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그 섬에 웃는 상괭이가 산다

6.두 번째 첫사랑

by 소안

"견디기 힘든 걸로 말하자면 여기 있는 사람 모두 너 못지않아! 황소심 그리고 상고심 준비 잘해서 좋은 결과가 나오도록 해야지, 언제까지 넋 놓고 있을래? 얼른 밥 먹고 힘내자!"


백발이 성성한 엄마 뻘의 여자가 소희의 어깨를 토닥이며 손에 숟가락을 쥐어준다. 밥상을 앞에 놓고 퍼부었던 욕설 속에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이 가득함을 느낄 수 있어 싫지 않았다.

목구멍까지 가득 차 있던 설움이 한꺼번에 밖으로 솟구친다. 소희의 오열에 억누르고 있던 각자의 슬픔이 소희를 핑계 삼아 터져 나온다. 밥상을 둘러싼 울음들이 구치소 복도를 가득 메웠다.


"시끄럽다 이 년들아, 초상났어? 청승 그만 떨고 밥들 처먹어!~" 십 년이든 이십 년이든 징역 살라면 처먹어야 할 거 아니냐?"


선임의 고함에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는 이,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나오는 이가 나름의 방법으로 슬픔을 거두고 밥상에 둘러앉는다. 소희도 눈물을 닦고 숟가락을 잡았다. 억지로 쥐어주는 걸 계속 거부하기가 거북했고 몇 끼를 건너뛴 허기가 숟가락을 들게 한 이유로 더 적당했다. 삶에 의미를 상실하여 죽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가운데, 허겁지겁 입안에 밥을 집어넣는 이율배반적인 행위는 무엇이란 말인가?

우적우적 밥을 씹는 행위가 죽고 싶은 마음에 빛이 된 건가? 그래서인지 입속의 밥은 지금 모래를 씹는 것 같았다.


"으웩!"

"봐라,. 빈속에 갑자기 밥을 처넣으니 구역질을 하지 않니? 천천히 먹어라!..."

"냄새 때문에 도저히 못 먹겠어요!"


밥상을 등지고 구역질을 하는 소희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욕설의 여인이 숟가락을 놓으며 욕 없는 말을 넌지시 건넨다.


"니 임신인가 갑다. 음식 냄새 맞고 구역질을 하는 거 보니 임신 틀림없다."


소희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달력을 보며 손으로 입을 막고 놀라움을 자제하지 못한다.


"아! 영민 씨!"


사람들의 시선도 아랑곳없이 이름이 불쑥 튀어나왔다. 포기했던 삶에 희망이 생기는 순간이다.

정당방위라며 남편을 칼로 찌른다는 사실이 없다는 국선 변호사의 변론보다, 영민과 살려고 남편을 살해했다는 검사의 공소 사실이 더 신빙성이 있다는 판결에 소희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영민과 다른 게 있다면 소희는 의식이 있다는 것뿐이었다. 오히려 그 깨어있는 의식으로 인해 영민보다 더 큰 고통의 날들을 산다.

의식을 지배하는 감옥살이는 소희의 눈에서 피눈물을 수시로 뽑아냈고, 동생들도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통에 차라리 무의식 속에 빠지고 싶었다. 이 때문에 살아 있다고는 하나, 살아있는 생명이 아닌 건 영민과 별반 다름없었다.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하루 종일 하늘만 올려다보았고, 밤이면 창살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달빛을 좇으며 마르지 않는 샘처럼 솟는 눈물을 퍼 올렸다.

이렇듯 영민의 죽음이 자신 탓이라 여기며 덩달아 죽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데, 그 와중에 영민 아이의 임신 사실이 살아야겠다는 삶의 의지에 불을 지폈다.

임신한 소희는 현실을 까마득하게 잊고 살았다. 수감 생활하는 어려움도 별것 아닌 게 되어버렸다. 영민과 자신의 아이가 생겼다는 거룩함이 징역살이라는 삶을 망각하게 했다. 영민이 떠난 자리에 영민 아이가 돌아왔다는 사실에 삶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소희였다.

