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리는 대로 살자
“그냥 아무나 돼.”
‘한끼줍쇼’라는 프로그램에 이효리가 나왔을 때, 9세 어린이에게 한 말이었다. 강호동은 이 어린이에게 커서 어떤 사람이 될 거냐고 물었고, 이경규는 ‘훌륭한 사람이 돼야지’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효리가 말했다.
“무슨 훌륭한 사람이야. 그냥 아무나 돼.”
우리에게 살면서 이렇게 말해준 사람이 있을까? 나는 살면서 계속 나를 증명하려고 애쓰면서 살았다. 착한 어린이여야 한다는 말에 항상 배려하려고 애썼다.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말에 하기 싫은 공부와 씨름을 해야 했다. 좋은 곳에 취직해야 한다고 해서 이력서 한 줄을 위한 자격증들을 취득해야만 했다. 취업은 못 하고 있지만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다고 누군가에게 나를 증명해야 했다. 그게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나였던 것 같다.
백수이지만 나는 이렇게 노력하고 있어. 오늘은 놀았지만 나는 이번 주에 공부 많이 했잖아. 노는 것에도 명분이 필요했고, 그마저도 맘 편히 놀지 못했다. 남들은 공부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과 나의 부족함을 들먹이면서 나를 괴롭혔다.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조건에 맞는 내가 되는 것이 나를 증명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항상 하기 싫은 마음이 가득했다. 그리고 아무리 나아가도 내가 생각한 나는 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정말로 원하는 길이 아니었다.
나는 항상 생각했다. 취업을 하면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취미로 해야지. 내가 진짜 원하는 일을 찾아야지.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항상 찾고 싶었다. 그래서 우선 취직하고 그때부터 생각하려고 했다. 당장 무엇이 될지 모르니 차선책으로 남들이 보기에 좋은 직장에 들어가자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하는 순간 일에 치여 사느라 또 내가 원하는 일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하고 싶은 일이 아닌 해야 하는 일을 우선순위로 뒀기 때문이다.
삶이 뒤죽박죽이라고 느낄 때,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막혔을 때 이효리의 말이 위로가 됐다. 꼭 우리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 걸까? 꼭 꿈이라는 게 있어야 하는 건가? 내가 누군가에게 나를 증명하고 인정받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 이미 가치 있고 인정받아 마땅한 존재이지 않나. 무엇이 되든, 무엇이 되지 않든 우리는 이미 멋지고 아름다운 존재인데 그것을 몰랐다. 내 앞에 계속 수식어를 달고 그 수식어로 나를 설명하려고 했다. 그저 이름 석자면 그만인데.
여전히 내가 바라는 내가 있고, 원하는 삶도 있다. 하지만 더 이상 나를 증명하기 위한 삶이 아닌 내가 행복하기 위한 삶을 살고자 한다. 그 삶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면 내가 원하는 아무나에 가까운 사람은 돼 있을 것 같다.
무엇이 되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로도 충분하다고 나에게 말해주자. 그리고 무언가 되고 싶어 지면 아무나 되자. 그런 가벼운 마음일 때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고 정말 내가 원하는 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아무나 되려고 한다. 정해진 것 없이 그냥 마음이 이끄는 대로 흘러가는 아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