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주말에 낚시 갈까?
거실에서 딸아이와 수다를 떨다가 하품을 하며 들어온 여자가 사내에게 한마디 한다….
"낚시? 지난주에 갔다 왔잖아."
"왜! 싫어?"
"아, 아니 싫은 게 아니고…."
"웬일이야! 당신이 낚시 가자는데도 시큰둥하고?"
순간 사내는 머리가 복잡해짐을 느꼈다. 다음 주 대마도 2박 3일 원정 낚시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내의 허락이 떨어져야 하는데 몰래 다녀오자니 이박삼일 일정에 핑곗거리가 없고 해서 이번 주말은 집에서 머슴이 되어 아내에게 봉사하기로 작정했었다. 아내가 며칠 전부터 별러오던 커튼도 바꿔 달아 주고 집안 대청소와 힘들어했던 일을 해놓으면 아내 기분이 좋아질 테니, 그럴 때 은근슬쩍 대마도 출조 허락을 받아낼 심산이었다.
그렇다고 허락을 안 해준다고 못 갈 사내도 아니지만, 가정의 평화를 위해, 아니 사내 자신의 안위를 위해 될 수 있으면 취미 생활로 아내와 말썽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다. 아내의 심기를 건드리면 한동안 젓가락 놀림이 심심한 식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내가 은근슬쩍 아내를 떠본다….
“어디로 갈까? “
"글쎄! F TV 보니까 동해에 고등어가 많이 잡히던데, 동해로 갈까?"
잠시 말을 잊었던 사내가 외려 잘 됐다는 듯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을 잇는다.
"그러지 뭐! 고등어 잡아다 반찬이나 해 먹자."
사내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일전에 남해안으로 낚시여행을 갔을 때, 사내 옆에 앉아 심심해하던 아내에게 낚싯대를 쥐여줬더니 고등어를 한 쿨러나 잡고 신나 하던 때가 퍼뜩 떠오른 것이었다.
이번에도 고등어 낚시하러 가서 기분이 최고조에 이르면 분위기에 쏠려 잔소리 없이 허락할 수도 있겠다는 얄팍한 노림수를 쓰기로 한 것이다.
주말 오후, 사내는 지난밤 챙겨 놓은 짐을 싣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동해로 차를 몬다….
고성으로 목표를 정하고 300킬로를 달려 늦은 밤,
어느 작은 방파제에 도착한 사내는 설레는 마음에 칠흑 같은 바다를 향해 루어를 던져본다….
이번엔 자신의 낚시가 아닌 아내에게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왔는데, 막상 바다에 오니 금세 마음이 달라진다….
역시 사내는 못 말리는 꾼이다.
이런 자신의 행동이 계면쩍은 듯 입을 쩝쩝거리며 아내 눈치를 살피랴 낚시하랴 그 꼴이 똥 마려운 강아지 같다.
얼마나 지났을까, 장거리 운전의 피로함도 잊은 채 소득 없는 낚시에 몰두할 즈음, 한 무리의 군인들이 다가와 심야에는 낚시 금지 구역이라며 바닷가에서 나오라고 호루라기를 불어댄다….
저들도 누군가의 귀한 아들들이기에 부모 된 심정으로 순순히 이들의 제지에 바닷가에서 나와 사내가 캔 음료 하나씩 건네주니 경례를 하고 어둠 속에 섞여 사라진다….
그때야 사내는 피곤함을 느꼈는지 아내를 이끌고 해변 캠핑카로 향했다.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깬 사내가 먼저 일어나 부지런히 움직이는 아내에게 낚시채비를 만들어 주고 옆에 쪼그리고 앉아 어서 빨리 고등어가 잡히기만을 기대한다….
"당신, 감성돔 낚시 안 하고 왜 내 옆에 하지 꼼짝 않고 앉아 있어?"
"응, 감성돔 낚싯대를 안 가져왔어!"
"낚싯대를 왜 안 가져와? 낚시 가방 가져왔잖아."
"아니, 그게 아니고 저번 주 남해 갔다 와서 닦아서 말리느라 뒤뜰에 펴 놓았는데 그것도 모르고 빈 가방만 가져왔어."
순간 아내가 깔깔대며 고소해 죽겠다는 듯 웃어댔다.
사내가 이런 아내를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린다….
"역시 여자는 단순해! 저런 머리로 어떻게 수학 선생을 하는지 참 신기하다."