목이라도 매달고 죽고 싶었던 마음이 이토록 가볍게 잠방거리며 행복함마저 들게 하다니. 역시 행복과 불행은 교차하여 끝없이 돌아가는 수리바퀴 같은 것인 게다.


"다들 잘 듣거라. 인자부터 소희는 방청소, 설거지 모두 열외다. 소희 힘들게 말그라 말 안 듣는 년 있으면 칵 직이쁜다 알겠나?"


방장의 걸쭉한 욕설 섞인 엄포에 모두 화답하며 한바탕 웃음이 피어난다. 울음이 점령했던 감방 복도에 이번엔 웃음이 가득했다.

이처럼 때론 웃다가 때론 울다가 인생이란 게 이런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게 어디 있으랴. 죽을 것처럼 아픈 불행도 영원하지 않고, 자지러 질 듯한 행복도 훼방군이 도처에 널려 있는 게 행복 그리고 불행인 것이다. 길을 걷다 갑자기 나타난 복통에 공중 화장실로 뛰어갔으나 길게 늘어선 줄. 아뿔싸, 이보다 더한 불행이 있을까. 그럼에도 뒤를 부여잡고 쩔쩔대는 고통 속에 드디어 차례가 돌아와, 뱃속 모든 걸 쏟아냈을 때의 개운함. 그건 행복일 수도 있겠다. 이처럼 행. 불행은 결코 멀리 있지 않은 것이다. 삶 속에 존재하고 있는 불행과 행복은 반드시 1:1로 찾아온다는 진리를 안다면 조금 더 행복하고 조금 덜 불행하지 않을는지.

그러므로 영원하다는 시지프스의 형벌은 역시 허구일 뿐인 것이다. 신의 영역에도 영원함은 없으리라.

영민이 죽었다는 사실, 징역을 살고 있다는 사실, 이 모든 걸 임신으로 인해 망각한 채 지냈던 날들은 그야말로 오롯한 행복이었다.

그런데 교차하는 행. 불행이 이번엔 불행의 존재가 부각되려는지 임신으로 인한 행복했던 날들은 순식간의 시간이었다. 임신기간 10개월에 겨우라는 단어를 붙여도 이상할 게 없는 짧은 시간이었다. 소희의 징역살이 기간에 비하면 새발의 피 같은 시간은 찰나일 뿐이었다. 그만큼 행복을 느꼈음이 큰 탓이었을 게다.

시나브로 불러오는 배를 어루만질 때마다 행복해하던 소희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는 지는 건 아이가 첫돌이 지나면 교도소 밖으로 내 보내야 하는 규칙 때문이었다. 아이를 키워줄 그 누구도 없음에 소희는 또 절망에 빠져들고 잠을 이루지 못하며 상실의 날들을 보낸다. 아이의 태동이 느껴질 때마다. 움칠 움칠 놀라며 아이의 미래로 인해 심연을 허우적거린다.


"아! 영민 씨 우리 아이 어떻게 해?"


모두 잠든 한 밤. 우두커니 철창밖 고요한 달빛을 올려다보며 소희는 가냘픈 어깨를 들썩인다.

달빛은 이러한 처지에 놓인 소희를 내 알바 아니라는 듯찬연함을 뽐내며 소희의 얼굴에 다가와 유유자적 거린다. 그럴 때 소희의 눈물이 달빛에 선연히 드러나있을 때. 고참의 손이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를 한다.


"소희야! 너무 걱정하지 마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더라. 내가 지금까지 살아보니 삶이 그렇더라 불행뒤엔 행복이 따라오더라. 지금처럼 불행할 때 어디쯤인가 불행을 쫓아내려는 행복이 오고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 위로가 될끼다. 니는 아직 젊다아이가? 그러니 남아있는 행복도 많을 것이니 너무 걱정 말그라. 그나저나 난이제 인생이불행으로 끝내려나 보다. 살아서 나가는 건 언감생심 꿈도 못 꾸겠고, 그렇지만 행복도 많이 누렸기에 삶에 미련 없다."


소희의 손을 잡고 조근대는 욕설의 여인 얼굴에도 달빛이 쳐들어와 눈물을 감추지 못하게 한다.


