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웃는 상괭이가 산다

6. 두 번째 첫사랑

by 소안

참으로 간사한 사람 마음이었다. 영민이 깨어나기만 한다면 남은 생애 더 바랄 게 없겠다는 생각을 했거늘 바람대로 영민이 깨어났지만 깨어난 아들이 기억 상실증이라는 의사의 말에 임 여사는 또 다른 바람이 생겼다. 기억이 돌아온다면 남은 생엔 정말 바랄 게 없다는,

그렇지만 임 여사가 바라거나 말거나 영민의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의사의 말도 한술 더 떠 이대로 지금 이전의 일들은 영원히 찾지 못할 것 같다고도 했다.

그 순간 퍼뜩 임 여사의 생각에 들어오는 이름이 있었다.


그래, 소희..."


임 여사는 실망을 희망으로 전환시키는 능력도 뛰어났다. 이순을 사는 삶의 지혜였다.

기억을 잃은 게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에 이르기까지는 순간이라는 시간이면 충분했다, 소희. 얼마나 치가 떨리는 이름인가? 그 소희라는 이름이 아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이 임여사의 바람도 슬그머니 데리고 갔다.

영민의 머릿속을 누구보다 세세하게 알고 있는 임여사이거늘, 왜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텐가? 잃은 기억이라고 해야 고작 소희로 인해 온통 너절하고 구지레한 것들뿐인데. 그리고 이러한 기억들로 인해 아들이 또 파국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임여사의 땅이 꺼지는 한숨을 거두게 했고, 의사의 말처럼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했다.

생각의 변화로 마음이 안정되자 이번엔, 그렇다면 텅텅 비워진 아들의 뇌 공간을 무엇으로 채워줄까 골똘해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얻은 결론은 어미는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는 엇나간 모성이었다. 결국 인륜을 저버리는 행위까지 하게 되는 임여사. 영민의 정신은 돌아왔으나 임여사의 정신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가는 행위가 용서받지 못할지라도 자식을 위한 모성애로 정당화하였기에 죄책감은 전혀 들지 않았을 터였다.


의사가 영민의 몸을 감싸고 있는 붕대를 풀어헤치자, 일그러진 영민 얼굴 사라지고 사람의 형상이 드러났다. 영민의 두 번째 인생 서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의사와 임여사, 그리고 병원 관계자들은 모두 박수를 치며 한호 했다. 의학의 한계를 뛰어넘은 생명의 끈질김을 지켜보는 모두는 숙연해하기까지 했다. 그것은 기적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수 없는, 영민에 대한 신의 배려라는 것이 옳을 듯하다. 신에게 감동을 준 것은 임여사가 대들보처럼 영민을 받치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

임여사의 눈물이 멈출 기미가 없다. 영식도 눈물을 훔치느라 손이 바쁘다.


“아직은 무리하면 안 되고, 재활 운동을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꾸준히 운동하면 금방 혼자 걸을 수 있을 겁니다.”


모인 사람들 모두는 임여사의 손을 잡고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노고를 위로한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온갖 상념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녀서 할 말이 없는 임여사였다. 슬그머니 남편에 대한 원망이 나왔다.


“나쁜 사람, 조금만 참으면 이런 날 오거늘.”


그동안 유난히 이 가족에게 살뜰했던 담당 간호사도 밝은 미소를 지으며 임여사의 손을 잡았다. 남편 못지않게 우울증을 겪고 있었던 임여사에게 웃을 수 있는 여유를 주었던 그녀였다.


"어머니, 재석이 안 데리고 오셨어요?"


"어쩌나, 그 녀석 이제 볼 수 없게 됐으니. 이 간호사가 많이 예뻐해 줬는데."


"어머! 다른 사람이 봐주기로 했나 보죠?"


