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섬에 남긴 추억
20년 후.
"지혜야. 지선아! 아직 멀었니? 그러게 엄마가 미리미리 챙겨 놓으라고 했잖아."
"으구… 울 엄마 잔소리 또 시작이다. 다 했어요!"
"얼른 나가자! 아빠 빨리 안 내려온다고 역정 내시겠다."
26년이 떠난 공간에 행복함을 차곡차곡 채워가는 영민, 빈 기억 항아리에 다시 담긴 세월들은 간장처럼 풍미를 더해간다. 결혼 후 20년을 사는 동안 항아리 속에 어떤 부유물도 떠돌지 못하게 하려는 미영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풍요가 넘치는 10월 연휴, 미영은 가족과 함께 생연도 행 객선에 올랐다. 성묘를 간다는 명분이지만, 가족여행의 의미가 더 컸다. 그래서인지 할머니와 아버지 산소에 삼배를 올릴 때에도 슬픔은 배어 나오지 않았다. 행복한 삶이 미영 안에 쌓여 있는 슬픔을 이미 몰아냈기 때문일 테다. 그러나 엄마와 동생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히 가슴속에 고요히 자리 잡고 있었다. 그 탓에 섬에 들어올 때마다 이번에는 엄마와 동생에 대한 소식이라도 있을까 하는 가망 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희망을 가져보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한 생각들은 섬에 도착하는 순간 늘 그렇듯 역시로 끝나 버렸지만 그럼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한다.
"여보! 세월 참 빠르지? 당신 재활 위해 이곳에 왔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20년이 넘었으니..."
"그러게, 우리도 어느새 중년이 됐네?"
미영이 영민 옆에 바투 붙어 객선이 흘리고 가는 풍경을 바라본다. 사진을 찍던 두 딸들도 양쪽에 합세했다. 하나가 된 네 사람의 뒷모습에서 미영의 소원인 가족의 행복이 여실히 드러난다.
"엄마! 저거봐!.."
지선의 고함이 세 사람을 놀라게 했다. 지선의 손끝에는 상괭이 가족이 해면 위에서 잠방거리고 있었다. 흥분한 지선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높아졌다.
“엄마, 애들 뭐야?.”
"상괭이야, 우리 딸들 마중 나왔나 보다.."
미영이 활짝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상괭이? 쟤들 돌고래 아냐? 우리 울산 여행 갔을 때 본 애들, "
"그건 아니고, 돌고래의 일종이긴 한데 돌고래와 다르고 해양 멸종 위기종이란다 엄마 고향 바다에 많이 살아. 엄마 어릴 땐 쟤들하고 헤엄치며 놀았어!"
"헐, 말도 안 돼. 엄마가 인어도 아니고, 어떻게 고래하고 헤엄을 치며 놀아?.."
"정말이야. 엄마 수영 엄청 잘해! 저기 보이는 섬까지도 헤엄쳐 갈 수 있어 “
"리얼?"
"아! 엄마가 그린 그림에 있는 거 재들이지? 아빠가 언젠가 상괭이라고 알려줬던 거 생각나!"
지혜의 말에 미영은 그날의 추억이 툭 튀어나와 웃음이 쿡 터져 나왔다. 영민도 웃음의 의미를 알았는지 미영의 웃음에 동조했다. 상괭이가 떠나가자 미영 가족 주위에 모여들었던 사람들이 이번엔 갈매기들을 불러 모은다.
과자에 현혹된 갈매기들이 끈질기게 여객선을 따라온다.
"천국이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경치에 넋을 놓고 있던 여인의 조근거림이 미영의 귀에 들어왔다.
"이 여인은 무슨 슬픔이 이렇게 깊을까?"
"여보! 오랫동안 집을 비워뒀더니 엉망이야! 방에서 벌레가 기어 나오는 걸 보고 저 녀석들 기겁하며 난리였어. 여기서 어떻게 자냐고 하면서 해변에 텐트 치고 잔다나 뭐라나.."
"그럼 우리 저기 펜션으로 갈까? 오다 보니 펜션이 많이 생겼던데, 그새 많이 변했어. 놀러 오는 사람도 많은 것 같아. 배에 사람도 많은 걸 보니, "
“그러게, 난 여기 유명세 치르는 거 싫은데...”
“그래! 의외네, 고향이 발전하면 좋은 거 아냐?”