소희의 품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아기의 울음이 자지러진다. 소희 또한 페부가 찢어지는 아픔을 꾸역꾸역 참아내고 있다.


" 아이고 아이까지 감옥살이를..."


임여사가 아이를 받아 안으며 혀를 찼다.


"너 때문에 영민이가 죽은 걸 생각하면 너를 찢어 죽여도 시원찮지만 애가 무슨 죄가 있겠니? 나야 영민이 없으니 이 아이라도 위안삼아살 수 있게 되어 고맙긴 하다만 이거 하나만 분명히 해두자. 이제 아이는 없다고 생각하며 살거라. 양육권도 포기했으니 네 자식이 아니라는 걸 명심하고 징역 살고 나오더라도 찾을 생각 말거라."


양육권 포기라는 영민 어머니의 싸늘한 말투에 소희는 억장이 이 무너졌다.

소희는 아이를 보육원으로 보내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아이가 보육원에서 불행하게 성장하는 것은 영민에게 큰 죄를 짓는 것 같았다. 수형 생활을 하는 기간 동안만 보육원에서 키워 준다고 했지만, 15년이라는 세월에 아이가 어떻게 성장할지 못내 미덥기만 했던 소희는. 결국 아이를 위한 선택은 영민 어머니에게 양육을 맡기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이를 포기한다는 조건 아래 영민 어머니의 승낙을 받아냈다. 아이를 위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

울지 않으려 애쓰고 나약해지지 않으려 꾹꾹 눌렀던 설움이 끝내 한계에 이르러 폭발하고 말았다. 소희는 아기를 넘겨주고 바닥에 주저앉아 가슴을 치며 오열했다. 영민 어머니도 소희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아이를 안고 서둘러 뒤를 보인다. 자신도 눈물이 쏟아지려는 것을 보이지 않기 위한 모습이었다. 아기를 보내고 난 뒤 소희는 널브러진 채 눈만 껌벅이고 있었고, 그 모습이 정신 나간 사람처럼 온전한 형상이 아니었다. 또다시 삶의 의욕은 소희의 영혼을 빠져나간다, 걷잡을 수 없는 상실감 속에서 살아가야 할 수형 생활은 온통 어두운 가시밭길만 선연히 드러나 있었다. 삶이 왜 이 모양인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습관처럼 죽고 싶은 생각이 또다시 꿈틀거렸다. 죽고 싶은 마음이 어쩌면 습관적 가벼움이 아닌 세속의 질퍽함을 끝내고 내게로 오라는 영민의 유혹이 더 컸던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담장 너머는 지금 어떤 빛일까. 저 바람은 어떤 모습일까. 그려보지만 담장 너머의 세상은 멀고 아득하기만 했고, 저승은 너무 쉬 갈 수 있을 것 같은 마음도 더욱 생명을 갉아먹게 했다. 결국 생명의 구차함을 끊어내자는 데까지 마음이 다다른 소희.

검푸른 새벽을 올려다보는 소희의 눈은 형형했다. 휘황한 달빛을 잡은 울음은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화장실로 간 소희는 쇠창살에 끈을 묶고 끝의 올가미를 목에 걸었다. 그때와 같은 화장실이었지만 이번엔 더욱 튼튼한 쇠창살에 끈을 걸었기에 죽음이 더욱 확실할 것 같았다.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으나 비루함에 눈을 감아 눈물을 막아버렸다. 동시에 변기에 올라섰던 발을 떼자 몸뚱이는 창살 벽 쪽으로 쏠렸고, 발이 공간에서 바둥거렸다. 시야가 어둑해져 간다. 까무룩 정신이 혼미해지더니 영혼이 몸뚱이를 끝 모를 곳으로 끌고 간다. 소희의 몸이 우주를 떠도는 먼지처럼 반사적으로 허우적거렸다. 이윽고 뱀이 허물을 벗고 스르륵 사라지는 것처럼 소희의 넋도 몸을 빠져나가 허공에서 유영한다.


