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소설) 그 바다에 상괭이는 있었다

by 소안

A는 갑자기 녀석 특유의 웃음 짓는 얼굴이 생각났다.

낚시할 때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주위 물고기들을 모두 쫓아버리며 심술을 부리는 녀석

A의 상괭이란 말에 모두는 신기한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일상에서 상괭이란 단어가 언급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지만 A와 같이 바다 생태계를 업으로 살아온 사람에게 상괭이란 단어는 익숙하다.

시각적으로 설명해 보자면 돌고래 정도를 떠올리면 될 것인데,

이마를 포함한 전체적인 얼굴 형태는 돌고래보다 미련스럽게 보이나, 귀여운 모습에 체구 또한 작은 편이다.

어쨌든 모두는 대화 도중 우연히 끼어든 상괭이란 놈이 보고 싶어졌다.

"그래 가자! 상괭이 보러 낚시 도중 정말 놈이 나타나 심술을 부리는지, "

바다로 가서 배를 타고 어떤 섬으로 들어가면 상괭이가 자주 나타나는 훌륭한 갯바위가 있다는 A의 말에 만장일치로 가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c는 의구심으로 가득해 내키지 않은 듯했으나 호기심이 의구심을 눌러버려 가보는 쪽으로 동의했다.

출발 시각을 정하자 남자들의 수다는 끝났다.

다음 날 모두는 덩치 큰 SUV를 타고 바다로 향했다. 주말임에도 고속도로는 생각보다 한산했다.

가는 내내 B는 경제학 이론에 대해 떠들었고. C는 정치 공학적 이론으로 경제학을 떠드는 B를 까 내리는데 논리에 빈약함이 느껴졌다.

뻘쭘하게 운전석 옆에 앉아 정면만 뚫어지게 바라보던 D가 소외감을 느꼈는지 슬며시 예술을 떠벌이며 르네상스 시대로 순간 이동을 한다….

A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들의 대화에 끼어든다는 건 대화의 주제들이 A의 관심사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이따금 일행들이 A의 전공 분야였던 바다에 관해 말하는 것 같았지만,

A는 앞으로 무섭게 다가오는 차선에만 집중했다.

A가 속력을 내는 페달에 지그시 힘을 가하자 풍경들이 쏜살같이 뒤로 사라지며 자동차 안의 왁자지껄은 묻혀 버렸다.

바다에 도착해 간단한 식사를 마친 모두는 오는 내내, 이 겨울에 상괭이를 보러 온다는 게 미친 짓이라며 투덜거리는 D의 눈치만 보며 거리를 어슬렁거렸다.

그와 다르게 B는 여기저기 발품을 파는 모습이 바빠 보였다.

행인들에게 다가가 묻기도 하고, 낚시 가게 몇 군데를 돌아가며 상괭이가 자주 나타나는 곳이 어디인지 아니, 이 겨울 낚시가 잘되는 데가 어디인지 묻는 듯 보였다.

그러던 B가 함박웃음을 띠며 흥분한 어조로 일행에게 다가와 말한다….

"알았다. 희망도로 가면 돼. 그 섬에 상괭이가 있을 거 같은데? 아니, 낚시가 잘될 거 같데. “

잘 될 거 같다니, 아니 있을 거 같다니 상괭이가 꼭 있어야 하고 낚시가 잘돼야 하는 거 아닌가? C가 투덜거리는 어조로 차 안에서 당한 말재주의 한계를 분풀이했다.

30여 년 대한민국의 바다 생태 환경을 낱낱이 꽤 뚫고 살아온 A의 정보에 견주어 볼 때 B의 정보는 모두에게 불안감을 주기에 충분했지만, 낚시는 한 수 위인 B의 의견이 상괭이의 얼굴에 대한 궁금증보다 앞섰다.