"그게 아니고, 우리 영민이 사실 결혼 안 했어요! 아이는 대학 때 사귀다 헤어진 여자친구가 저 혼자 몰래 낳은 아이예요! 그런데 그 아이가 찾아와 울며 사정을 하는데, 어찌나 가슴이 아픈 던 지, 애를 떼어놓고 도저히 못 살겠다는 거야. 그래서 할 수 없이 보냈어요. 나도 어민데 어찌 그 심정을 모르겠어. 영민을 보며 울다가도 그 녀석을 보며 웃곤 했는데, 애를 보내고 나니 왜 이렇게 서운한지. 결혼해서 미국 가 산다나 뭐라나?"


"그럼 아드님도 재석의 존재를 모르겠네요?"


“ 당연하지? 사고 후에 낳은 아이니까 영민이 깨어난 후 아이에 대해 묻길래 말을 했더니 전혀 실감하지 못하더라고. 왜 안 그렇겠어? 지 에미도 몰라보는데.”


어쩔 수 없었던 임여사였다.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거짓말보다 더한 것도 할 수 있는 임여사는 어머니였다. 암울함 속에서도 손주로 인해 웃을 수 있는 여유도 있었던 건 사실이었으나, 영민이 깨어나자 새파랗게 젊은 아들 앞에 손주의 존재는 껄끄럽기만 했다. 아들의 앞날에 방해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든 건 당연했을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 했듯, 깨끗이 비워진 아들 머릿속에 찌든 과거의 잔재를 담아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도덕과 윤리의 결여로 이어진 것이다. 오욕과 남루한 과거를 털어낸 자리에 행복한 것들을 채워주고 싶었던 것이다. 인륜을 저버린 모종의 일들에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양심에 찔려 절절매기도 했지만, 영민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주고 싶은 간절함이 모든 걸 무시하게 했다.


“어머니, 재석이는요?”


“영민이 물음에 임여사는 이 간호사에게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거기에 덧붙였다.


“아이 생각할 필요 없다. 어차피 너는 몰랐던 아이니까 이제부터 내 살 궁리만 하거라.”


그렇게 재석은 영민의 머릿속에 잠깐 머물렀다가 이내 자취를 감춘 존재가 되었다. 임여사의 말에 추호도 의심의 여지를 느끼지 못한 영민은 덤덤하게 어머니의 언질에 순응했다. 영민은 아이에 대하여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재활에 전념했다. 동생 영식만 어머니의 말에 의심을 품었다. 어머니가 필시 모종의 음모를 꾸민 것이라 확신이 들었던 영식은 어머니를 비난했다.

“형 아들이에요.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요? 소희 누나가 가엽지도 않으세요?”


“이미 모든 건 끝났다. 호들갑 떨 필요 없다. 형을 또 그 년과 연결시킬 수 없어! 네 아버지와 형을 보고도 가엽다는 말이 나오니?”


“ 재석이는 소희 누나 아이기도 하지만 형아들인 것도 엄연한 사실이에요! 그리고 어린아이를 소희 누나 동생들이 어떻게 키워요? 그 집에 데려다줬다는 말도 전 못 믿겠어요! 말씀하세요! 재석이 어디 있는지 데려올게요!


"재석이는 애초에 없었던 아이야. 더 이상 입에 올리지 마라."


형을 위한다는 어머니의 만행에 형이 소희 누나에게 보낸 편지를 찢어버렸을 때보다 더 큰 실망을 어머니에게 느꼈다. 이것이 진정한 모성일까? 아무리 곱씹어 보아도 어머니라는 단어 안의 자식 사랑은 영식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저 재석이가 어머니 말처럼 소희 누나 동생들에게 갔기만 바랄 뿐이다.

임여사는 아이를 보냈어도 변화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짧은 몇 날 아이로 인해 웃을 수 있었던 것을 다른 사람으로 채웠기 때문이다.


떠들썩했던 게 무색하리만치 무거운 고요가 감도는 새벽.