소희의 잠자리 위에는 편지봉투 하나가 창문을 넘어 들어온 달빛에 하얀 존재감을 보이고 있었다. 봉투에 쓰인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라는 글씨는 섬뜩함으로 소희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다. 봉투 속 글을 쓸 때 소희의 마음은 아마 구질구질한 세상에 대한 미련 따위는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을 것이고, 저 세상에서 만날 영민을 생각하며 오히려 이승을 떠나는 것이 홀가분했을 터였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새벽달이 손에 잡힐 듯 내 앞에서 유유자적 거립니다. 그 모습이 너무 탐스러워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한 줄기 바람이 창문을 비집고 들어와 얼굴을 할퀴고 지나가며 말하는 듯했습니다.

"좀 적당히 살지 욕심 내려놓고..."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내 모습을 되돌아보니, 거기에 이기심과 욕심이 욕구멍까지 차올랐던 게 보입니다. 내 불행을 덜어보려 영민 씨를 놓아주지 못했던 어리석음이....

적당히 주어진 팔자에 만족하며 살아야 했거늘, 나 하나 행복하고자 꾸역꾸역 삼켰던 욕심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적당함을 잃은 우매함이 가슴을 헤집고 나와 나의 삶을 이승과 이별하게 했습니다. 그동안 저를 사랑해 주었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짧은 삶을 마감하는 지금, 슬퍼하지 않기 위하여 이를 악물어 보는데도 슬픔이 떠나지 않는 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기고 떠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인생이란 게 살랑살랑 불어대는 바람에도 흔들리는 줏대 없는 나뭇잎 같은 것이거늘,

그리하여 저는 타인보다 조금 먼저 가는 게 전혀 슬프지 않습니다. 제가 가는 저승길에 이승의 미련이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하지만, 앞만 보렵니다.

여러분도 아주 조금만 슬퍼하며 홀연히 떠나게 해 주십시오. 저는 저 세상에서 당신들보다 더 행복하게 사랑하는 사람 품에 안겨 살 것이니, 안타까워할 필요 없을 것입니다. 태어나서 숨이 멎는 지금까지 살아온 26년의 삶을 어떻게 버텨왔는지 아실 것이니, 잘 선택했다. 잘 가라며 정답게 손 흔들며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의 삶을 통틀어 생각해 봐도 행복을 느꼈던 시간은 영민 씨와 지냈던 고작 일 년 여의 시간이 전부였다는 게 참으로 원통하기도 하지만, 그나마 운명에 짧은 행복이라도 있었으니 퍽이나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를 용서하십시오. 영민 씨와의 추억에 살아있는 동안 바둥거리고 눈물을 달고 살 것 같기에 그의 곁으로 가려함이니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참으로 억울하고 원통한 저의 살인 누명도 꼭 벗겨지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그동안 저를 사랑해 주셨던 모든 분들께 거듭 감사드립니다. 저를 사랑해 주시는 모든 분들은 행복한 삶을 사시고, 또한 행복한 삶을 마감하시길 바랍니다. 쓸모없는 제 분골일랑 영민 씨 옆에 뿌려 주십시오.

철철 흐르는 눈물을 주최하지 못하는 지금 이 밤이 지나고, 낯빛이 세상을 깨울 즈음이면, 전 이미 저승에서 영민 씨와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있을 것입니다. 고생하며 힘들게 사느니 철창에 갇혀 허우적대며 사느니, 잘 갔다고 위로하며 당신들도 기뻐하길 바랍니다.

내 영혼이 육신과 멀어져 갈 때, 어쩌면 눈물 한 방울 흘릴지 모르겠으나, 내 육신에 남아있는 눈물은 슬퍼서가 아님을 알아주십시오. 저의 얼굴에 남아있는 눈물 자국은 당신들이 슬퍼함을 예견하여 흘렸음이니, 눈물 자국에 연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동안 감사했고, 모든 분들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소희


6. 두 번째 첫사랑


고막을 찢을 듯한 앰뷸런스 소리가 멈추자, 응급실 안이 부산스러워졌다.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의 급박한 목소리에 환자의 생명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음을 알게 한다. 차에서 내리는 이동 침대 시트도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그 위에 누워있는 얼굴은 사람의 형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처참하게 짓이겨졌고, 심장박동을 이끌어 내려는 제세동기의 충격에 시체 같은 몸뚱어리가 요동친다. 혼신의 노력을 하는 의사의 처절함이 생명의 존귀함을 느끼게 한다. 작은 기계의 맵싸한 통증에 깨어난 것일까? 스러져가는 영민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영민이! 영민아!" "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밖에서 기다리세요!!"


