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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아 Sep 21. 2020

좋아하는 일도 왜 미루게 될까?

 나는 싫어하는 일을 미루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때까지 미루다 꾸역꾸역 할 때가 많다. 계획을 세우는 것을 좋아하지만 지키지 못했던 것도 이런 미루는 습관 때문이었다. 스스로 세운 계획은 지키지 않아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기에 무기한 미뤄질 때도 많았다. 하기 싫은 일을 하는 방법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냥 최대한 미루고 더 이상 도망갈 수 없을 때 시작하면 하기 싫은 일도 하게 되는 초인적인 힘이 나온다. 그리고 짧은 시간 안에 결국 끝마치게 된다. 

     

 처음에는 그렇게 만든 결과물이 아쉽고 마음에 들지 않아서 미리 하고 싶었다. 여유를 가지고 많은 시간을 들이면 더 완성도 있게 마무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찍 시작을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하기 싫은 일은 그냥 그렇게 최대한 미루다가 하기로 했다. 그리고 되도록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뒤로는 싫어하는 일들이 줄어들기도 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미루는 일이 안 생길 것이라고 믿었다. 시간이 없을 뿐이지 ‘시간만 많으면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하면서 살겠지’라고 생각했다.     

 

 일을 그만두고 시간이 아주 많았을 때 그리고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자고 마음먹었을 때였다. 나는 배우고 싶던 피아노와 기타를 문화센터에 등록해서 배우기 시작했고, 전자피아노와 기타도 샀다. 일주일에 한 번씩 문화센터에서 배우고 남은 시간에 열심히 연습하려고 했다. 그런데 웬걸 연습하는 나는 찾아볼 수 없었다. 수업 날이나 그 전날에만 선생님과 약속한 만큼 창피하지 않을 정도만 연습하는 나를 발견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간은 아주 많았고, 분명 내가 배우고 싶어서 시작한 일들인데. 나는 매일 신이 나서 연습할 줄 알았다. 싫어하는 일이야 미룰 수 있지만 좋아하는 일을 왜 미루는 걸까?      


 시간이 없어서 못한다는 것이 모두 핑계였음을 알았다. 그리고 정말 궁금했다. 왜 나는 하고 싶은 일인데 하지 않을까? 나의 결론은 둘 중 하나였다. 재미가 없거나 혹은 너무 잘하고 싶어서다. 아니면 둘 다인 경우다. 피아노의 경우 아이들이 배우는 교재로 배우니 동요를 연습하는 게 재미가 없었다. 그리고 기타의 경우에는 잘하고 싶은데 초보라 손가락만 너무 아프고 실력은 너무 더디게 늘었다. 예전에 성인 피아노 학원을 다닌 적이 있는데,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ost를 쉬운 악보로 배웠다. 그때는 3시간을 앉은자리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습했다. 결국 재미가 있어야 하고, 잘할 때까지의 과정을 그 재미로 버틸 수 있어야 한다. 기타는 아무래도 재미보다는 손에 굳은살이 배기는 고통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무엇을 하든지 재밌게 하려고 한다. 너무 잘하려는 마음을 내려놓는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면 부담감 때문에 재미가 없어진다. 그리고 스스로를 평가하게 돼서 부족함만 보인다.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후에도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그냥 일기를 쓰는 마음으로 가볍게 쓰려고 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준다고 생각하면 부담스럽다. 그래서 그냥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기로 했다. 내가 쓰는 글이 누군가에게 공감과 위로가 된다면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지만 그것이 글을 쓰는 첫 번째 이유는 아니다. 나는 내가 즐겁고 행복하기 위해 글을 쓰기로 했다. 그러니 그 마음이 변질되지 않도록 내가 재밌다고 느낄 때 글을 쓸 것이다. 그리고 재미가 없어지면 쓰지 않을 것이다. 살면서 가장 오래 한 일이 일기 쓰기였으니 아마  글쓰기는 내게 재밌는 놀이가 될 것이다. 내 인생의 모든 과정이 재밌기를 바란다. 재밌게 산다면 결과는 안 좋아도 본전이고, 좋으면 보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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