“섬에 놀러 오는 사람만 많다고 발전하는 게 아니야! 그리고 놀러 오는 사람들, 섬에 그다지 큰 경제적 도움은 안 돼! 난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섬을 알고 배워가는 곳이었으면 좋겠어! 저기 상괭이를 모르는 사람들도 많거든. 부모들이 아이들 데리고 와서 바다 생태계도 배우고, 우리 섬의 대표적 아름다움인 민장단애와 저쪽 산책 길에서 볼 수 있는 애추를 비롯한 이곳의 아름다움만 가슴에 담고 가는 참된 여행지가 되었으면 좋겠어.”
“당신 마음 알 것 같아. 내 고향이 도시의 떠들썩함을 닮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마음.”
“맞아, 여보. 행락객들이 넘쳐나면 뭍과 다른 게 뭐가 있어? 사실 마을 사람들은 관광객들을 달가워하지 않아. 주민들에게 피해만 끼치거든. 쓰레기 함부로 버리고, 차 끌고 들어와 아무 데나 주차해 놓고, 그 때문에 어민들이 작업하는 경운기도 못 다니고... 그래서 주민들이 주차 이동을 요구하면 도시인의 우월감이라도 느끼는 건지 '네가 뭔데?'라며 따지는 삐딱한 시선을 보면 마음이 아파! 옆집 할아버지도 가을걷이한 것 도로에 말려놓았다가 놀러 온 차가 밟고 지나가서 몽땅 버렸어!
암튼 난 이 섬이 먹고 놀고 가는 관광지가 아닌 조용히 쉬러 오거나 진정한 여행의 의미를 아는 사람들만 알게 모르게 다녀가는 곳이었으면 해. 편하게 쉬었다 가는.”
배에서 어떤 여인을 봤는데 얼굴에 슬픔이 가득했어. 슬프거나 힘들거나 그런 사람들이 다 비우고 새로움을찾아 나갈 수 있는 섬이었으면 해!”
“오! 우리 마누라 고향 사랑이 대단한데. 하긴 나도 이곳이 점점 오염되어 가는 것 같아 아쉽기는 해. 나 처음 재활하러 왔을 때 비하면 너무 변했어. 나도 당신 말에 동감이야. 그런데 노을은 여전히 아름답다.”
“여보! 그리고 보니 딱 그때 그 시간이네. 그림 그리면서 당신과 도란도란 얘기하던 그때도 노을이 딱 저기까지 물들었었는데.”
“그때 그걸 아직 기억해?”
“그럼! 그때 당신이 그림 그리는 내게 예쁘다, 잘 그린다, 어찌나 말이 많던지 은근히 좋긴 했어. 섬에 온 뒤 처음이었거든, 누군가와 다정하게 대화를 해보는 게. 그것도 남자, 더군다나 대학생과...”
미영이 과거를 회상하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제 당신의 26년만 찾으면 고장 난 사이보그가 완전히 고쳐지는데...”
“뭐야? 사이보그라니? 내가 사이보그?”
“그런 게 있어, 알면 다쳐!”
미영이 깔깔대며 눈을 흘겼다. 맨발로 해변을 걸으며 조개를 줍는 딸들의 모습이 노을빛 속에 한 폭의 수채화였다.
“그런데 여보! 옛날보다 노을이 더 예쁜 것 같아. 왜 그럴까? 내가 변한 건지, 노을이 변한 건지...”
“당신이 변한 거겠지. 예나 지금이나 노을은 변함없는데, 노을을 보는 당신의 마음이 변해서겠지?”
“마음? 음, 그러니까 당신 말인즉 행복하니까 노을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는 거지?”
“그런 거 아닐까? 행복한 사람 눈에 보이는 모든 건 아름다운 법이다.”
“오! 울 남편 철학적 사고, 맞아 그런가 봐! 내 인생도 이 정도면 성공한 셈이지, 여보?”
“아닌 것 같은데? 호의호식하며 살아야 성공한 인생이지?”
“난 그런 거 조금도 부럽지 않아! 아이들 올바르게 자라겠다, 당신 가정에 충실하겠다, 내 마음에 행복하다는 생각이 가득한데 뭘 더 바라... 그럼 이제부터 당신이 호강 좀 시켜주던지? 명품도 막 사주고.”
