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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아 Aug 03. 2020

착하지 않아도 괜찮아

착한 아이 콤플렉스들을 위하여

 나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었다. 언제부터 왜 생겼는지는 모르겠다. 부모님이나 어른들에게 착하다는 말을 듣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착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착하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더 착하게 행동했다. 언니와 동생에게 양보하고, 누군가 부탁을 하면 거절을 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무엇이든 좋고 괜찮은 아이가 되었다.


 초등학교 때 수영장을 갈 일이 생겨서 수영복을 부모님께서 사 오셨다. 갖고 싶은 것을 고르라고 하는데 부모님은 언니와 동생에게 우선권을 주셨다. 나는 당연히 무엇을 선택하든 괜찮은 줄 알았던 것이다. 사실 나는 괜찮은 게 아니라 착해야 하니까 다 괜찮은 척한 것이다. 그 날은 유독 서러웠는지 양보하라는 말에 내가 펑펑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어린 마음에 너무 서러웠나 보다.   

   

 착하다는 말을 듣다 보니 나 혼자 있을 때, 그러니까 혼자 생각을 하거나 일기를 쓰거나 할 때도 나는 착한 모습이었다. 누군가를 마음껏 미워하지도 못하고 마구 화를 내지도 못했다. 나는 착한 사람이니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런 마음이 올라오면 다시 평온해질 수 있도록 애쓰는 데 더 많은 신경을 썼다. 지금 생각해보면 혼자 있을 때라도 마음껏 미워하고 화도 내고 그렇게 했어야 했다. 마음껏 미워해야 용서도 할 수 있고, 화도 내야 다시 평온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30대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20대에도 나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최대한 상대방의 기분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중 내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일은 대학교 때 일이다. 같은 과에 함께 다니던 친구들이 8명 있었다. 그중에서 분위기 메이커인 친구가 있어 항상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몇몇 친구들은 말 수가 적었다. 분위기 메이커였던 친구가 없이 조용한 친구들만 모이게 되면 적막이 흐를 때가 많았다. 평소에 나는 들어주는 성격인데 그 친구들이 말이 없으니 내가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친구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찾았고 그런 것은 대부분 가십거리 거나 누군가를 험담하는 일이었다. 누가 그랬다더라. 걔는 왜 그랬대 등등. 아마 다 같이 모였을 때 가장 많이 하는 얘기들이 가십거리인 경우가 많아 따라서 그렇게 대화를 주도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들이 말했다. “현아 너는 부정적인 편이잖아.” 살면서 처음 듣는 말이었다.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면서 살았고, 긍정적인 편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물론 착해지려고 하다 보면 또 긍정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나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말을 듣다니. 그때 알았다. 상대방에게 맞추다가 나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그 이후로는 내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에 신경 썼다. 그리고 30대가 되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남도 사랑할 줄 안다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항상 나를 최우선으로 여겼다. 여전히 사람들을 배려하고, 최대한 상대방에게 맞추려고 하지만 딱 내가 기분 좋은 정도. 기꺼이 상대방을 위해 해주고 싶은 정도까지만 한다. 그렇게 행동해도 아무도 내게 뭐라고 하지 않는다. 대인관계도 오히려 좋은 사람들만 주변에 남는다.      


 그리고 좀 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한다. 일기에는 이제 온갖 나의 감정을 잘 토해내지만 여전히 사람들 앞에서는 좀 어렵다. 감사하고 기쁘고 즐거운 것은 잘 표현하지만, 누군가 앞에서 슬프고 화나고 힘든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서툴다. 상대방에게 내 힘듦을 공유하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사실 친구들이 내게 힘든 점을 얘기하면 어려운 이야기를 내게 말해줘서 고맙기만 하다. 그리고 힘든 일을 함께 나누다 보면 사이도 더 돈독해진다. 친구들도 내가 그렇게 해주길 바랄지도 모른다. 착하고 성숙한 것도 좋지만 나를 마음껏 풀어헤치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때로는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나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서 사는 삶 자체가 건강한 삶이라고 믿는다.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힘든 나도 세상 밖으로 꺼내봐야겠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게 착한 사람이 돼서 내 기분을 알아주고 이해해주는 것을 최우선으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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