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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아 Jun 29. 2020

나는 항상 애매한 포지션이었다

나의 두려움과 마주하는 법

  나는 항상 애매한 포지션이었다. 뛰어나게 잘하는 것도 없고 성적도 어중간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문과와 이과를 선택할 때도 어려웠다. 적성검사를 하면 이과 쪽이 적성에 맞는다고 나왔다. 하지만 나는 수학 2까지 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문과에 뛰어나지도 않았다. 유독 국어를 어려워했다. 지문을 빨리 읽는 것조차 어려웠다. 수학은 수학포기자인 문과생들보다는 잘하는 정도였고, 이과생들보다는 한참 부족했다. 그나마 좀 더 쉬워 보이는 문과를 선택하기는 했다.     


  예체능에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무용시간에 배우는 차차차는 좋아했지만 체육은 쥐약이었다. 학원을 다니지 않았기에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은 학교 수업이 전부였다. 나는 뛰어나게 잘하는 것이나 흥미가 생기는 과목들이 없었다. 그나마 공통수학은 재밌어했지만 그것도 함수 부분부터는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공통수학 앞부분만 잘 푸는 문과생이 됐다. 졸업할 때까지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알지 못했고 나에게는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다.     


  언니와 나는 전공은 다르지만 같은 대학교를 다녔다. 우연히 같은 교양수업을 들었는데 기말고사 시험이 어떤 주제에 대한 자기 생각을 서술하는 문제였다. 나는 어떤 주제가 나올지 예상하고 그 주제에 대해 공부했다. 그리고 어떤 글을 쓸지 개요를 생각해서 갔다. 하지만 언니는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갔다.     


  나는 준비한 대로 열심히 시험지를 작성했고, 언니도 즉흥적으로 작성하고 나왔다. 시험 결과는 준비한 나보다 언니가 더 잘 나왔다. 언니는 어릴 때부터 글을 잘 썼다. 책을 많이 읽는 편도 아니었고, 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않았지만 글에 대한 재능이 있었다. 그래서 인터넷에 연재소설을 쓰기도 했었다. 그래도 시험이고 순수 창작글도 아닌데 준비해 간 나보다 언니가 점수를 잘 받은 것은 좀 충격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글을 못 쓴다고 말하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나는 재능이 없어서 무엇을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글을 잘 쓰게 됐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냥 하고 싶은 말들이 내 안에 쌓여서 표현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글을 쓰는 것이 매번 두려웠다. 지금도 두렵다. 누군가에게 내 글을 보여준다는 것이 무섭다. 스스로 글을 못 쓰고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잘 쓰고 싶은 마음’과 ‘글을 못 쓴다는 생각’이 글을 쓰는 것을 두렵게 만들었다.      


  일기 쓰는 것을 좋아한다. 일기는 나에게만 보여주기 때문에 재능이 필요 없다. 아무렇게나 써도 되니까 더 자유롭게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 그래서 살면서 가장 꾸준히 한 것이 일기 쓰기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사람들과 공유하는 글을 쓰고 싶어 졌다. 에세이라는 책도 내보고 싶어 졌다. 이뤄지면 좋지만 아니어도 좋으니 내 생각을 드러내는 연습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글을 쓰는 것이 일기를 쓰는 것과 다르게 하기 싫고 계속 미루게 됐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도 피하는 내가 이상했다. 아마도 나는 내 두려움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다. 글을 공개하는 순간 내가 재능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미루는 것도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그래서 두려움과 마주하기로 결심했다. 누가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선수 치면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그래. 나 재능 없어요. 누군가에게 들을까 봐 두려운 말들을 그냥 내가 나에게 해줬다. 그러자 정말로 마음이 편해졌다. 두려움과 마주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나는 재능이 없다. 내가 재능이 없다고 인정하고 나면 재능 있음을 증명할 필요가 없으니 자유로워진다. 그러면 글을 쓰는 것도 두렵기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쓸 수 있다.  

    

  누구한테 들을까 봐 두려운 말이 있다면 내가 나에게 먼저 해주자. 막상 듣고 나면 별 것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냥 그런 거다. 내가 재능 없어도 글 쓰겠다는데 뭐? 어쩔 건데? 그런 깡이 생긴다. 두려움을 마주하면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것은 이런 깡이 생긴다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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