임여사와 이 간호사가 커피를 마시며 두런대는 그 모습이 마치 모녀지간인 것처럼 정겹다. 임여사가 잠도 자지 않고 그녀가 한가해질 때까지 기다린 건 목적이 있었다.

아들이 긴 침묵에서 깨어나자 임여사는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모든 수술이 완벽하게 끝나 점점 사람의 모습을 갖춰가는 영민. 이처럼 육체는 멀쩡해지고 있지만 텅 빈 머리로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되는 임여사는 아들이 깨어난 기쁨을 누리는 건 잠시였다. 온전히 사람 노릇할 때까지 1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알 수 없기에 자신의 바통을 이어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 사람이 영민의 비워진 머릿속을 채워줄 사랑으로 맺어진 짝이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았다.

뜨문뜨문 찾아오던 가슴앓이의 빈도가 심해진 것이 이러한 욕심을 품게 했다. 인두겁을 쓰고 차마 할 수 없는 일을 벌인 것도 고작 사계절분의 생명을 허락받았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모든 것들이 임여사를 안절부절못하게 한다.


하얀 눈이 세상 모든 것을 잠식했을 때, 멈춰가던 심장을 겨우 살려가며 실려 온 병원. 그 뒤 두 번째 겨울을 맞으며 병원을 떠나는 영민,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기적이라느니 하늘의 도움이라느니 말들의 향연이 넘쳐났다.

그러나 이러한 찬사의 언어들도 모두 타인의 입에서 살아 움직일 뿐, 정작 영민에겐 먼 산을 휘감고 돌아오는 메아리였다. 비워진 27년의 공백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삶의 좌표를 어디에 찍어야 할지 모든 게 혼란하기만 하여 깨어남이 이질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러한 영민에게 아버지, 죽음의 까닭은 비밀이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입단속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앨범 속의 모든 얼굴들이 낯설었다.

책상 서랍 속 물건들. 책장의 책들. 무엇 하나도 영민의 손에 만져지지 않았던 게 없었거늘, 영민의 기억에 침투하는 건 하나도 없었다. 손에 익숙한 것들의 낯섦에 저으기 당황하는 영민은 비로소 잃어버린 기억에 현실감을 느끼며 쩔쩔맨다.

이럴 줄은 몰랐다. 2년 만에 귀가한 영민은 자신의 방 책상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

영민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알려고 하지 않기로 했다. 이것들의 내력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이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 들어 있었기에 다시 집어넣으면 될 일이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편해진다. 병원을 나설 때 난무했던 기적이라는 말처럼 자신의 기사회생에 기적을 부여하기로 했다. 어머니가 그러지 않았던가, 사라진 27년의 기억이란 게 온통 허섭스레기 같은 것들뿐이라고. 그렇다면 그것들의 굴레에서 벗어나 기억의 항아리에 새것들로 다시 차곡차곡 채우리라 생각해 본다.

생각이 탁류가 흐르는 계곡을 건너가자 가능한 한 빠르게 정상적인 삶 속으로 녹아들고 싶어진다. 그래서일까, 세상에 눈을 뜨는 순간 최초로 기억 속에 담긴 그녀의 얼굴이 기억 맨 밑에서 삐죽이 솟구쳤다.

축하한다며 아는 척하는 사람들을 맞을 땐 머쓱해하기도 했고, 사물들의 역할에 당황하기도 하는 날들이 퇴원 후 한 달이 지날 때까지 진행 중이었다. 그런 가운데명징한 건 그녀뿐, 텅 비어 있는 기억의 공간에 오직 그녀만이 침장하여 머무르고 있었다. 청신한 그녀의 눈빛이 선연하자 이윽고 보고 싶은 감정이 밀려왔다.


“어디 불편하거나 아픈 곳은 없어요?”


“네! 많이 좋아졌습니다. 모두 이 간호사님 덕분입니다.”

