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1. 프롤로그

by 소안

1) 프롤로그


번호 키 누르는 소리를 들은 선영은 뱁새눈을 한 채 중문 앞에 섰다.

"외박을 하려면 연락을 해야 걱정을 안 할 것 아니니? 그런데 너 얼굴이, 옷은 이게 또 뭐고…. “


래 들어 잦은 아들의 일탈에 밤새 마음 졸였던 선영은 정수의 몰골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춘기도 훌쩍 지났거늘 마치 삐뚤어질 거라고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버릇없이 굴어서 녀석을 벼르고 있던 참이었다.

"이제 싸움까지 하고 다니니? 엄마하고 얘기 좀 하자!"

"저 너무 힘들어요. 나중에 하세요"

문 닫히는 소리에 선영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기실 정수의 몸은 힘든 정도가 아니었다. 금방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간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상태였다. 간밤에 지옥에 다녀온 듯했으니 집에서 나갈 때 모습으로 귀가할 수 없었던 건 당연했을 터였다. 칠흑 같은 산속에서 넘어지고 구르며 만신창이가 되어 겨우 집에 왔거늘 어찌 제정신으로 선영과 고조곤히 대화를 할 수 있겠는가.

"여그 사무실이 내 집인 게 시방 와도 된다게요!"

"네, 지금 가겠습니다."

정수가 기다리고 있던 연락을 받은 것은 티브이 9시 뉴스에서 스포츠 소식을 전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어머니도 카페 영업을 끝내고 곧 돌아올 시간이었다. 전화를 끊은 정수의 심장박동이 방망이질하듯 쿵쾅거린다. 두루뭉술한 어머니와 이모의 대화를 들은 뒤부터 하루하루가 혼곤하기만 했다. 듣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들었으니 그냥 흘려버릴 수 없었다. 이모의 말이 별거 아닌 게 아닌 것 같아 말의 뿌리를 캐내어 실체를 확인하고 싶었다. 전화를 걸어온 사내에게 듣게 될 확연한 진실은 무엇일까? 정수는 자꾸만 발목을 잡는 신호등 아래에서 안절부절못한다. 정수의 자동차가 시내를 벗어나자 마침맞게 한갓진 도로는 과속을 부추겼다. 하지만 급박한 질주는 오래가지 못했다. 정수는 규정 속도를 준수하며 선행하는 차 꽁무니에서 속도를 늦추며 투덜거렸다. 경음기를 신경질적으로 울려봐도 소용없었다. 상향등도 번쩍여보지만, 동물 출현 주의라는 반사광 팻말만 반응할 뿐 앞차는 우직하게 규정 속도를 준수했다. 조급함이 극에 달한 정수는 어쩔 수 없이 호시탐탐 추월 기회만 노린다. 곧이어 전조등에 비친 곧은 도로가 나타나자 정수는 중앙선을 넘어 가속 페달에 힘을 실었다. 이윽고 정수의 BMW가 포효하며 튀어나가 규정속도의 차를 추월하려던 순간이었다. 정수의 의식이 찰나보다 빠르게 핸들을 틀게 했다. 동시에 몸이 출렁거렸고 귓속으로 둔탁한 소음이 파고들었다. 차에서 내린 정수는 주위를 살펴보지만 규정 속도의 자동차는 사라지고 없었다. 정면에서 날아왔던 불빛의 자동차도 사고를 인지하지 못한 건지 보이지 않았다. 정수의 자동차만 심하게 찌그러져 차도에 대각선으로 서 있었다.

"뭐지? 분명 그 차와 부딪쳤는데."

