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구 주변의 한낮은 미세먼지의 밀도 때문인지
인류가 멸망하는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어두워지기 직전의 쫓겨나는 낯빛 전기 코드를 뽑았을 때 식어가는 장판의 표면 같은 쓸쓸함 속에서 바다 여행의 정취를 느낀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돌부처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바다는 썰물로 인해 감춰졌던 세상살이의 온갖 폐기물들이 드러났고 그나마 빠지지 않은 물속에는 생명체라고는 볼 수가 없었다.
몇 년 전 이맘때, 이 바다에서 건져 올린 물고기의 앙칼진 모습이 생각났다.
그런데 작년부터 시작된 근처 발전소 공사로 인해 바다의 조류가 멈추고 해변의 모래톱이 사라지고 급기야 더는 이곳 바다에서 물고기 구경을 할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한때 반나절이면 횟감 거리는 충분히 내어주던,
바다의 불가역적인 고집도 인간의 횡포 앞에 기억 저편에서만 존재하고 있었다.
인간의 이기적인, 혹은 지구의 주인공 것 같은 착각이 지구상 먹이사슬 최상위의 포식자가 되어 아름다운 자연을 먹어치워 버렸고
바닷가엔 지극히 인공적이고, 아름다움을 모방했으나 전혀 아름답지 않은 조각 작품이라는 구조물들만 덩그러니 볼품없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찬 콘크리트 의자 위에 앉아 있던 내 오른편 눈에 바다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방치된 폐어선이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그 느낌의 이유는 몇십 년인지 그 명맥을 유지한 수명 다한 목선이 너무나 자연적인 사물인 것처럼 놓여 있는 사실 때문이었다.
물론 그 느낌은 내 심리의 단면을 반영하는지도 모르겠다.
초점 잃은 눈으로 폐어선을 바라봤다.
주변 말라비틀어진, 계절을 쫓아가지 못하는 꽃보다 더욱 자연스럽게 콘크리트 위에 서 있는 폐어선,
눈물이 날 정도로 서서히 풍화되어 가는 목선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는 나의 시선이 흩어진 건 물이 빠져 드러난 펄 위에서 한 노인이 허리를 구부리고 무언가에 열중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음은 바지를 걷어 올리고 펄 속으로 들어가 그 노인의 열심에 참여해보고도 싶었으나
펄로 인해 신발이 더러워지는 게 두려워 그 노인을 향한 흩어진 시선만 유지할 뿐이었다.
최대한 신발에 오물이 묻지 않을 만큼만의 거리까지 다가간 곳에서 드러난 그의 얼굴이 어딘가 낯익었다.
"뭐 잡으세요 이런 곳에 무슨 생명체가 있나 보죠?",
순간, 노인의 얼굴이 작은 혼란에 빠진 듯 굳어 있었다.
"아닙니다. 혹시 낚지라도 있을까 두리번거려 보는데 역시 살아있는 그 무엇도 보이질 않네요! “
먼바다 쪽으로부터 동풍이 불어오기 시작했고 펄 주변의 낯빛은 더욱 음산해졌다.
그의 한탄 섞인 대답으로 인해 그와 내 시선이 닿은 펄의 존재감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와 우주의 어떤 별 표면처럼 일그러졌다.
"여기 예전에는 썰물 때도 펄이 드러나지 않던 곳인데 왜 이렇게 됐나요?”
“맞습니다. 한때는 만선을 하고 돌아온 어선들로 장사진을 이루던 곳이었죠
그런데 지금 보세요
그 배들이 저기 숲에 나뒹굴고 잇지 않습니까?”
노인의 대답이 서늘하게 느껴졌다.
나뒹군다는 말에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길섶으로 돌리자 아까 보았던 배가 아닌, 멀쩡하게 보이는 목선 한 척이 숲을 자빠트리고 앉아 있었다.
주변 길섶의 위치라든가 풀머리가 뉘어진 각도로 보면 꽤 오래된 것 같은데
숲 속의 어선으로서, 본격적으로 사물화 되어가는 과정의 징후를 느꼈다.
한때 부리나케 이곳을 찾아다니던 기억이 새로웠다.
내리는 장대비를 고스란히 맞으면서 이 바디의 생태계를 연구하던 현직 때 일들이 주마등처럼 펼쳐젔다.
일정한 리듬으로 수면을 때리는 빗방울의 파장이 음악처럼 감미로웠던 때가 그리웠다.
노인의 눈빛은 내 말로 인해 형성된 어떤 이미지를 형상화한 듯하다가 이내 집요할 정도의 노련함으로 시선을 산자락의 목선에서 펄 주변으로 내리깔았다.
노인은 잠깐 더 허리를 구부리고 펄밭을 두리번거리다가 빈 망태를 든 채 내가 품어 내는 담배 연기의 메케함 속으로 들어왔다.
“혹시 어젯밤에 저기 방파제 끝에서 낚시하시지 않으셨나요?
물고기가 잡히던가요? “
”아 어젯밤 저를 보셨군요
웬걸 바다나 펄이나 여기는 이제 죽은 것 같습니다.
바다도 죽고 사람도 점점 죽어가고……. “
조만간 이곳에도 도시 못지않은 흥청거림이 있게 되겠군요. “
노인도 담배에 불을 댕기고 잿빛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모호할 만큼 유난히 파랗던 바다는 보이질 않고 낯빛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만 빛을 발하던 태양도 삽시에 잔광으로 남에 서녘에서 비척 거렸다.
어쩜, 어두운 밤에 누군가가 멀리서 백열등 하나 켜놓은 밤 같은 낮이었다.
노인은 공감한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이며 펄 주변의 지형을 살피는 듯 보였다.
독한 담배 냄새와 오랜 시간 관리하지 않은 머리칼의 무방비한 흩날림, 검은 피부 위로 드러나는 연붉은 피돌기가 우악스럽게 느껴지는 손,
그의 손에 들려져 생 연기를 뿜고 있는 담배가 유일한 희망임을 느끼게 했다.
”동네 사람들은 오히려 개발되면 힘든 뱃일로 벌어먹고사는 것보다 낫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모두 미쳐가고 있죠
덩달아 바다도 미쳐 저 모양이고….‘
’ 그렇습니까?
그럼 이곳의 개발에 환경파괴를 운운하며 안타까워하는 건 도시인인 저의 이기적인 생각인가 보군요? “
”저 길섶에 있는 배가 내 배입니다.
나와 40년을 동고동락했던,
이제 이 바다에서는 무용지물이기에 그동안 고생했다고 푹 쉬라고 풀숲에 놔줬습니다.‘
노인은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목선을 한동안 응시하더니 툭툭 털고 이미 어두워진 펄에서 멀어져 갔다.
마치 바다의 무수한 물거품을 기억하는 목선의 과거 저 너머로 찾아가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