“제가 뭘 할 게 있다고요? 간호사의 의무를 다한 것뿐인걸요! 영민 씨 좋아 보이네요! 지금처럼 재활 치료 열심히 하시면 금방 뛰어다닐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도 남들처럼 등산도 하고 싶고 여행도 다니고 싶습니다! 언제나 그런 날이 올까요?”


“무슨 말씀이에요? 곧 그럴 수 있을 겁니다. 퇴원 한 달 됐죠? 한 달 만에 이 정도 회복을 보이는 건 무척 빠른 겁니다.”


고조근한 말투에 곁들인 온화한 미소가 영민의 가슴을 마구 흔들었다. 임여사와 연민에게 가족처럼 극진했던 이 간호사는 나이팅게일의 거룩한 봉사정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간호사 정신 그 이상이었다. 영민이 퇴원을 하고 재활 치료를 하는 중에도 수시로 찾아와 용기를 주었다. 그 탓에 병원을 드나드는 영민은 재활 치료보다 그녀를 만나는 것에 더 큰 목적이 있음을 감추지 못했다. 재활 운동을 마치고 공원에 올라가 대화라도 나누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그녀에 대한 사랑이 한층 두터워지는 영민이었다.


인공 연못 물레방아가 물방울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영민도 사랑의 옹알이를 시작한다. 보글거리는 물방울을 보며 영민은 혼잣말로 옹알거린다.


“내 사랑도 저 물방울처럼 부풀었으면.”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하게 하세요?”


“아닙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이 간호사님 칭찬을 많이 하시더군요. 제가 깨어나기 전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별말씀을 다 하셨네요! 어머님이 너무 딱해 보였어요. 아들 옆을 한시도 떠나지 않으시고 몸을 주무르시고 어루만지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았어요! 저런 게 어머니와의 사랑이구나 하고.. 그래서 다른 환자보다 조금 더 신경을 쓰게 된 것이고요!


“제 어머니의 고초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맞아요. 언젠가 그러시더군요. 영민 씨 깨어나기 전에는 아버님처럼 무책임하게 죽지 않을 거라고. 어머니에게 잘해드리세요! 효도할 수 있는 방법은 빨리 정상적인 몸으로 돌아와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겁니다. ”


“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지처럼 무책임하게 죽지 못한다는 게, ”


“ 아! 영민 씨 그건.. 그게 아니라 제가 쓸데없는 말을 했어요! 그만 내려가시죠…”


미영이 실언을 했다고 느끼는 순간, 말은 이미 영민의 귀에 꽂히고 말았다.


“가족인 저도 모르는 일을 알고 계신 것 같군요. 말씀해 주세요! 아버지에 관한 일을 알고 계신 것 같은데, 아들인 제가 모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


“제가 의식이 없는 동안에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알려주세요!”


“실은 저도 이 병원에 온 지 오래되지 않아 자세히는 모르는데, 동료들에게 들은 얘기예요. 제가 간호대 졸업하고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영민 씨는 뇌사 상태였어요! 어머니 얘기도 화제가 되었죠. 헌신적인 자식 사랑이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더군요! 그런 가운데 동료들이 아버님 얘기를 하는데, 그 얘기를 듣고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자초지종을 들은 영민은 아버지의 휠체어가 자빠져 있던 인공 연못 앞에서 아버지를 나직이 불러본다.


“아! 아버지..”


울음은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 죽음의 내력에 자신이 원인으로 들어있긴 해도 슬픔을 느낄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기억 너머의 매캐한 감정일 뿐이었다. 멍해하는 영민의 모습이 의아한 이 간호사도 아무 말할 수 없었다. 어차피 지난 일이기에 영민으로부터 슬픔을 끄집어낼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슬퍼하지 않던 영민의 눈자위에 가랑가랑한 눈물이 맺힌 것을 본 이 간호사는 영민을 포옹하고 등을 토닥인다. 이 간호사의 콧등이 시큰해진다.