그때 도로 저쪽에서 또 다른 불빛이 보였다. 정수는 얼른 도로 가장자리로 자동차를 옮기고 숨죽이며 불빛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불빛은 움직임이 없었다. 의아함이 든 정수가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런데 가만 살펴보니 불빛은 도로 저쪽에서 오는 게 아닌 도로 저 아래 낭떠러지에서 빛나고 있었다. 규정 속도의 자동차는 그 아래에서 배를 드러내고 넉장거리로 나자빠져 있었다. 칠흑 같은 밤이었으나 보름 달빛에 자동차의 처참함이 여실히 그러나 있었다. 뒤집힌 채 하늘로 올라가기라도 하려는 듯 바퀴는 허공에서 저 홀로 돌고 있었고 꺼지지 않은 전조등은 놀라 오스스 떨고 있는 갈대를 조명하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믿을 수밖에 없는 사실로 눈앞에 펼쳐지자 정수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 두려움이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했다. 정수는 서둘러 자동차 파편을 주워 차에 싣고 서둘러 사고 현장을 벗어났다. 식은땀이 온몸을 적시는 것도 모르고 정신없이 달렸다. 돌연 속이 울렁거리더니 뱃속 모든 게 밖으로 솟구치려 하고 있었다. 마지못해 차를 세운 정수는 오장육부의 모든 걸 게워냈다. 몸은 사시나무 떨듯 와들와들 떨려왔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정수는 도리질 치며 사고를 낸 건 자신이 아니라고 억지로 부인했다. 정면에서 날아왔던 불빛의 자동차 운전사가 사고를 유발한 것이라고 그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미상불 정수는 죄 안 짓고 사는 게 삶의 최고 가치라 여기는 어머니의 교육 덕에 길거리에 침 한번 뱉은 적이 없고 교통 과태료 또한 끊어 본 적이 없는 도덕적으로 무장한 청년이었다. 그랬기에 더욱 이 사고를 현실로 받아들이기가 힘든 정수이다. 망연자실해 있던 정수가 번쩍 정신을 차린 건 찰랑거리는 호수의 물결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골똘하게 생각에 잠겨있던 정수가 차에 올랐다.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돌다 차를 수장시키자는 결론에 이른 터였다. 이윽고 정수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자동차 시동을 걸자 어떤 새 한 마리 푸드덕거리며 호수를 가로질러 달아난다. 새가 날아간 방향으로 차를 돌려놓고 기어를 넣은 정수는 재빨리 차에서 튀어나왔다. 자동차는 홀로 스르르 언덕을 굴러내러 가 호수로 돌진하더니 꿀렁꿀렁 숨넘어가는 소리를 낸다. 자동차를 삼켜버린 호수에는 본연의 고요를 되찾았다. 정수는 혹여 자신의 만행을 좇는 시선이라도 있을까 주위를 살펴보지만, 그 어떤 눈 달린 짐승도 보이지 않았다. 어두운 사위만 괴괴했다. 달빛마저 모른 척하는 건지 구름 뒤에 숨어있었다. 안도감을 느낀 정수가 휴대폰 라이트를 켜고 자동차가 밟은 풀들을 매만지며 흔적을 지웠다. 그때 커브길 너머에서 자동차 불빛이 정수를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린 정수는 풀들과 일심동체가 되어 바닥에 엎드려 숨을 죽였다. 빠른 불빛의 자동차는 정수의 만행을 알 리가 없었기에 꽁무니에 빨간빛을 매달고 멀어져 간 갔다. 보름달도 모든 상황이 끝났음을 알았는지 구름을 벗어나 휘영청 밝은 빛을 드러냈다. 달빛에 호수는 보석을 흩뿌려 놓은 것처럼 환희롭게 반짝인다. 잔잔하게 찰랑거리는 물결도 호수의 무탈을 대변하는 듯했다.

허탈함이었으리라. 아니면 불안감이었던지, 풀밭에 털썩 주저앉은 정수가 줄 담배를 빨아들이며 완전범죄를 위로한다. 한참보다 한참이나 짧은 잠깐의 위로에 안정을 찾은 정수가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문득 윤슬의 아름다움이 이 와중에도 느껴지는 건 무엇일까? 무심하여 안 보였거늘 유심한 순간 눈에 들어옴은 자신도 아무 일 없었다는 자기 최면에 걸린 탓이리라.

동녘 산등성이에 희붐한 여명이 돋아날 무렵 요란한 소리를 지르며 경광등을 번쩍이는 자동차들이 급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정수는 길옆 나무 뒤로 재빨리 몸을 숨겼다. 도로를 걷던 정수가 시내 입구에 들어서자 멀리 CCTV가 눈을 부라리며 서 있었다. 깜짝 놀란 정수는 카메라를 피해 산속으로 들어갔다.


어머니의 지청구를 뒤로하고 방으로 들어온 정수는 쓰러지듯 침대에 몸을 던지고 깊은 잠에 빠졌다. 하루의 오후가 중간쯤 넘어갈 무렵 잠에서 깬 정수는 휴대폰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휴대폰을 든 손을 심하게 떤다.