“그럼 내 인생은 당신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둔 거군. 당신 농담처럼 고장 난 사이보그를 이렇게 어엿한 사람으로 만들었으니.”
"그건 당신의 노력이 컸기 때문이야. 난 그저 도움을 준 것뿐이고... 카프카의 원숭이 빨간 피터처럼 사람으로 변신하려는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당신이 있는 거야!"
“당신 같은 마누라가 있었기에 노력도 할 수 있었지?”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럼 당연하지."
“그럼 바다를 향해 미영아! 사랑해하고 소리 질러봐!”
“좋아! 미영아. 사랑..."
“이이가…”
미영이 재빨리 손으로 영민입을 틀어막는다.
조개를 줍던 아이들이 아빠가 부르는 줄 알았던지 힐끔 쳐다본다. 미영이 흡족해하며 활짝 웃었다.
“나를 사람으로 만들어준 당신에게 고마울 뿐이야. 당신이 없었다면 내 인생에 이런 행복은 어림도 없지. 곧돌아가실 것 같은 어머니가 몇 년을 더 사신 것도 당신의 지극한 정성이 있었기 때문이야. 오죽했으면 의사가 그랬을까? 우리 집에 두 번의 기적을 당신이 몰고 왔다고,”
“별소릴 다 해 이이가... 그게 다 응큼한 나의 목적이 있어서 그랬던 건데 모르지? ”
미영이 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의미심장한 말을 툭 던졌다. 순간 영민은 의아해하며 미영을 빤히 쳐다보았다. “
"목적이라니 무슨....?"
“응! 내가 우리 가족을 위해 고군분투한 건 나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였어! ”
“여보! 그게 뭐냐니까 그 목적이?..."
“말하면 당신 충격받아 안돼! 말 못 해.”
영민의 표정이 점점 심각하게 변했다.
“그럼 말할 테니 약속해! 절대 놀라지 않겠다고.”
침을 욱여 넘기는 영민의 얼굴에 긴장한 모습이 감돈다.
“ 여보! 사실은.. 사실은..."
“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 답답해 죽겠네.”
“ 아! 말 안 할래. 그게 나온 것 같아. 당신 놀랄까 봐 도저히 말 못 해! ”
영민의 언성이 높아졌다.
"나! 절대 안 놀래. 빨리 말해! 어떤 말을 해도 침착해할 테니. "
"알았어. 실은 내 소원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거였잖아. 당신도 알지? 그래서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였지. 행복하게 살기 위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지. 나를 위해, 이런 흑심이 있는 줄 몰랐지? 당신 그 심각한 표정이라니. 바보 같아. 목적은 무슨 목적? “
미영은 재밌다는 듯 깔깔 웃었다.
"뭐야! 나 놀린 거야? 내가 당한 거야 지금? 이리 와, 가만 안 둬... "
미영이 잽싸게 아이들에게 달려가자 영민이 맨발로 미영을 쫓아간다. 무표정한 모습으로 부부의 뜀박질을 바라보며 딸들이 어이없어한다.
"헐.. 아빠, 엄마. 지금 쌍팔년도 영화 찍어? 유치하거든. “
가족의 떠들썩한 웃음이 파도와 화음을 이룬다.
노을이 바다에 내려앉아 수면을 붉게 물들였다.
그 옛날 평상에 앉아있던 미영을 잠들게 했던 물마루도 변함없이 아롱거렸다. 태양은 하루의 뒤안길이 아쉬웠는지 마지막 남은 열정을 쏟아낸다.
"얘들아, 다 같이 사진 찍자!..”
미영이 모래 위를 걷던 여인에게 다가갔다.
“죄송한데 사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어머, 선착장 식당에서 뵌 분이죠?.. “
"네! 상괭이 있는 곳 알려줘서 고마웠습니다. “
카메라를 건네받은 여인이 가족을 파인더에 담았다.
"감사합니다.”
“네! 행복하세요!.”
어슴프레 해진 여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진 찍을 줄 모르나?”
사진은 온통 네 사람의 상반신으로 꽉 차있었다. 노을이 사진에 끼어들 틈은 없었다.