경찰의 연락을 받고 달려온 임여사는 아들의 잔혹한 모습에 아연질색하며 절규했다. 수술실로 들어가는 영민의 생명은 인공호흡기에 겨우 매달려 간당간당했다. 살아있다고는 하나 죽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전혀 없는 상태였다.

땔감을 구하러 다니던 농부가 철로에 하얀 눈밭이 붉게 물들어 있는 것을 보고 다가갔을 때, 영민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했다.

영민의 침대를 부여잡고 오열하던 임여사는 수술실 문이 닫히자 결국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초조한 몇 시간의 어둠이 사라지고, 밤도 아닌 그렇다고 낮도 아닌 겨울 아침 여섯 시의 검푸른 빛이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몸이 너무 심하게 망가져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수술실에서 나온 의사의 말이 냉담했다. 희망도 절망도 없는 원론적인 말만 던지고 가는 힌 가운의 남자가 벽시계를 올려다보며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어떠냐는 질문에 대한 가장 합당한 대답을 들은 영민 가족들의 심장도 영민 못지않게 금방이라도 멎을 것 같은 통증을 느낀다.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는 의사의 답변은 어쩌면 가망 없다는 것에 배려가 깃든 말일지도 모른다. 희망도 절망도 없는 게 아니라, 희망보다는 절망에 확신이 든다는 말로 영식은 느껴졌다.

상황을 지켜보자는 말은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말과 같은 말이었으리라.

눈밭에 나뒹굴다 눈사람이 된 것일까? 수술실에서 나온 영민의 온몸이 붕대에 쌓여 하얀 침대 시트와 같이 미려하기까지 하다.

지금쯤이면 기찻길 옆 핏빛을 딛고 서 있던 삼나무도 평온을 찾았을 테고, 영민이 쓰러졌던 자리에도 한 겹 더 쌓인 눈이 그 잔해를 덮어버렸을 것이다.

응급실 인공 태양도 밤의 피곤에 쌓여 꾸벅꾸벅 졸고 있다. 이처럼 보이는 건 모두 감쪽같이 제 자리를 찾은 듯한데, 병실에 가득한 슬픔만 고요히 운다.


사고 조사를 하기 위해 병원에 온 경찰이 놀라지 말라며 충격적인 소식을 전할 것임을 예고했다.

놀랄 만한 말을 할 것이면서 놀라지 말라는 말이 얼마나 어불성설인가? 약 먼저 주고 병주는 겪은 경찰의 언어도단에 더 이상 내려앉을 가슴이 남아 있지도 않은 임여사는 또 긴장을 한다.

경찰의 이야기인 즉, 아들이 유부녀인 소희를 꼬드겨 집을 나오게 했고, 일 년 동안 동거했다는 것이었다. 임여사는 경찰의 얼굴을 빤히 노려보았다. 겨우 이게 놀랄 일이라고 미리 엄포를 놓았냐는 무언의 항변이었다. 영민이 일본으로 공부하러 간다며 떠난 뒤 소식이 없었기에 임여사는 이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다. 아들을 찾아 연포에 내려갔을 때는 소문의 진상이 백일하에 드러나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그랬기에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소식이라 놀기는커녕 오히려 안도할 뿐이었다. 앞으로 영민에 대한 충격적인 소식을 얼마나 많이 들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놀리지 말라며 하는 말들이 이 정도의 수위만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경찰이 해준 말은 충격이 아니라 임여사의 화를 돋우기만 했다. 경찰이 괘씸하기까지 한 임여사는 그 말을 취소하라며 아들을 변호했다.