사실 사내는 일부러 자신이 주로 하는 낚시 장르인 감성돔 장비를 챙겨 오지 않았다.
오로지 목표가 대마도 원정이라 이까짓 고등어 낚시는 안중에도 없었고, 또한 아내 분위기에 잘 맞춰 점수를 따야 했기 때문에 낚시 가방에 들어있는 장비들을 몰래 꺼내고 아내가 할 고등어 낚싯대와 루어대만 가방에 넣어둔 것이다.
"당신 심심하겠다.~
내 걸로 해. 난 책이나 보고 있을게."
"아냐, 당신 해. 당신이 낚시하고 싶어서 오자 그랬잖아? “
사내가 너스레를 떨며 아내를 위한 척한다.
사실 사내는 돔 낚시광이다.
사내가 낚시를 시작한 것은 얼추 30년이 훌쩍 넘었다.
해양 생태와 관련한 직업을 갖다 보니 집 떠나 대한민국 삼면의 바다를 떠도는 날이 많았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외로움을 낚시로 잊곤 하면서 낚시꾼이 된 것이다.
처음엔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동갑내기 브래드 피트가 노을 지는 강가에서 플라이 낚싯대를 휘두르는 모습에 매료돼서 플라이 낚시를 시작했고 루어 낚시, 견지낚시 등등 세상에 있는 모든 낚시 장르는 다 섭렵할 만큼 낚시광이다.
낚시를 그만두려고 골프, 오프로드 운전을 비롯해 여러 가지 취미를 가져봤지만, 낚시만큼 사내를 매료시키는 취미 생활을 찾지 못해 여전히 틈만 나면 바다로 돌아다니는 것이다.
동적이지 않은 사내의 성격에 정적인 낚시는 사내의 여가 생활에 안성맞춤이었다.
게다가 바다와 직업이라는 틈에서 낚시는 사내에게 최적화될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시간이 갈수록 아내의 말투에 짜증이 섞여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일전에는 고등어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왔는데, 수온이 내려가서 그런지 고등어가 낚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가끔 노래미나 우럭 새끼들만 잡힐 뿐이었는데,
낚시를 깨우친 아내에게 노래미나 우럭은 이제 생선 축에도 끼지 못했다.
낚시를 알기 전에는 이놈들도 황송하리만큼 대접을 받았는데, 사내를 따라다니면서 생선을 보는 눈높이가 높아졌고 입맛이 고급이 되어버린 것이다. 횟집에서 싯가로만 표시하던 돔을 남편이 직접 잡으면서 희열을 느끼고, 게다가 잡은 돔을 회를 떠줘 먹어본 아내는 비로소 이 남자가 왜 낚시에 목을 매는지 조금은 이해한 듯했다.
그 뒤로 횟집의 9900원짜리 뱃살이 거무튀튀한 양식 광어의 배달꾼은 더 아내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
지난번 남해서 잡은 고등어로 톡톡히 손맛도 보고, 일주일 내내 고등어구이에 조림에 아이들에게 등 푸른 생선엔 DHA가 어쩌고 저쩌고 하며 강제로 먹였어도 아직 반 이상이 냉장고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는데, 또 이렇게 고등어 한 마리라도 더 잡겠다고 아내는 방파제 위에 돌부처처럼 꼼짝하지 않는다.
뜻밖의 저조한 조황에 불안을 느낀 사내가 아내에게 커피를 타주며 한마디 한다….
"여보! 아직 고등어 떼 안 들어왔나 보다~ 우리 라면이나 끓여 먹고 조금 쉬었다 하자, 내가 라면 끓일게."
"응, 알았어! 안 잡히니까 재미없어, 짜증 나고."
짜증 난다는 소리에 사내가 긴장한다….
"여보! 라면 싫은데 짜장면 시켜 먹을까?"
아내가 사내 등 뒤에 소리를 질렀다.
바다에서 짜장면 시켜 먹는 맛도 어느새 아내는 터득한 것이다.
상술 좋은 중화요릿집 주인이 방파제에 래커로 전화번호를 그리듯 써 놓은 것을 보고 언젠가 시켜 먹은 일이 있기 때문이다.
"짜장면 시키면 오래 걸려 맛없어 그냥 라면 먹자 내가 끓여줄 게 낚시하고 있어."