"어젯밤 m 시 외곽 도로에서 승용차가 10m 언덕 아래로 추락했으나 차에서 구조한 두 명의 여성은 기적같이 생명을 건졌고 크게 다치지도 않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정수는 이런 기사를 찾고 있었으나 하지만 그런 기사는 희망 사항에 불과했고 희망 사항임을 자각하는 데는 순간이면 족했다. 기대는 그야말로 기대일 뿐이었고 이런 기사가 정수를 기지 사경에 빠트렸다.


"어젯밤 시내 외곽 도로에서 승용차가 10m 언덕 아래로 굴러 타고 있던 두 명의 여성 중 한 명은 사망했고 다른 여성도 생명이 위독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경찰은 추돌 사고를 일으키고 도주한 차량을 추적 중입니다"

침을 욱여 넘기며 기사를 읽는 정수의 심장박동이 요동치고 있었다.


2) 그 섬에 웃는 상괭이가 산다….


1.

먼 길을 달려온 겨울이 기운을 잃자 그 틈에 본 것들이 슬그머니 다가와 이것들, 무에 그리 급했던지 이파리를 앞질러 꽃부터 피운다. 드레드래 피운 꽃들의 뽐냄은 또 어찌도 이리 치열한지, 이에 겨울도 잃은 존재감을 찾으려 하는지 꼴값을 떨며 바람을 일으켜 본다. 하지만 그 꼴이 민들레 홀씨 겨우 날리는 형국이라 본 것들과 겨루기에는 가소롭기만 하다.


"이러다 막 배도 놓치겠는걸…."


자동차가 가다 서기를 반복하자 선영은 손가락을 잔망하게 놀리며 핸들을 톡톡 친다. 조바심이 일었던 거다. 라디오에서 스테어웨이 투 헤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선영은 얼른 채널을 2번으로 바꿨다. 지고이네르바이즌의 바이올린이 절규하는 듯하다.


"좀. 좀. 그만 따라다닐 수 없니 너희들!.


계절에 걸맞지 않은 더위가 느껴진다. 선영은 신경질적으로 라디오를 끄고 휴대폰을 페어링 했다. 피아졸라의 망각이 마음을 다독였다. 에어컨을 틀며 선영은 또 구시렁거린다….


"시원하여라. 시원하여라 가슴속 찌꺼기 모두 덜 어버리게 시원하여라."


에어컨이 시원함을 가져왔지만, 자동차는 여전히 연휴를 꼬리에 매달고 어기적거린다. 그때 딴짓하던 선영의 귀에 날카로운 소리가 파고들었다. 화들짝 놀라 액셀을 밟아보지만, 앞차는 이미 저만큼 줄행랑쳐 가물거렸다. 머리 위에 얹혀있던 선글라스를 낀 선영이 삽상한 질주를 시작한다. 도로 먼 곳에서는 아지랑이가 오글오글 피어오르고 있었다. 촉급하게 한나절을 달려온 포구에는 낯빛이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잔광에 떠밀려 온 산 그림자는 어둠을 동반하고 바다 위에 길게 퍼질러 있었고 지나다니는 배들은 통통거리는 소리로 존재를 알렸다. 막 배를 타려 했던 계획이 틀어지자 선영은 괜한 부지런을 자책했다. 때마침 휘황한 간판이 들어왔다. 객실에 들어선 선영은 침대의 유혹에 모습 그대로 잠에 빠진다….

시간을 좇던 낯빛이 커튼 틈으로 가시광선을 만들어 선영의 얼굴을 찌른다. 침대에서 튕기듯 몸을 일으킨 선영은 기지개를 켜며 커튼을 걷혔다. 별안간 빛이 우르르 몰려와 선영의 온몸을 해작질해 댄다. 새로운 환경이 마음을 누그러트렸고 가슴에 가득했던 고독도, 발작처럼 달려드는 외로움도 이 분의 일쯤은 덜어진 것 같았다.


"어머! 씻지도 않고 잤네…?


욕실로 향하는 몸짓이 부산스럽다. 선영이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는 철부선이 오라에서 풀려 떠나려 하고 있었다. 선영은 두 팔을 하늘로 치켜 흔들었다가 합장을 하고 읍소해보기도 하면서 태워줄 것을 바랐지만 철부선은 냉정하게 방향을 들었다.