어스름이 지더니 밤은 금방 섬을 집어삼켰다. 방파제 한편이 낮보다 소란스럽다. 영민이 쥐어준 딸들의 낚싯대에는 연신 고도리들이 끌려 나와 하늘을 난다. 아이들 곁에는 비 오는 날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받아주던 커다란 통이 놓여있다. 그 속 물고기들은 희번덕하게 배를 뒤집고 자빠진 놈도 있고 어떤 놈들은 탈출구를 찾는지 쉼 없이 움직였다. 빛을 발하며 새롱거리던 찌가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적당한 챔질 때를 안 딸들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어느새 물고기들이 앙탈거리는 손맛이란 희열도 알게되었고,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싫은 물고기들과 겨루기에서도 승리하는 짜릿함이 재미를 더해갔다.
물고기를 낚는 딸들 모습을 지켜보는 미영은 마냥 즐거울 수만 없었다. 불현듯 아이들 나이에 자신의 나이가 겹쳐지며 노파심이 꾸물꾸물 돋아났다. 아끼지 않아도 부족함 없이 사는 딸들, 낚시질처럼 챔질 때를 놓치는 법이 없듯이 딸들의 자만감이 불러올 기고만장이 염려됐다. 미영은 실패하는 경험도 했으면 하는 생각에 물고기를 놓치기 바랐다. 그렇지만 미영 생각에 아랑곳하지 않는 딸들의 환호성은 계속됐다. 기뻐하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물고기를 놓치기 바랐던 마음이 수그러든다.
“그래! 그런 작은 물고기 낚는 것도 실패하면 안 될 것이야! 소소한 행복은 누리고 살아야 해.”
화로대에는 삼겹살이 노릇노릇 익어간다.
“얘들아, 그만하고 이리 와! 배 안 고프니? 당신도 그만 잡아요! 물고기도 생명 있는 것들인데…”
영민과 아이들은 미영의 제지에도 들은 척하지 않고 요지부동이다. 고기 냄새를 맡은 동네 막개들과 고양이들만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참다못한 미영이 통속 물고기를 고양이에게 던져준다. 녀석들의 고도리 쟁탈전이 치열하다. 고양이가 한 놈, 두 놈 더 모여든다. 미영이 통속 물고기들을 몽땅 던져주었다. 딸들이 낚싯대를 접고 잡은 물고기를 확인하려 통속을 들여다본다. 이윽고 딸들의 허탈함이 고양이에게 옮겨지더니, 웃으며 석쇠 위 고기마저 던져준다. 이번엔 막개들이 삼겹살 쟁탈전을 벌였다.
머리 위엔 별들이 경쟁하듯 빛을 밝히며 와글와글 거렸다.
배를 채운 딸들은 다시 낚싯대를 잡고 검은 바다에 찌를 띄운다. 그때였다. 비명에 가까운 지혜의 고함이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기겁한 영민과 미영이 겅중 튀어 올라 지혜에게 달려간다. 지혜는 낚싯대를 붙잡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쩔쩔매면서도 달뜬 모습이 역력하다. 영민이 지혜 옆에 서서 흥분하며 소리 첫다.
"대물이다! 지혜야. 낚싯대 꽉 잡고 지긋이 올려! 서두르지 말고 침착해!"
“아빠! 그런데 꿈적도 안 해! 자꾸 낚싯대가 끌려들어 가!”
미영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혜야! 낚싯대 놔 버려 위험해!"
“아냐! 팔에 힘을 주고 버텨, 그리고 낚싯대를 추켜세워 봐!"
조용하던 밤바다가 일순 떠들썩해졌다.
물고기와 힘겨루기를 하는 지혜가 버거워 보였지만 영민은 오롯이 딸이 거둔 성과로 남게 하려고 아이를 도와주지 않았다. 감당하기 힘든 건 놓을 줄도 알았으면 하는 미영과 다른 마음이었다. 인생은 기회가 있을 때 이를 움켜쥐어야 한다는 게 진리임을 가르쳐 주는 것인지도 몰랐다. 사람답게 살려고 미영이라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듯이,
은근히 강단이 있던 지혜가 끈질기게 물속 미물을 제압 했다. 물고기는 힘이 빠졌던지 아니면 생을 포기하려 슬그머니 항복을 한 것인지 해면을 비집고 나와 허연 어제를 드러냈다. 방파제에 끌려 나온 놈을 보는 가족은 환호하며 난리 법석을 떤다.
"아빠! 이게 뭐야?"
"응! 감성돔이야! 우와 40센티는 되겠는 걸? 우리 딸 최고.."