아버지의 죽음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영민이 이처럼 불현듯 무기력하게 슬픔에 흔들리는 건 아버지라는 명사를 듣고 볼 때마다 자살이라는 행위를 떠올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날의 참상을 기억하고 있는 물레방아는 변함없이 물을 담았다 쏟기를 반복하며 물방울의 역사를 만든다. 영민 아버지도 물레방아에 담긴 물처럼 애환이 무거워 쏟았으리라.


“고마워요. 알고 있어야 될 일입니다. 덕분에 우리 가족이 겪은 고초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영민이 옥상 끝으로 다가가 아버지의 추락을 본다. 그날의 비극을 감추고 있는 자리에는 차들이 늘어서 있고, 매미가 앉았던 나무는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다시금 이파리를 띠우며 태동을 하고 있다. 영민은 생각한다. 1주기가 오기 전에 완벽한 사람이 되어 아버지 영전에 삼배 올리겠다고.


"영민 씨는 저보다 많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저는 부모님의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자라서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담뿍 받는 영민 씨가 부럽기만 합니다. 보세요, 꽃들도 때가 되어 이렇게 피어나잖아요. 영민 씨도 이제 막 피어나는 꽃과 같은 존재입니다. 어머니를 위해 그리고 본인을 위해 속히 피어나세요. 이 꽃들 참 예쁘죠?"


꼴들을 어루만지며 소곤대는 그 모습에 영민의 가슴이 소용돌이친다.


“어머니가 이 간호사님을 초대해 식사 대접하고 싶어 하시는데 어떠실는지..?”


“어머!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


“거절하지 마세요! 어머니께서 이 간호사님께 많이 고마워하십니다. 자취하면서 식사도 제대로 못 하는 것 같다고 집밥 한 끼 해 드리고 싶다고요!”


“알았습니다! 시간 내 볼게요! 영민 씨 가족의 울타리가 참 따뜻해 보여요!”


초대를 승낙받은 영민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일었던 슬픔을 듬뿍 덜어냈다. 새롭게 펼쳐진 삶이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첫 붓터치였다.


“어머! 이 그림은?”


벽에 걸린 그림을 본 미영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간호사 음식이 입에 맞았는지 모르겠네?”


“네! 어머니, 이런 음식 처음 먹어봐요! 너무 맛있게 먹었습니다. 이런 음식을 처음 먹어.? 평범한 집밥인데.. 그럼 지금껏 뭘 먹고살았어요!”


“아무래도 혼자이다 보니 그냥 이것저것.”


“저런, 세상에! 어릴 때부터 혼자 자랐다는 건 안다만 , 음식도 제대로 못 먹고살았구먼. 에구, 딱해라.”


임여사는 미영이 가엽다는 듯 혀를 찼다.


“앞으로 자주 와요. 내가 맛난 밥 해줄 테니까! 영민이 방에 가서 천천히 놀다가요. 내가 차 갖다 줄 테니.”


영민이 방에 들어온 미영은 하마터면 들고 있던 커피잔을 놓칠 뻔했다. 놀라 휘둥그레진 눈으로 미영은 그림에 얼굴을 바싹 대고 찬찬히 살폈다. "생연도의 추억"이라는 제목 아래 사인은 분명 자신이 한 것이 틀림없었다. 어느 여름날 가게 앞 평상에 앉아 하루의 끄트머리를 그린 것이었다. 대학생들의 캠프파이어를 보며 부러움이 가득했고, 그 무리에 끼고 싶다는 욕망이 가득했던 때였다.


“이 그림은 그때 그 사람이 갖고 싶어 해서 준 건데, 그런데 이게 왜 여기에 걸려있지?”


미영은 어슴푸레하게 그림을 준 대학생 얼굴을 떠올려봤으나 영민과 연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영민 씨, 이 그림 어디서 났어요?”


“글쎄요, 저도….”


“아, 미안해요.”


물으나 마나 한 걸 물어본 미영은 머쓱해하며 시선을 다시 그림으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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