아내가 다시 낚싯대를 쥐고 바다에 찌를 던지자, 사내는 부스럭대며 라면을 끓인다….
바닷가 한편 캠핑카의 식탁 위에 사내가 끓인 라면이 올려지고, 좁은 실내가 라면 김으로 뒤덮여 한증막이 되었다. 아내가 맛있다며 젓가락을 바삐 놀린다….
사내는 기회는 이때다 싶어, 라면 김에 서린 안경 너머로 게슴츠레한 눈을 한 채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내 친구 다음 주 대마도 2박 3일 낚시 간다네~"
"대마도가 어딘데, 남해야?"
일본 대마도가 아니라 국내에도 대마도가 있냐는 듯 의아해하며 묻는다. 사내가 한심한 듯 라면을 입에 끌어넣으며 물끄러미 아내를 쳐다본다….
"야! 대마도가~ 어디~~ 인지도 모르냐?"
순간 말이 튀어나오다 말꼬리가 들어간다….
"아니! 일본, 일본이긴 한데 가까워, 부산서 배 타고 한 시간밖에 안 걸려 일본 섬이야, 제주도보다 가까워."
"아~ 일본 대마도, 일본인데 어떻게 제주도보다 가까워?
사내의 아내는 세계 지리에 아주 젬병이다….
한 번은 동남아 여행 일정을 짜는데 태국이란 나라와 방콕이란 나라라는 얘기를 해서 사내와 아이들이 방바닥에 데굴데굴 굴렀던 일도 있었다.
무안해진 아내가 착각했다고 변명을 했지만, 사내는 박장대소를 하면서도 정말 착각이었길 바랐던 적이 있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내가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을 해서 아내에게 보여준다….
"봐! 여기가 대마도인데 엄청 가깝잖아~"
호들갑을 떨며 사내가 대마도가 아주 가까운 거리임을 강조한다….
"그래도 외국이라 가려면 돈 많이 들 텐데"
"그렇지 않은가 봐! 단체로 가기 때문에 안 비싸대"
좁은 캠핑카의 열기로 안면에 홍조를 띤 아내를 힐끗 쳐다보며 사내가 혼자 말처럼 중얼거렸다.
"나도 아직 못 가봐서 가 봤으면 좋겠는데 돔이 낚싯대만 던지면 나온다는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내가 뱁새눈을 뜨고 사내를 노려보며 젓가락질을 멈췄다.
"당신! 혹시? 어쩐지 이 인간 생전 안 하던 짓을 하더라. 받아먹을 줄만 알던 사람이 커피를 타주질 않나, 밖에 나와서 라면을 끓여 바치질 않나~ 안 돼, 꿈도 꾸지 마. 이틀씩 낚시하려고 외박을 해 지방 근무로 일 년에 반을 나가 있으면서, 나 참 기가 막혀"
사내가 잔뜩 풀이 죽어 모깃소리만 하게 내뱉는다.
"외박은 무슨 거기 펜션에서 다 같이 자는 건데"
"펜션에서 자는 건 외박 아냐? 외도하면서 안 들어오는 것만 외박이야?"
아내가 차갑게 쏘아붙이자 사내가 발끈한다. 무슨 큰 죄지은 양 몰아세우는 아내에게 뿔이 난 것이다.
"나쁜 짓 하러 다니는 것도 아니고 스트레스 해소하러 간다는데 뭘 그리 난리냐. 그리고 벌써 회비도 다 냈어."
"스트레스는 당신만 받아? 나도 요즘 우리 반 전체 성적 떨어져서 속상해 죽겠는데"
아내가 사내를 향해 재차 쏘아붙이더니 회비까지 냈다는 말에 체념한 듯 조용하게 묻는다.
"회비가 얼만데?"
"얼마 안 비싸"
"그래, 얼마냐니까"
"백만 원…"
“뭐, 백만 원씩이나? 헐~~~"
사내가 기가 막힌 듯 어이없어하는 아내 얼굴을 슬쩍 올려다본다. 순간 차 안의 라면 김이 얼어붙을 듯한 영하의 기온이 감돌았다.
"돈 어디서 나서 냈어?"
"내 비상금 조금씩 모아둔 거"
"잘한다. 이제 딴 주머니까지 차는구먼. 알아서 해, 대신 용돈 한 달 없어"
아내의 말이 끝나자 사내가 간사한 웃음을 지으며 아내에게 아부한다….