"여기 봐요! 꼬드기긴 누가 꼬드겨요! 오히려 그 년이 우리 애를 꼬드긴 거지?"


임여사의 강력한 어필에 경찰은 그러다치자며 사과했다. 그런데 경찰의 다음 말에 임여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김소희 씨가 남편의 재산을 가로채서 김영민 씨와 살려고 남편을 살해했고, 김소희 씨가 구속되자 김영민 씨도 기차에서 자살을 시도한 것입니다."


경찰의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와 졸도를 했던 임여사는 경찰의 두 번째 소식에 또다시 졸도를 했다.

영민이 시체의 형상으로 병원에 온 지 한 달이 되었지만, 의식은 전혀 돌아올 기미조차 없어 보였다. 의사는 자신이 뱉었던 원론적인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지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의료적인 행위라고는 간호사가 병실을 들락거리며 주사 바늘만 꼽았다 뺏다 반복하는 게 전부였다. 확인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지켜본다는 의사의 말은 사실이었다. 정말 지켜보기만 했다. 가끔 눈을 까뒤집어 빛을 비춰보고 침대 머리 앞에 즐비한 가계들을 쳐다보는 모습이 있었다.


"김영민 씨는 식물인간이니까 특별히 신경 쓸 건 없고, 시간 맞춰 링거 놔주고...."

신입이라 편한 곳에 배치했어요!"


업무를 알려주는 간호사들 대화 중 영민을 가리켜 식물인간 운운하는 걸 들은 임여사는 크게 한숨을 뱉었다. 이처럼 사람들은 영민을 식물인간이라 했다. 목숨이 붙어 있다고는 하나, 숨만 쉬며 누워 있는 사람을 왜 식물에 비유할까? 계절에 따라 꽃을 피우고 사람들의 세상을 치장해 주며 숨을 쉴 수 있도록 공기를 만들어주는 식물은 참 억울하리라. 영민의 수염을 밀던 임여사가 발끈했다.


"못된 것들. 정신 나갔다고. 자리 보전하고 누웠다고 사람을 식물에 견주다니. 어림없는 소리리지 암. 어림없고 말고, 우리 영민이는 꼭 깨어날 거야!"


임여사가 그윽한 눈으로 영민을 내려다본다.


"영민아! 이제 일어날 때도 되지 않았니?"


여자는 나약하지만, 어머니는 쇠보다 강하다는 걸 증명하는 임여사이다. 그것은 자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보여주는 숭고한 어머니라는 이름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위안이 되는 게 있었으니, 그로 인해 울음과 웃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힘을 얻는 임여사이다. 영민을 보며 눈물 흘리다가 손주의 재롱을 보며 웃음이 나올 때는 소희가 고맙기까지 했다.

비록 영민이 죽었다고 거짓말은 했지만, 그것은 소희에게도 이로울 것이라는 하얀 거짓말이었기에 조금도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못했다. 어쩌면 죽었다는 말이 사실이나 다름없기도 했다. 오히려 영민의 생명은 죽음보다 더 처절한 현실에 놓여 있으니...

임여사는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는 일이 힘에 부치기도 했지만, 영민 아이가 있다는 게 힘들다는 걸 잊게 했다.


"자식 입에 밥 숟가락도 떠먹이지 못하는 작금의 날들이거늘, 몸뚱이 힘든 게 웬 말이더냐?"


손주를 업고 병실을 맴돌던 임여사의 넋두리가 애달프다.

그렇게 손주로 인해 극복해 가면 불행 앞에 이 가정은 다시 무릎을 꿇어야 했다. 설상가상이라는 게 맞을 듯하다. 신은 이 가족에게 뒤틀린 감정이라도 있는 것일까? 임여사가 병원에서 집으로 갔을 때, 손주는 머리에 피를 흘리며 숨이 넘어갈 듯 울고 있었다. 집안도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남편은 소파에 앉아 초점 잃은 눈으로 멍하니 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오줌을 씻는지 아랫도리와 소파가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기력을 잃은 아이 옆에는 리모컨이 산산조각 난 채 흩어져 있었다.

