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두 번째 첫사랑
“뭐라고요? 담배 피우고 싶다고?”
남편은 밥을 우적거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밖에 더워서 안 돼요! 저녁에 해지면 가요!"
하지만 남편은 어눌한 말투와 손짓을 곁들여 나갈 것을 제촉 했다. 그런데도 임여사가 만류하자 흥분하여 밥상을 손으로 쓸어버린다.
"알았어요! 알았어, 흥분하지 말아요!"
어쩔 수 없이 임여사는 남편을 휠체어에 앉히고 공원으로 올라간다. 임여사가 담배에 불을 붙여 입에 물려주자 연달아 몇 모금 빨더니 물끄러미 임여사를 바라본다.
"담배가 그리 피고 싶었어요?"
남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윽고 우물거리듯 말을 했다.
"무.. 물.."
"뭐라고? 물 마시고 싶다고?"
남편의 변화에 저으기 놀란 임여사는 남편의 정신이 돌아오는 것이 아닐까 싶어 부리나케 옥상공원을 내려간다. 남편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휠체어를 굴려 공원 끝으로 간다.
그러더니 힘겹게 휠체어에서 몸을 일으켜 난간에 올라섰다.
한 여름 맹렬한 더위로 인해 남편의 행동을 제지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후끈한 입김 같은 바람만 나무들을 간간히 흔들어댔다. 난간에 올라선 영민 아버지는 우두커니 파란 하늘만 올려다보더니 이내 자취를 감췄다.
화단 옆에 자빠져 나뒹굴던 휠체어가 비극을 알리는 듯했다.
주차장 옆 작은 나무에 매달려 있던 참매미도 순식간에 울음을 멈췄다. 영민 아버지의 추락에 놀라 다른 붙잡을 곳을 찾아 날아갔기 때문일 테다.
임 여사와 영식은 응급실로 들어오는 남편의 침대를 잡고 또 절규 했다. 이윽고 임여사는 병원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영민이 병원에 실려왔던 장면의 데칼코마니였다. 영식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어쩌지 못하고 주먹으로 벽을 가격하며 서럽게 운다. 잠재되어 있던 슬픔이 몸 밖으로 몽땅 쏟아지는 순간이었다. 임 여사도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침대에 앉아 눈만 껌벅인다.
담배 피우고 싶다고 했을 때, 자신을 보고 빙그레 웃어줬을 때, 낌새를 챘어야 했는데, 여느 때와 다른 행동을 보였음에도 왜 조금도 의심해보지 않았는지 심한 자책감이 들었다. 남편의 죽음에 방관자가 된 것 같은 죄의식이 임 여사의 정신을 지배했다. 그럼에도 남편에 대한 원망이 없지 않은 건, 다른 붙잡을 곳을 찾아 날아간 매미처럼 모든 걸 자신에게 다 떠넘기고 홀로 편해졌다는 것 때문이었다.
본인만 힘들었나, 본인만 자식에 대한 상실감이 컷나?임 여사와 영식도 똑같은 고통 속에 살고 있거늘, 혼자만 힘들고 혼자만 견딜 수 없는 것처럼 훌쩍 그렇게 떠나버린 남편에게 증오심마저 들었다.
그러나 남편이 죽었다고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임여사였다. 영민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고, 당장 내일이라도 어머니 하며 벌떡 일어날 것 같은 희망이라는 끈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바스러질 것 같은 육신으로 남편의 장례를 마친 임여사는 여전히 영민의 병실 간이 침대에서 쪽잠을 자며 아들의 기적을 꿈꾸고 있다.
"결단을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생명 연장의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년 가까이 식물인간이라 불리던 즈음이었다.
"그럼 우리 아이가 깨어날 가망이 전혀 없다는 말씀인가요?"
"백 프로 그렇다고 말씀드릴 수 없는 실정이긴 합니다만, 아직까지 무의식 상태인 걸로 보아 그렇게 봐야...."
확실하지 않은 어투로 다음 말을 확실하게 하지 못하는 의사의 말이 한 가닥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게 했다. 그간의 고생이 억울했고, 남편의 죽음이 억울했고, 자식이 식물인간으로 불리는 게 억울했다.
자식은 밥으로 키우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키우는 것이기에, 병원비로 인해 가산이 거덜 나는 한이 있더라도 의사의 권유를 따를 수는 없었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이어졌던 탯줄은 세상 밖에서도 가슴으로 이어졌는데, 어찌 이 생명의 줄을 끊어버릴 수 있다는 말인가. 이상 반응으로 영민의 심장이 빠르게 뛸 때면 임여사의 심장도 요동쳤고,영민의 팔뚝 맥박이 느슨해질 때면 임여사의 맥박 역시 힘을 잃어 겨우 팔딱거렸거늘,
“아닙니다, 선생님! 숨을 쉬고 있는 아이를 보낼 수는 없습니다. 어찌 에미가 새끼의 숨통을 끊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천륜이라 하여 하늘이 데려간다면 손을 놓아야 하겠지만, 나 살자고 보낼 수는 없습니다.
의학적인 죽음, 그게 뭔가요? 아무리 의학적으로 희생이 불가능하더라도, 에미의 간절함을 하늘도 안다면 우리 아이를 돌려주리라 전 믿습니다.”
절대 보내지 않겠다며 의사에게 역정을 내기도 했으나, 병실에 돌아와 미동도 없는 아들을 볼 때면 어떤 게 옳은지 길을 찾지 못하고 눈물만 떨구는임여사였다.
