무리 상의를 했고,
결정을 남편이 했다고 해도
결국 이 모든 건 오롯이 내 책임이 된다.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더 무서웠다.
이걸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시도 때도 없이 숨이 막히는 것 같은 시간들이었다.
동생은 자기 일이 아닌데도
내가 얼마나 시달리고 힘든지 알아서
자기 일처럼 여기저기 연락하고 도와주었다.
비자 거절 이력이라는 리스크를 안고
맡아주겠다는 유학원은 없었다.
정말 이틀 동안
미친 듯이 오만 데를 다 연락했던 것 같다.
얼마나 대충 알아보고 했으면
거절이 된 거냐며,
네가 다 알아서 하라는
남편의 말이 계속해서 귓가에 맴돌았다.
과장급으로 고르고 골랐고,
큰 유학원이었다.
박람회도 몇 번이나 가고,
서류도 꼼꼼히 검토했다.
내가 다 알아서 할수 있는 거였다면
유학원을 통해서 했을까?
이게 어떻게 내 잘못일까?
내 잘못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나를 탓했다.
검토를 더 했어야 했어.
내가 더 꼼꼼하게 봤어야 했어.
습관처럼, 나는 나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심장이 너무 뛰어서 잠도 잘 수 없었다.
원형 탈모까지 생겼고,
결국 신경정신과에 가 상담을 받은 뒤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공황장애 약을 받아 나왔다.
그즈음,
브리즈번에 있는 현지 법무사분에게
맡아줄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법무사님과 추후 계획을 상담했고,
시드니에서 브리즈번으로 도시를 변경해
관광 비자를 받아
온 가족이 함께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나 혼자 먼저 들어가
비자를 받고 가족이 움직이기로 했지만,
나는 도저히 아이들 없이
지낼 자신이 없었다.
결국 모든 짐을 이고 지고
관광 비자로 들어가는 방법을 택했다.
코로나 여파로
브리즈번 직항이 없었기에
우리는 시드니로 입국해
8일 정도 머문 뒤
국내선을 타고 브리즈번으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일단은 도전해 보기로 했다.
혹시라도 학생 비자가 또 거절되면
그때는 그냥 돌아가기로 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수습했고,
모든 서류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준비했다.
4월 1일, 시드니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온쇼어로 비자를 준비했고,
학교 수속부터 비자까지 빠르게 진행했다.
5월 초 비자를 접수했고,
정확히 3일 만에
우리의 학생 비자는 승인되었다.
법무사님의 전화를 받고
얼마나 엉엉 울었는지 모르겠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지난 두 달이
얼마나 지옥 같은 시간이었는지.
호주에 도착해서도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공황장애 약이 없이는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이제 나에게는 새로운 시작이었지만,
아주 깊었던 골짜기에서
이제 겨우 한 발짝 나온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