영민이 지혜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워준다.
“이게 감성돔이야? 우리 횟집 가면 먹는 거?"
"그래! 이놈은 태어날 때 암수를 모두 가진 자웅동체로 있다가 이 정도 크기가 되면 자웅이체가 되어 임수로 나뉜단다."
" 아직 가슴이 두근거려, 아빠."
물 밖으로 나오기 싫어 여속으로 꾹꾹 대가리를 쳐 박더니, 무엇이 어중이떠중이 낚시꾼에게 끌려 나와 생을 포기하게 했을까 미영이 플래시로 물고기 눈을 비춰보다 슬그머니 그 눈을 외면한다. 빛에 반사된 놈의 눈동자가 처연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지혜야! 여보! 얘 도로 놔주면 안 될까? 재미 봤으니까 돌려보내라 얘도 번식을 해야 하지 않겠니. “
"헐! 울 엄마, 하여간 못 말려. 물고기 눈 보고 울려고 하네? ”
"지선아, 엄마 겨드랑이 만져봐. 분명 날개가 있을 거야. 엄마 잘 지켜. 우리 옷 들고 하늘로 도망갈지 모르니까."
"알았어, 아빠! 엄마, 나도 쟤 잡을 거니까 꼼짝 말고 있어. 하늘로 뽕 사라지지 말고?"
"뭐야, 부녀가 쌍으로 나를 놀리네? "
지선이 샘이 났던지 지혜의 낚싯대를 움켜쥐고 찌를 향해 눈을 부라린다.
"지선아! 조심해!"
"조심 안 해도 돼. 상괭이 하고 노는 수영 잘하는 엄마 백이 있는데 뭐!"
"뭐야, 이 녀석들이 엄마 자꾸 놀려먹을래? 엄마 수영 실력 정말 보여줄까?"
미영이 딸들 옆으로 다가가 바다로 뛰어들 자세를 취하자 아이들이 놀라며 제지한다.
"아냐, 믿어줄게. 그런데 지금 밤이라 위험하거든? 보여줄 거면 내일 낮에 해수욕장에서..."
"알았어! 그럼 엄마랑 뭐 내기할까? 엄마가 이기면 너희들 전교 석차 십등 끌어올리기 어때?"
"으구.. 울 엄마 또 시작이다. 알았어요, 알았어! 물고기 야옹이 다 줘서 반찬거리 잡아야 하니까 아빠랑 노세요.."
딸이 아닌, 때론 친구 같은 아이들이다. 두 딸들로 인해 행복이 두 배가 됐다. 새삼 영민에게 미안한 생각이 드는 미영이다. 한 녀석이 아들이었으면 영민도 친구를 얻었을 텐데... 화로대 위에는 고도리도 소고기의 위세에 눌리지 않고 노릇노릇 익어간다. 소주 한 잔 따라주고 고기 한 점을 집은 미영의 젓가락이 영민 입으로 향했다.
"여보! 내 소원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라고 했잖아?"
"알지, 당신이 입버릇처럼 얘기했으니까. 그런데 그건 당연한 인간의 기본적인 삶인데 소원이라기엔 빈약한 것 같은데, 이제 포부를 좀 더 크게 가져보지. 더 거창한 소원으로..."
"아니! 절대 네버... 이 세상엔 그 당연함에도 소외되어 사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 나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7살 때 동생 손 잡고 고아원에 들어가 부모의 사랑이 뭔지도 모르며 자랐어. 그런 불우했던 환경이 내 소원을 가정의 행복으로 만든 거야. 이제 그 소원을 이루었고, 그래서 당신 말처럼 소원도 바뀌었어. 거창하지는 않지만... 여보! 그게 뭔지 알아? 바뀐 내 소원이?"
영민은 실실 웃으며 미영 볼을 꼬집었다.
"내가 당신을 몰라? 부자, 그리고 아이들 성공, 이런 건 알도 바라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 누구보다 잘 아는데, 뻔하지 뭐. 싱겁기만 한 거겠지."
"싱겁지 않은데, 불가능할지도 모르고? "
“ 뭐야! 이 심각함은, 또 놀리는 거 아니겠지? ”
"여보! 내 소원은 이제 행복하게 죽는 거야! 지금처럼 행복을 누리다 웃으며 죽는 거. 상괭이처럼 죽어서도 웃는 얼굴을 보이는 그런 죽음. 죽기 전에 엄마와 동생도 만났으면 금상첨화겠고.. 그리고 당신보다 내가 먼저 가는 거, 당신이 먼저 가면 내가 슬픔을 겪어야 하니까."
