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카피 Mar 02. 2020

작은 오디오로 라디오 듣기

토요일 아침의 오라 노트

  언제부턴가 라디오가 좋아졌다.


  안방에 작은 오디오 시스템을 다시 놓은 것도 라디오를 듣고 싶어서다. 원래 있던 오디오를 장인 어른 드리고 나니 라디오를 들으려면 거실로 나가야 하는데, 넓고 확 트인 거실은 어쩐지 라디오를 듣기에 어울리지 않게 느껴졌다.


  TV와는 담을 쌓고 살면서 왜 라디오는 점점 더 좋아질까. 출퇴근길이 지루하지 않게 된 것도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들으면서부터였고, 침대에서 책을 읽게 된 것도 라디오를 들으면서부터다. 

 

  라디오를 듣는다는 소박한 용도에만 맞으면 되고 돈도 아껴야 하니 오디오 기기의 선택은 쉽고 간단했다. 고가인 오라 노트(AURA NOTE) V2가 아닌 1세대 오리지널 버전을 운좋게 오디오 동호회 장터에서 구할 수 있었다. 게다가 박스째 신동품! 나는 스마트폰/블루투스로 음악을 듣지 않으니 신형과 동일한 섀시와 채널당 50와트의 충분한 출력을 가진 이 구형이면 충분하다. 새벽 1시에 서울 반대쪽 끝까지 차를 달려 오라 노트를 가지고 돌아오는데 가슴이 쿵쿵 뛰었다. 그 차 안에서도 라디오를 들은 건 물론이다.


  전같으면 아무리 소박한 시스템이라도 스피커는 최소한 하이파이 대열에 넣어줄 수 있는 메이커제라야 한다고 생각했을 테지만, 이젠 그런 것 없다. 욕심 버리고 정말 내가 좋아하는 소리를 내줄 최소한의 스피커를 골랐다. 양감이 풍부하면서 가늘고 섬세한 고음을 내주는 스피커가 내 취향이다. 이런 소형 스피커라면 몇년 전부터 머리 속에서 골라둔 후보가 몇 있다. 스캔소닉의 S5, 에포스 EPIC 2, 다인오디오의 오디언스 52se 등등인데, 후보들 중 마침 좋은 조건으로 판매하는 병행수입업자로부터 큐 어쿠스틱(Q-Accustics)사의 2020i 스피커를 샀다. (52se가 제일 갖고 싶었지만 이건 너무 비싸다. 예전엔 아주 싼 스피커라고 생각하던 건데...)


  사오자마자 테스트 CD를 넣고 들어봤다. 행복하게도, 역시 스피커가 일단 너무 마음에 든다. 특이한 점은, 이 작은 인클로져에 박혀있는 유닛이 내가 거실에서 쓰고 있는 메인 스피커인 에이프릴 스테이트먼트 모델 원과 동일한 사이즈라는 것. 1인치 트위터와 5인치 미드우퍼의 조합이다. 풍부하지만 너무 흩어지지는 않는 부드러운 중저음 위에 가늘지만 선명해서 존재감이 분명한 고음이 실려 흘러나온다. 그래, 이런 소리다, 내가 원하는 소리는 언제나.



  토요일 아침 눈을 떠, 오라 노트의 전원을 넣고 라디오를 듣는다. 창으로 들어오는 부드러운 빛과 낮은 볼륨으로 듣는 부드러운 라디오 음악소리가 놀랍도록 닮았다는 걸 발견한다. 조금만 더 이런 작은 행복들을 허락받고 싶다는 간절함이 스스로 조금 슬프지만, 그런 생각조차 버려야지. 라디오처럼 소박하게, 이 작은 스피커처럼 작게.



작가의 이전글 게임 싫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