또한, 괜한 의견들이 충돌하면 좋을 게 없다고 판단한 모두는 군말 없이 선착장으로 향했다. 희망도로 향하는 배를 타자 미세먼지 하나 없던 파란 하늘은 먹빛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이번 일정에 엄습하는 불안감에 모두는 말이 없었다.

희망도는 아주 작은 섬이다. 철부선이라 일컫는 배에서 내려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오밀조밀하게 시야에 들어오는 무인도들이 앞을 보지 못하게 한다….

출발부터 늦장을 부렸기에 섬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두워졌다.

어둠 속에서의 섬은 쉬 범접할 수 없는 고고함을 달빛을 머금은 윤슬로 보여 주었다.

펜션에서 맞는 아침이 상괭이의 웃는 모습처럼 상쾌했다.

모두는 느긋하게, 부지런히 움직이며 상괭이를 보려는 목적보다 낚시하러 온 게 더 큰 이유인 것을 각자 들키지 않으려 했지만 전망을 떠는 행동에서 속내가 여실히 드러났다.

펜션을 나와 B에 이끌려 B를 의지하고 갯바위를 걸었다.

어깨에 둘러멘 낚시 장비로 인해 다소 힘겹긴 하였으나 상괭이란 놈의 정체가 도무지 궁금해 들어온 D에는 이마저 즐거움이었다.

아니, 명목은 상괭이를 보러 온 것이지만 이들의 더 큰 목적이 낚시이기에 상괭이는 못 봐도 그만이라는 생각은 너무도 뻔해 서로 음흉한 미소만 띤다….

그렇게 30분 정도 갯바위를 기고, 걷기를 반복하자니 아름드리 해송 사이로 널찍한 갯바위가 드러났고 이를 본 B는 흥분했다.

"여기다 내가 십여 년 전 70센티짜리 참돔을 낚았던 곳이…….”

물론 B의 기억은 맞아야 한다.

모두는 어차피 B의 기억을 통해 이 섬까지 이끌려 흘러온 셈이니까.

은근한 떨림 속에서 너른 바위에 안착한 모두는 어떤 의지 때문에, 지구의 생성 그때부터 현재까지 잘 보존된 갯바위 위에서 낚싯대를 펼치고 있다.

D는 눈을 괴롭히는 바다에 투영된 햇살을 유심히 바라만 본다.

" 낚시 안 하냐 너 정말 상괭이라도 보려고 하는 거냐?

C의 퉁명스러운 물음에 상관없이 너른 바위 한쪽에 걸터앉아 바다를 뚫어지게 살피던 D는, 이 바다에 떠도는 어떤 물체라도 감지한 듯 일행이 서 있는 바다 안쪽까지 살피는 데 집중했다.

햇살에 반사되어 그 물체가 무엇인지 가늠할 수 없었으나 검은색의 길게 뻗은 그 무엇은 분명 바다에 있으면 안 될 것이 분명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너른 바위 위에서 낚시를 시작한 지도 반나절에 해당하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으나 바닷속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물고기들은 좀처럼 군상들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오는 걸 원치 않았다.

70센티의 참돔을 잡았다는 B의 썰이 그야말로 썰로 점점 굳어져만 갔고

그 이유를 날씨 탓이라며 둘러대는 B의 일장 연설은 설득력이 부족했다.

D는 속으로 생각했다. 분명 저 멀리 떠 있는 검고 길쭉한 그 무엇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없었다. 수년 전 B가 잡았다던 70센티 물고기도,

D가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해 정말로 궁금해하던 상괭이도 이 바다에는 없었다. 모두는 없음이 확률적으로 더욱 많은 이 시기에 이 멀고, 게다가 섬을 한 바퀴도 도는데 한 시간도 안 걸리는 섬에 들어왔다.

결국, 모두는 이런 상황이 올 거라는 건 익히 예상하였기에 난감해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계절의 우발사건으로 웃어넘기며 해변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술을 마셨다.

“내가 예전에 이곳에 연구선 타고 왔을 때는 상괭이들이 무척 많다 못해 바글바글했는데….”