"그럼 당신 먼저 보내고 그 슬픔을 겪는 나는 어쩌라고?"
"아! 그건 내 알바 아니고, 나만 안 슬프면 돼."
"뭐야, 이기적이야. 그럼 같이 동시에 가면 되겠네?"
"그것도 안 돼! 그럼 우리 아이들 슬픔이 두 배가 되잖아. 할 수 없다. 당신이 혼자 슬퍼할 수밖에..."
미영이 새초롬한 표정으로 킥킥대며 소주잔을 들어 목젖을 보였다.
“쓸데없이 죽는소릴 하는지...”
영민도 술집을 비우며 구시렁댄다. 가을밤 소소리 바람이 부부에게 쇄락함을 준다. 희열이 가득한 딸아이들의 비명이 적요의 섬을 들썩거리고, 석쇠 위의 고기처럼 밤도 자글자글 익어갔다.
날이 밝자 미영은 아버지 산소에 술 한잔 올리고 난
섬 산책에 나섰다. 이들 가족이 가는 곳마다 막개들의 경계가 섬의 고요를 깨뜨린다. 사람들이 모두 휴거라도 한 것인지 섬 마을엔 인기척이 없다.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자 바람 한 무리 훅 불어와 돌담 틈을 파고든다. 구멍 숭숭 난 물담이 바람을 받아들인다. 공생하는 법을 아는 게다. 풍요의 계절임을 증명하듯 섬 길을 점령한 알갱이들은 마르고 알알이 익어가느라 해바라기에 열중이다. 바람도 농심을 아는지 알갱이들을 흩뜨려 놓는 법이 없다. 모든 흐트러짐은 인간 때문일 뿐이다. 미영 옆집 할아버지의 나락도 우월감에 빠진 도시의 차들이 밟고 지나가 오할을 잃었다.
“ 탕... ”
지척인 듯했다. 미영 가족이 총소리에 놀라 진원지를 따라 모퉁이를 돌자 너른 운동장이 보였고 운동장에는 아이들 뜀박질에 뽀얀 흙먼지가 일고 있었다. 운동장 한쪽에는 앙증맞은 파스텔톤의 단층 건물이 있었다. 분교였다. 교실이래야 고작 대여섯 개가 전부인 듯했고 운동장 위에는 만국기가 심한 바람을 견뎌내느라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학교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섬의 분교에 가을 운동회가 한창이었다. 미영은 비로소 섬이 여느 때보다 고즈넉한 이유를 알았다.
"청군 이겨라! 백군이겨라!"
아이들 응원이 하늘을 찌르는 듯하다.
하지만 터질 것 같은 아이들 목청의 노고에 비해 응원 소리는 함성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손가락 발가락 개수보다 적은 아이들 고함은 하늘을 찌르는 게 아니라 하늘을 찌르려 깐족대는 꼴이라는 게 맞을 듯했다.
바통을 움켜쥔 아이들에게 너른 운동장이 버거워 보인다.
미영은 뜀박질하는 아이들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 너희들 바통은 공책과 연필이겠구나. 나의 바통은 행복이었단다.”
자웅을 겨루는 아이들의 강단진 모습에 어른들이 더 열광한다. 누가 운동회의 주역들인지 애매모호하기만 하다. 섬 분교 운동회는 아이들만의 축제가 아니었다. 어쩌면 열댓 명 아이들을 내세운 어른들의 하루 일탈이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옆집 할아버지는 통발에 든 문어를 통째 삶아 왔고, 할아버지 옆집 할머니는 소라를, 전복을... 이렇듯 섬 분교 운동회는 남녀노소, 어른아이 할 것 없는 모두의 축제였다. 미영 가족도 축제에 끼어들었다. 그늘막 한편에 선착장 라면집 아낙이 미영을 반긴다. 해물라면을 끓이는지 솥뚜껑 사이로 축제 열기와 같은 뜨거운 김이 푹푹 빠져나온다.