다급하게 임여사가 아이를 안고 뛰어 나가는가 하더니, 다시 들어와 전화기를 든다. 잠시 후 앰뷸런스 소리가 아파트 단지를 뒤흔들었다.


"우울증세가 심각하군요! 아드님으로 인한 좌절감이 요인인 것 같습니다. 혼자 계시면 위험하니까 입원하셔야 합니다.. "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렇게 큰 고통을 주시는지.."


의지할 사람이라곤 이제 둘째 아들밖에 없는 임여사는 영식의 손을 잡고 병원 복도에서 또 오열을 한다. 일 년 넘게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아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이 와중에 남편의 심각한 우울증 진단은 임여사를 남편과 다름없는 우울함에 빠지게 한다. 임여사는 우울증과 우울함 사이의 간극이 좁아져 자신도 남편을 닮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큰 걱정이었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우울증세로 판단력이 흐려진 남편이 자식을 이렇게 만든 건 손주라는 생각에 리모컨으로 아이의 머리를 가격한 것이라고 했다.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니 남편 앞에 아이를 데려가지 말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아이는 머리를 꿰맸고 별 이상이 없다고 했다.

영민의 병원비 때문에 은행도 가야 했고 이러저러한 일 때문에 남편에게 아이를 맡긴 게 화근이었다.


"엄마! 아버지도 형도 곧 정상으로 돌아올 거예요. 저도 있으니 절망하지 말고 힘내요!"

"그래! 영식아, 너라도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우리 아빠와 형 반드시 살려내자! "


멀쩡한 작은 아들이라도 있어 그나마 힘을 얻는 임여사였다. 꾸역꾸역 눌러 담고 있던 영식의 슬픔도 결국 엄마 앞에서 솟구치고 만다. 임여사의 손을 잡고 흐느끼는 영식은 속 안의 슬픔 반도 쏟아내지 못한다. 남편은 이 슬픔이 타인의 것인 양 멀뚱멀뚱 아내와 아들을 바라보다 이내 창밖을 좇는다. 병실의 슬픔은 나 몰라라 하듯 계절의 화룡점정은 찬란하기만 하다. 문득문득 불어오는 바람이 나무 가지 사이를 지날 때마다 꽃은 비처럼 흩뿌렸다. 그런가 하더니 언제 태양의 계절이었더냐 싶게 절기는 이글거리는 태양이 맹렬하다.

영민과 함께 입원해 있는 남편의 병세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심각성이 극에 달해 갔다. 말도 하지 않은 실어증에 게다가 음식을 거부하는 상황이 이어져 나날이 피골이 상접해 갔다. 임여사 역시 절망적인 날들의 연속에 살아있는 송장이나 다름없었다. 영식이라고 나올 게 없는 건 당연했다. 대학은 진즉에 휴학을 했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병원비라도 보태고자 낭만적이어야 할 젊음을 도탄에 빠트렸다.

입에 숟가락을 넣어주던 임여사에게 남편이 무어라 웅얼거리며 손짓을 터럭터럭한다. 그 의도를 알아챈 임여사가 물었다.


“뭐라고요? 담배 피우고 싶다고?”


남편은 밥을 우적거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밖에 더워서 안 돼요! 저녁에 해지면 가요!" 하지만 남편은 어눌한 말투와 손짓을 곁들여 나갈 것을 제촉 했다. 그런데도 임여사가 만류하자 흥분하여 밥상을 손으로 쓸어버린다.


"알았어요! 알았어, 흥분하지 말아요!"


어쩔 수 없이 임여사는 남편을 휠체어에 앉히고 공원으로 올라간다. 임여사가 담배에 불을 붙여 입에 물려주자 연달아 몇 모금 빨더니 물끄러미 임여사를 바라본다.


"담배가 그리 피고 싶었어요?"


남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윽고 우물거리듯 말을 했다.


"무.. 물.."

"뭐라고? 물 마시고 싶다고?"

남편의 변화에 저으기 놀란 임여사는 남편의 정신이 돌아오는 것이 아닐까 싶어 부리나케 옥상공원을 내려간다. 남편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았다. 휠체어를 굴려공원 끝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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