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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아 Jul 06. 2020

희망도 지나치면 독이다

대학 시절 3월이 되면 설렜다. 개강을 하면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길 것은 느낌이 들었다. 연애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멜로드라마처럼 새로운 인연을 만날 것 같았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즐거운 일들이 마구마구 생길 것만 같았다. 그래서 학교 가는 길이 즐거웠다. 교정을 둘러보고 계절을 느끼면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수업을 갔었다. 사실 학기가 끝날 때쯤 돌아보면 내가 기대했던 만큼 드라마틱한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어떤 누구와 썸을 타기도 했고, 짝사랑을 해보기도 했고, 관심을 받아보기도 했지만 내가 생각한 멜로드라마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때가 훨씬 더 많았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매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그리고 취준생인 4학년 때에도 그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새로운 시작이 주는 힘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시작에 기대어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싶었던 것이다. 희망을 갖는 것을 좋아한다. 현실이 너무 힘들 때도 그랬고, 현실이 너무 행복해도 그랬다. 지금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서 새로운 내일을 기대할 때가 있고, 행복하다면 그 현실이 유지되고 더 행복해지기를 바랐다. 힘든 시기에는 그 희망만이 현재 삶을 버티게 해주는 유일한 내 삶의 약이었다.

하지만 그 약이 속을 쓰리게 할 때도 있다. 지금이 너무 힘들고 상황이 빠르게 기적같이 변하기를 바라는데 생각보다 내 눈앞의 현실은 더디다. 매일이 비슷해 보이고 별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면 기대감이 실망감이 들고 오히려 나를 지치게 만든다. 최근 내가 그랬다. 내가 원하는 미래가 점점 선명해지면서 오히려 조급해졌다. 이렇게 되려면 어때야 한다는 내 판단이 들어가면서 바뀌지 않는 상황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잘하고 있는데 왜 내 상황은 제자리걸음인 걸까?

사실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고 조금씩 모든 것은 변하고 있는데 내 마음만 그대로 인지도 모른다. 희망을 가지는 것은 좋지만 그것을 즐길 수 있을 정도, 내가 기분이 좋을 정도만 희망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아무리 좋은 마음도 그것이 나를 지치게 만든다면 우리에게 좋은 약이 아닌 불필요한 약이 된다. 현재의 즐거움을 누리고 지금 내가 하는 일들을 사랑하면서 지내면 미래는 알아서 설레는 일들을 제 때에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

지금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은 미래에도 행복할 수 없다고 한다. 20대 때 만났던 남자 친구가 있었다. 나는 취준생이라 취업 스트레스가 한창일 때였는데 그 남자 친구는 운 좋게 한 번에 취업이 됐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대학원을 다니면서 대상포진에 걸릴 정도로 고생했고 서류를 제외한 필기시험과 면접은 자신의 노력이었으니 운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서류통과마저 너무 힘들었던 내게는 부러웠고, 운이 좋아 보였다. 남자 친구는 한 번에 대기업에 취업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밥을 먹으면서 내게 말했다.

“나는 너도 있고, 취업도 했고, 부모님도 두 분 다 좋으신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

남자 친구는 순수한 의도로 말했겠지만 내게는 정말 배부른 소리처럼 들렸다. 본인에게는 진심 어린 고민이었을 수 있지만 취업 못한 내게 그리고 여자 친구한테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그 남자 친구는 좋은 부모님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그리고 나와의 관계도 큰 트러블이 없이 잘 지냈었다. 너무 평탄한 삶은 감사할 줄 모르게 되는 걸까? 남자 친구는 행복한 일을 행복하게 느끼지 못했다. 그때 느꼈다. 아무리 좋은 상황이어도 본인이 만족하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구나. 남자 친구는 결국 힘든 시기를 맞았다. 회사생활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 짜증은 나에게 왔고, 나는 그와 헤어졌다.

우리는 익숙한 것의 소중함을 모를 때가 많다.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많은 것들이 있는데 그것은 당연하다고 느끼고 없는 것에만 집중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변화된 삶을 기대하면서 사는 것도 좋지만 그러기 전에 해야 할 것은 지금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면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마음껏 누리는 것이다. 지금을 행복하게 살면 미래는 알아서 내게 행복한 일들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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