” 미영이 왔냐? 이 짝에 앉그라 점심 전이제? 딸네미들이 인자 어른이 다 됐구먼, 미영이 너 젊었을 적 맹키로 이쁘구만이라.. “
아낙의 너스레에 미영 가족이 함박웃음을 짓는다.
"얘들이 다 큰 것처럼 우리도 늙었다는 거지, 언니."
” 그랑게 세월이 요로코롬 빨리 간다냐? 세월을 데불고와 저그 아그들과 뜀박질시키면 1등 할 거이다 그라제 미영아! “
아낙의 넋두리에 미영은 가슴이 턱 막혔다.
또 한 번 총소리가 울리자 다리 한 짝씩 묶은 쌍쌍이 뛰어나간다. 이들 중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하고 뛰는 젊은 커플이 도두보였다.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보는 미영의 미소가 쓸쓸해 보인다. 아낙이 넌지시 조근거렸다.
“ 쟈들 참 이쁘쟈잉? 어린것들이 얼매나 이쁘게 사는지 아는가?. 동네 어른들한테도 싹싹하고, 나한테도 솔찬이 잘 한당게 ! 근디 말여, 돈 벌어 도시 가서 집 산다고 둘이서 배 타고 바다 나가는 거 보면 참말로 짠하당게 ”
미영이 애틋하게 바라보았던 젊은 한 쌍은 미영이 낳은 건달의 아이이기도 했고 자영 아들 부부이기도 했다.
자영이 미영 안부를 묻고자 섬으로 전화를 걸었을 때, 미영은 당장 섬을 떠날 거라 했다. 서울 가서 대학에 진학할 것이고 가계 문을 닫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솔깃했다. 자신을 찾으려 이 잡듯 뒤지고 다니는 성구가 목포까지 내려와 눈을 부라리며 다닌다는 고아원 친구의 말을 듣고 숨죽이고 있던 때였다. 어디론가 당장 도망이라도 가야 할 처지였다. 자영은 반색하며 자신이 섬에 가서 가계를 하며 살면 안 되겠냐 했고, 미영은 흔쾌히 그러라 했다. 그렇게 미영의 가계를 넘겨받아 나이 먹어가던 자영이었다. 하지만 가계는 경제적인 도움은 되지 못했고, 섬에 여행객이 늘어나자 선착장에 식당을 열었다.
그즈음 미영도 두 딸을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을 때였다. 근무하는 병원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을 때였다. 그때 걸려온 자영 전화는 경천동지 할 일이었다. 자영이 목표에 나가 고아원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다 미영에 관한 소문을 들었다 했다. 소도시 고아원 출신들에게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이였기에 미영 이야기도 공공연한 수다거리였을 터였다.
"갓난아기 때 들어온 재석이란 아이가 미영이 낳은 아이래!.."
이랬던 게 종국엔 “미명이 낳고 도망가서 남자친구가 고아원에 버린 아이야”로 명확하게 바뀌어 아이들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미영은 아이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세월이 흐른 뒤 나타난 아이를 어찌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제 뱃속에서 나온 아이이기에 거둘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영민에게 사실을 고백하고 데려올까 생각도 해 봤지만, 아이에 대한 모성이 행복한 가정에 파장을 불러올 만큼 크지 않았기에 숨기기로 했다.
꿈꾸었던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에 겨워 쩔쩔매는날들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았다.
"언니! 어쩔 수 없어, 우리 가족이 받아들이기 힘들어할 거야!"
"허면 미영아! 나도 이 나이까지 새끼도 없고 외롭기가 저 바닷속 맹키로 깊기만 헌디 그 아그를 나가 대불고 살면 안 되것냐? 나 호적에 입적시키고.."
"그러면 나도 좋지 언니! 고아원에서 천덕꾸러기로 자라는 것보다 언니 사랑받으며 사는 게 낫지.."
그런 뒤 재석은 자영의 아들로 섬에 들어와 성장했다.
한바탕 소란스러웠던 축제가 끝날 무렵, 아담한 분교 그림자가 운동장에 길게 누웠다. 바다 저 멀리 점점 떠있는 배의 모습이 고졸하다. 바닷가에 앉은 네 식구의 모습이 퍽이나 행복해 보인다.
가족 등 뒤로 웃음이 화수분처럼 날아간다. 어스름 저쪽 어디쯤에서 첨벙 대는 물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그곳에도 기실 상괭이 가족이 행복해하고 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