"아~ 알았어. 이제 본소 근무 때는 주말에도 꼼짝도 안 할게. “
아내가 투덜대며 자동차 문을 부서지라 여닫고 다시 낚싯대를 들고나갔다….
캠핑카 안에는 사내의 입에서 나오는 경쾌한 휘파람과 설거지하는 소리가 뒤섞여 서라운드 선율을 만들어냈다.
사내의 아내는 바다 위로 수없이 찌를 날려 보지만 고등어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말았다.
가뜩이나 사내 때문에 약이 올라 있는데 고등어까지 약을 올리자 빈 낚싯대를 내동댕이치며 분풀이를 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사내가 이제 목적을 달성했기에 지겨웠는지 아내에게 넌지시 말을 건넨다….
"여보! 그만 가자. 오늘은 안 되는 날인가 보다"
"다른 데로 가봐! 당신 잘 알 거 아니냐, 어디가 잘 나오는지"
"지금 날이 추워 어디 가도 잘 안 나와. 그러니까 그냥 가자"
"그래, 자기 볼일 다 봤다. 이거지~ 못됐어! 아주"
해양 생태계 전문가인 사내는 이 시기에 고등어가 안 잡힐 것이라는 걸 예감했다. 그런데도 아내를 감언이설로 꼬드겨 데리고 와 결국 목적을 달성했고 이제 더 바닷가에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사내가 거듭 아내에게 집에 가자고 재촉을 한다….
빈 낚싯대만 하염없이 들고 있었기에 지친 것인지 아내도 구시렁대며 짐을 정리한다….
집으로 가는 길에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입을 꾹 다문 채 차를 몰던 사내가 무언가 생각난 듯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핸들을 돌려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했다.
고등어도 못 잡고 표현은 안 하지만 직장만 아니면 따라갈 텐데 하며 쓸쓸해서 하던 아내 모습이 생각나 이대로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한적한 강가, 사내가 동해에 있을 때 몇 번 가서 즐거운 기억이 있는 곳이다.
사내는 적당히 자리를 잡고 영화 흐르는 강물 같은 브래드 피트가 되어 강물에 플라이를 날려 본다….
아내는 재미없다며 책을 읽고 있는 사이 몇 번의 캐스팅에 당찬 송어가 바늘털이한다….
아내가 신기해하며 줄곧 닫고 있었던 입을 열었다.
"이게 송어야? 어머~~ 예쁘게 생겼다. 그런데 이 예쁜 걸 사람들은 어떻게 먹지?"
그러자 사내가 우쭐대며 떠들어댄다….
횟집에서 파는 송어는 모두 양식이고 이놈은 순수한 자연에서 나고 자란 놈이야. 회 맛이 다르지, 기다려. 내가 회 떠 줄 테니까.
사내는 아내를 위해 송어를 난도질하기 시작했고, 이윽고 송어는 아내의 입속에서 아내에게 미소 짓게 한다….
사내는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들이키며 아내에게 송어 낚는 법을 가르쳐 주느라 설레발을 친다. 이어 아내의 낚싯대에도 송어가 낚이고, 시간은 어느새 사위를 어스름하게 만든다. 고등어 대신 자연산 송어로 만족을 한 아내가 사내에게 말을 건넨다….
"대마도에 무슨 고기 잡히는데?"
"어, 감성돔, 벵에돔, 방어, 이것저것."
"방어? 여보! 그럼 방어 잡으면 얼음 채워서 잘 가져와라, 응."
"알았어."
대답은 했지만, 사실 지금 시즌에는 방어가 잡히지 않는다는 것을 사내는 알면서 허풍을 친 것이다.
허풍이 아니라 지금 마음 같아선 태평양의 모든 물고기가 모두 자신 손안에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사내의 탁월한 선택으로 귀한 송어를 맛보고 한결 기분이 좋아진 아내를 보며, 사내는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운전하는 사내의 선글라스를 벗기고 안경으로 바꿔 씌워 주며 아내가 사내에게 말을 건넨다….
"돔하고 방어 못 잡으면 집에 들어올 생각 마. 그렇다고 수산 시장 가서 사 올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고, 나 이제 양식하고 자연산하고 구별할 줄 아니까."
사내가 웃음을 지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노을을 따라 자동차 꼬리를 문 두 개의 빨간 불빛이 긴 여운을 남기며 꼬불꼬불 길 돌아 자취를 감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