"이를 어째, 다음 배 타려면 두 시간이나 기다려야 하는데, "


여객선 꽁무니를 바라보며 허탈해하던 선영은 편의점 커피 한잔 뽑아 들고 차에 앉아 지고이네르바이즌을 틀었다. 듣지 않았으면 하면서 들으려는 이율배반적인 행위에 자조 섞인 한숨이 나온다. 어쩔 수 없을 터였다. 누구나 그러하듯 홀로 바다에 온 선영도 고독에 쩔쩔매야 했기 때문이다. 선영은 순간 닥쳐온 비애의 감정을 떨쳐내려 음악을 꺼 보지만 별 소용이 되지 못했다. 이미 뼛속까지 침잠해 온 슬픔이 눈자위를 불콰하게 달아오르게 했기 때문이다. 명징한 바다와 달리 가슴은 어스레하게 잠식되어 아침에 덜어냈던 고독을 하루도 지나지 않아 다시 불러들였다. 선영을 외면하고 떠난 철부선은 수평선에 걸려 아슴아슴 멀어져 갔다.

선영은 새삼스럽게 3년 전 이곳에 왔던 때를 들춰본다. 그때는 바다에 안긴 산들도 노을처럼 붉게 물들었던 난숙한 가을이었다. 이혼하고 난 다음 날이었다. 재혼마저 파경을 맞은 건 7년 만이었다. 남편이 사실혼 관계에 있었던 사람이었고, 게다가 딸까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였다. 선영에게 결혼은 애당초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너절한 팔자를 타고난 건지, 7년의 결혼 생활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불편하기만 했다. 확 벗어 찢어버리고 싶은 기나긴 세월이었다. 남편에게 세 살 된 딸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속아서 결혼했다는 걸 알았을 때는 전생에 죄가 많은 것인지, 아니면 조상 탓인지 사납기만 한 팔자에 굿판이라도 벌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남편의 말인즉 아이 엄마와 이미 헤어진 사이인데, 자신의 재혼 사실을 알고 아이를 볼모로 돈을 요구하는 것이라 했다. 아이도 본인 아이가 아니라고 했다. 자신도 남의 아이를 가진 그 여자에게 속아 삼 년 같이 산 것뿐이라 했다. 법적으로 미혼인 걸 보면 모르겠냐며 정당함을 토로했다.
그랬다. 남편은 법적으로 미혼이었기에 혼인신고가 가능했다. 선영은 결국 떳떳함을 궐기했던 남자의 청산유수에 꼬리를 내렸고, 남자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하는 생각이 결혼의 늪으로 빠져들게 했다. 남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들에게도 친부 못지않은 부성애를 보였고, 선영을 사랑하는 마음도 넘칠 만큼 충만했기에 남편이 정말로 여자에게 발목을 잡힌 것이라 믿었다. 믿음이 그 여자에게 한밑천 챙겨주게 했고, 그렇게 남편으로부터 떼어냈다.

선영과 마주 앉은 그 여자는 물컵 세례의 대가치곤 꽤 괜찮은 거래라는 듯 얼굴을 닦아내며 웃었다. 그런 뒤 남자는 잠자리에 더욱 정성을 다했다. 과거로 치자면 자신도 큰소리칠 입장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던 선영이었다. 조목조목 따지고 든다면 남자가 오히려 선영을 타박해야 옳은 듯싶었다. 선영이 남편의 흠집에 아량을 베푼 것도 이러한 연유였을 것이었다. 삼 년은 평온을 유지하며 살았다. 아들도 말썽 한번 피우지 않고 줄곧 우등생 소리를 들었으며, 엄마 친구 아들 역할에 모자람이 없었다. 선영은 그때 지리멸렬한 자신의 삶이 결혼으로 인해 행복으로 점철되어 감에 남편에게 고마움까지 느꼈었다. 그랬던 게 자신을 피폐함에 빠트린 제 발등을 찍은 도끼가 될 것이라는 건 예상 못 한 불찰이었다. 남편의 비밀을 알았을 때 싹수를 보고 이혼했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절치부심에 애간장 끓이지 않아도 됐을 터이고 재산도 축내지 않았을 것인데, 우유부단함이 선영을 전처리 치게 했다. 어쩌면 우유부단함이 아닌 똥 묻은 개가 똥물은 개 나무라는 격이라는 선영의 양심이 그러하지 못하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남편도 서서히 선영에게 싫증을 느끼기 시작한 건지, 말하는 틈 속마다 가시가 있었다. 예를 들자면 이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