생명 연장의 의미가 없다는 의사의 말이 무시로 임여사의 의식을 파고든다. 메달 청구되는 병원비도 이제는 금액 앞에 "어마어마한"이라는 단어가 붙어야 할 정도로 부담이 되었고, 가산이 가뭄에 저수지처럼 바닥을 드러내는 속도가 빨라진 이유에 임여사의 육신은 쇠약해만 갔다.
이러해서 저러해서 단 하루도 현기를 느끼지 않는 날이 없었다. 아이도 이미 미운 오리 새끼가 되어 천덕꾸러기로 자라고 있는 실정이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아이가 불행을 가져왔다며 미워했기 때문이다.
영민 아들이긴 했으나, 영민은 옳게 사람 꼴을 못 하고누워 있는 형국이고 남편도 그렇게 떠난 마당에 잠깐 느꼈던 손주에 대한 살가운 정은 산산이 부서진 것이다. 영민이 산 송장이 된 것처럼 소희 아이도 남편을 죽게 했다며 소희와 연결되어 손주마져 등한시 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아이 키우는 일이 버겁기만 했지만, 법적 보호자이기에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들락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운명이라는 얽힌 실타래는 애쓴다고풀리는 게 아니었다. 그냥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중에도 의외로 쉽게 풀리기 마련이었다. 인생 속에 불행만 들어있다면 인간은 이미 멸종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생 속에 그나마 희망이라도 꼬물거리고 있으니 살 수 있는 게 아닐는지.
여느 때처럼 아이를 영민 옆에 뉘이고 자신도 간이 침대에서 잠에 빠져 있을 즈음이었다. 아이 울음소리에 화들짝 놀란 임 여사가 침대에서 강중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소스라치며 병실을 박차고 뛰어나간다.
"간호사! 간호사! 우리 영민이가..."
혼비백산하여 간호실로 뛰어든 임 여사의 모습처럼 간호사도 놀라 영민에게 달려간다. 임 여사는 또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망연자실했다. 자신의 말처럼 하늘도 모성애에 감동한 것일까. 보인 장면이 좀처럼 사실로 다가오지 않았다.
영민은 옆에 누워 잠든 아이 손을 꽉 잡고 있었다. 잠에서 깬 아이는 손을 빼려 했겠으나 영민이 너무 세게 쥐고 있어 아픔에 울음을 터트렸을 터였다. 간호사도 놀라 영민의 손에서 아이의 손을 빼려고 하는데, 영민이 슬그머니 손을 풀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간호사가 이를 감각했다. 임 여사보다 더 놀란 간호사가 병실을 나가 의사를 호출했다.
병실엔 아이의 울음으로 가득했지만 모두 이는 안중에도 없었다. 임 여사는 여전히 자신이 본 것이 헛것인지, 사실인지 의식하지 못한 채 반쯤 정신 나간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 얼이 빠졌다는 말은 이럴 때를 가리키는 것일 테다.
간호사의 호출을 받고 뛰어온 의사가 영민의 눈을 까 뒤집어빛을 쏘이기도 하고 이리저리 청진기를 대보더니, 다소 흥분된 듯 임 여사에게 말을 건넸다.
“속단하기는 이르나 좋은 징조입니다. 어쩌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 우리 영민이가 깨어난다는 말씀인가요?"
흔한 일은 아니나 아이 손의 감촉을 인지한 것 같습니다. 뇌가 깨어나는 시그널일 수도 있으니 우선 뇌파 검사를 해봅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봄이 여기저기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을 무렵이었다. 손가락 하나의 미미한 움직임으로 긴 잠에서 깨어난 영민도 태동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것들 봄꽃, 올망졸망한 모양으로 또는 울창한 장대함으로 계절을 치장하자 영민의 몸도 그것들처럼 피고 있었다. 어눌하지만 말도 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렀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할 수 있는 능력자가 되었으며 오장육부도 별 탈 없이 제 기능을 발휘했다.
그렇다. 행복과 불행은 반비례되는 것처럼 영민의 깨어남이 행복이라면, 하지만 이라는 부사 뒤에 들어있는 말은 불행이었다.
"영민아, 엄마 모르겠니? 여기 영식이 네 동생도 생각 안 나?"
"네,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뭐가 뭔지..."
임 여사는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땅이 꺼지는 한숨 소리였을 터였다.
"사고를 당하면서 머리에 큰 충격을 받았고, 게다가 오랫동안 의식불명 상태에 있으면서 뇌의 활동이 멈춰 기억 상실증에 빠진 것 같습니다. 일단 깨어난 걸 다행으로 여기고 몇 가지 수술부터 해야겠습니다."
임 여사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다행으로 여기라니, 무엇이 다행이라는 말인가? 큰 것을 얻고 작은 것을 잃었으니 다행이라 여기라는 건가. 큰 것은 무엇이고 작은 것은 무엇이라는 말인가? 자식 머릿속 것들이 모두 흔적 없이 사라진 바보 천치가 되었는데 어찌 다행으로 여길 수 있단 말인가.
참으로 간사한 사람의 마음이었다. 영민이 깨어나기만 한다면 남은 생애 더 바랄 게 없겠다는 생각을 했거늘 바람대로 영민이 깨어났지만 깨어난 아들이 기억 상실증이라는 의사의 말에 임 여사는 또 다른 바람이 생겼다. 기억이 돌아온다면 남은 생엔 정말 바랄 게 없다는, 그렇지만 임 여사가 바라거나 말거나 영민의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의사의 말도 한술 더 떠 이대로 지금 이전의 일들은 영원히 찾지 못할 것 같다고도 했다.
그 순간 퍼뜩 임 여사의 생각에 들어오는 이름이 있었다.
그래, 소희..."
임 여사는 실망을 희망으로 전환시키는 능력도 뛰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