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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카피 Mar 02. 2020

애정의 구성요소

고양이와 집사 사이

  저녁 먹은 후 내내 우리집 둘째 고양이 포르코가 현관 중문 앞 깔개 위에 혼자 천덕꾸러기처럼 앉아있다. 원래도 안기길 좋아하거나 애교가 많은 애는 아니지만, 그걸 감안하고 보더라도 표정이며 풍기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쓸쓸하고 삐쳤다.


  여집사는 첫째인 마야마 형아만 데리고 외출 셔틀(이동장)타고 나들이 나갔다가 한참 있다 들어오고(실은 동물병원 다녀온 것), 남집사는 며칠째 형아만 뭐가 걱정인지 감싸고 도니, 심통이든 외로움이든 도질만 하다.


  집에서 가장 구석인 화장실 앞 깔개 위에 계속 혼자 앉아있는 게 짠하고 안쓰러워 어깨에 들쳐 안았다. 포르코, 너도 사랑해 왜 그래 인석아-하고 쓰다듬어주는데, 갑작스런 화장실 물소리에 놀란(얘는 물소리 천둥소리 등 소리를 무서워한다) 녀석이 뒷발을 미친듯이 버둥거리며 나를 차고 뛰어내린다. 덕분(?)에 피를 봤다. 빗장뼈 근처에 반뼘 길이의 깊은 상처가 나 피가 줄줄 흐른다. 흉터가 남을 것 같다. 셔츠 깃 안쪽으로 드러날텐데... 지혈하고 듀오덤을 잘라 붙이면서도 내내 포르코가 신경쓰인다. 녀석도 날 다치게 한 걸 아는지 내가 뭐라 하지 않았는데도 잔뜩 주눅이 들어 식탁의자 밑에 들어가 내 눈치를 본다.  



  쿨한 척 하는 사람도, 시크한 척 하는 고양이도 별 수 없다.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애정에 민감하다. 애정은, 눈물을 흐르게 하고 피도 흘리게 한다. 살갗을 찢기도 하고 마음을 헤집기도 한다. 그렇듯 분명, 애정은 관계의 분자(分子)이지만, 애정이 아닌 다른 수많은 것들- 질투도 두려움도 열패감도 마찬가지로 그 구성요소다. 늘 집중해야 하는 것은 오히려 그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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