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을 잘 못 빼주는 트레이너이다.
현직 트레이너의 건강관리 에세이
학부생 시절, 월 천 매출의 트레이너의 CS강연을 들었다. 회원님의 식단에 대한 엄격한 관리와 빡센 트레이닝으로 한 달에 엄청난 감량을 시켜주면 효과에 대한 신뢰로 다시 돌아오게 된단다. 식단을 안 지켰거나 엉뚱한 걸 먹었을 시, 칼로리를 더 많이 태우도록 유산소감옥에 보내거나 인터벌 트레이닝을 시키는 등 운동강도를 더 뽑아주는 방향으로 진행했다고 한다. 식단 안 지키면 하라는 대로 안 한 회원님을 받을 수 없다며 수업을 취소하는 등의 방법까지 쓰면서 회원님한텐 호랑이 트레이너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열심히 뺀 회원님들은 나중에 도로 살쪄서 자신한테 등록하러 오게 된다고 했다. 살을 확실히 단기간에 빼주면 그 회원은 그 맛을 알고 다시 재등록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업계의 매출 비결이라고 소개했다.
당시엔 그저 그 트레이너쌤의 관리와 열정이 대단하다고만 느꼈다. 하지만, 다이어트에 대한 경험이 쌓이고 인체과학을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여성의 몸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이런 방향의 관리는 정말 무책임하다고 느낀다. 치열하게 단기간으로 열심히 살빼주는 것이 재등록의 비결이라니,, 그 트레이너쌤의 회원님에 대한 관리와 열정은 여전히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회원님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트레이너로서는 무책임한 일이지 않을까ㅜ,,
단기간으로 치열하게 살 뺄수록 돌아오는 건 요요로 인한 또 다른 문제들을 가져올 뿐 치열하게 살빼본 경험만 남는다는 걸 지금의 난 뼈저리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단기간 살을 잘 못 빼준다. 사실, 살을 못 빼주는 것이라기 보단 살을 잘 안 빼주는 트레이너라는 표현이 더 맞겠다. 그렇지만 목표치에 맞게 도달하도록 돕고 그 후론 요요 없이 잘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드린다. 회원님들은 초반엔 조급해하며 더 빨리 빼고 싶은 마음에 무언갈 더 안 먹으려고 했지만 나와의 소통으로 자신과 맞는 페이스를 찾아가며 서서히 습관을 굳힌다. 운동을 해야 한다는 건 확실히 몸소 느끼지만 살을 빼야 한다는 조급함을 내려놓게 된다. 다이어트 강박이 있을 때보다 훨씬 활력도 좋고 행복도가 높다고 한다.
우리의 몸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항상성시스템이 있다. 그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변화를 싫어한다. 변화가 크면 클수록 그 반대 작용 또한 더 크게 작동한다.
몸의 변화를 억지로 만들어 낼수록 우리 몸은 그 변화를 싫어해서 반대로 가려고 하고 그 결과가 행동으로 나온다.(예를 들면, 폭식이나 음식에 대한 갈망 등) 이걸 다 의지의 문제라고 치부한다면 아직 인체를 모른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몸을 재우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하루 이틀은 버틸 수 있어도 3일째, 우리의 몸은 자기 위해 미친 듯이 애쓰거나 에너지가 안 쓰이도록 몸의 기능을 하나씩 꺼뜨릴지도 모른다. 왜? 우리의 몸을 어떻게든 살려내야 생존하니까.
자, 그럼 우리의 몸을 살리기 위한 몸의 아우성을 의지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살을 빼는 행위 또한 마찬가지이다. 살을 빼려고 굶고 열심히 운동할수록 우리 몸은 살을 찌우기 위해 애쓸 것이다. 또한,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몸의 기능을 꺼뜨려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런 몸의 시스템을 존중해야 하며 살 빼는데 너무 애쓰지 말아야 한다. 그저 몸의 컨디션을 따라간다면 우린 그에 맞게 자연스레 몸이 바뀌게 된다. 이런 변화로 몸은 건강지표상 아무런 문제없는 표준으로 들어올 것이다.
다이어트를 하려고 하기 이전에 무기력증, 예민함, 피곤함, 활력, 체력이 없다면 지금 당장 나의 습관과 행동들을 파악해 보자. 몸은 컨디션을 좋게 하기 위한답시고 달달한 음식으로 해결하려고 하는데 이는 일시적이며 오히려 더욱 컨디션을 악화시킨다. 몸의 컨디션과 반응을 살피고 컨디션이 좋아지는 행동들에만 집중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이때에만 의지를 쓰는 것이 좋다. (최소한의 의지를 발휘하여 반복해야 할 행동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회원님들의 살을 원하는 대로 잘 못 빼준다는 것은 트레이너로서 관리도 잘 못하고 실력이 없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회원님들의 체형에 비롯한 운동 프로그램 관리, 수업에 대한 피드백을 늘 드린다. 식사도 건강과 지속성을 고려하면서 관리를 해드리고 있다. 살을 단기간에 잘 빼주는 것이 실력이라면 실력이 없어도 괜찮다. 그저 스스로 몸을 돌봐가면서 잘 먹고 잘 움직이며 활력 있는 삶, 더 중요한 것들을 놓치지 않게끔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