하며 A가 말을 잇지 못하자 일행은 동의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고 B만 그 말을 믿는 눈치였다. 사위어가는 노을처럼 이들의 얼굴도 어둑하게 변해서 갔고 서녘에 걸린 수평선도 아득해 보였다

A는 방광의 압박으로 엉덩이를 일으키고 일행들에게서 벗어나 해변을 걷고 있었다.

일행을 등지고 해변 끝자락까지 걷고 있는 A의 발걸음이 멈춘 것은 한눈에 봐도 상괭이 놈이 두 눈의 동공을 키웠기 때문이었다. 그놈은 몸뚱이를 누이고 있었고 무언지 모를 끈적이는 액체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죽어서도 웃는 모습을 하는 상괭이 특유의 모습은 볼 수 없고 애초부터 녀석의 얼굴은 슬픈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억지 증거를 보여주는 듯했다.

“무척 즐거워 보였는데, 없네, 없어. 그 즐겁게 보이기만 하는 웃음이 없네….”

A의 입에서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상괭이는 있었다.

그러나 웃음 짓는 얼굴이 아닌 슬픔을 머금고 싸늘하게 죽어있는….

D가 담배를 입에 물며 말했다.

“녀석의 웃는 얼굴이 어떤 모습일까? 정말 궁금했는데 웃는 게 아닌, 이런 슬픈 모습이 너무 강렬하다. 이런 슬픈 모습은 본 적이 없어 “

담배를 깊게 들이마시고 내뱉은 D가 녀석을 바라보며 소곤거렸다

모두는 한동안 녀석의 주위를 서성이다가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해경이나 관계기관에 신고해서 녀석의 억울한 죽음을 밝힐 수 있게 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음을 느끼고 전화를 걸었다. 단지, 녀석의 죽음이 억울한 죽음이란 것에 모두 동의했고 그 이유는 녀석은 평소에 늘 웃음을 띠고 사는 지구상에 없는 희망만을 품고 사는 동물인 듯해서였다.

다들 상괭이의 슬픈 얼굴이 쉽사리 기억에서 멀어질 것 같지 않을 것 같다는 것에 생각을 같이했다. 슬픈 얼굴로 죽어있는 녀석이 차라리 B가 예전에 잡았던 70센티 참돔이라면 이리 격한 감정이 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냐? 혹시 이놈 상괭이가 아니고 돌고래 아닐까?

그랬으면 그나마 다행일 것 같은 D의 말에 모두 그러길 바랄 뿐이었다.

"저놈이라고 이 죽은 바다에 살고 싶겠소? 기름 범벅되어 모두 죽어 나가는데 제 놈이라고 별수 있나? 나도 콱 바다에 빠져 죽고 싶은데…. “

죽어서 해변으로 떠밀려 온 상괭이를 보려고 몰려온 동네 사람들 틈에서 뒷짐을 지고 돌아서는 노인의 말이 공허했다.

그랬다. 얼마 전 티브이 뉴스에서 본 대형 선박의 좌초로 기름이 유출되고 주위의 바다가 모두 오염되어 해양 생태계에 큰 영향이 있을 거라는 보도가 생각났다.

비단 목숨을 잃은 건 상괭이만이 아니라 바닷속 수많은 생명이 어디엔가 죽어 널브러져 있을 것 같았다.

”그래! 결국 낚시 아닌 상괭이를 보러 가자고 한 네 말이 맞았네? 그래 상괭이는 있다. 아니 있었다. 어쩜 저놈의 짝도 어느 바다에서 애타게 저 녀석이 돌아올 때만 기다리고 있겠지. 아니면 어디에서 저놈처럼 기름 뒤집어쓴 채 죽어있거나 “

돗자리에 널브러진 술병을 치우며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어가는 D의 얼굴이 꼭 상괭이의 슬픈 모습을 닮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