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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카피 Mar 02. 2020

게임 싫어요

스매싱과 랠리, 야구와 캐치볼


  동네 탁구모임에서 자주 뵙는 전선생님 이야기다.


  전선생님은 오십대 중후반의 남자분인데 이름을 부르거나 전씨 아저씨라 할 수 없으니 그냥 전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이 분과 나 정도가 우리 아파트 지하 탁구장에서 그나마 잘 치는 멤버라,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우리와 함께 치려고 보이지 않지만 은근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그런데, 이 정도 치는 사람이 더 없는 건 아니다. 관리사무소 멤버라 불리는 아저씨 서너 명도 실력이 우리 못지 않다. 그들은 주로 자기들끼리 모여 치는데, 다들 펜홀더 라켓을 쓰고, 큰 스윙으로  감아올리는 루프 드라이브나 무지막지하게 후려치는 스매싱이 주가 되는 탁구를 친다.


  친하게 지내지 않아서 자세히 볼 기회가 없다가 그저께 모처럼 이 멤버들이 치는 걸 멀리서 앉아 지켜봤다. 시종일관 서로 교대해가며 스코어 매기는 게임을 한다. 서브를 받는 쪽이 바로 있는 힘껏 드라이브를 거니, 거기서 랠리가 끝나거나 아니면 운좋아야 3구에서 스매싱으로 끝나거나 둘 중 하나다. 절대 그 이상 랠리가 이어지지 않는다. 득점을 한 쪽은 괴성을 지르고 주먹을 불끈 쥐며 좋아한다. 


  나와 전선생님은 게임을 하지 않는다. 그냥 드라이브와 푸시로 랠리만 계속 한다. 꽤 강하게 치는데다 가끔 스매싱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상대가 받을 수 있는 파 사이드쪽으로만이다. 아무래도 아마추어들은 백핸드가 취약하니까 실수로가 아니라면 서로 그쪽으론 공을 보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파트 지하에 탁구장이 생긴지 반 년쯤이 되니, 같이 치는 분들도 고루 실력이 오른 데다, 그중엔 동네 탁구클럽에서 레슨을 받는 분들도 있어서 요즘은 어느 정도 숫자가 모이면 게임을 하자고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특히, 레슨 꾸준히 받아서 좀 치게 된 아주머니들이 그런 경향이 있다. 그저께밤에도 나와 전씨 아저씨가 여러 아주머니 할머니들을 상대해 드리고 겨우 둘이 붙어 랠리를 시작했는데, 요즘 들어 잘치게 된 아주머니 두 분이 오더니 복식으로 게임을 하자고 한다. 보통 전선생님이나 나는 그럴 때 "제가 게임을 좋아하지 않아서요" 대답하는데 이날은 거절하기 힘든 분위기였어서 복식이 시작되었다. 아주머니 한 분이 첫 서브를 넣으려는 순간, 전선생님이 웃으며 말한다. "서브는 스핀 넣지 말고 받기 좋게 넣죠 우리" 잔뜩 몸을 꼬아 회전 서브를 넣으려던 아주머니가 머쓱하니 알았다 한다.


  옳고 그른 문제는 아니다. 그저, 관리사무소 아저씨들 같은 사람들도 있고 전선생님이나 나같은 종류의 사람도 있다는 얘길 거다. 시합이라는 건 상대가 못받게 치는 걸 목적으로 한다는 뜻이다. 랠리라는 건 그 정반대다. 상대가 받으라고, 받을 수 있게, 받기 좋게 넘기는 게 목적이다. 똑같게 생긴 라켓을 들고 똑같은 공을 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이 두 타입의 사람들은 전혀 다른 걸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회사친구와 조만간 캐치볼을 하며 놀기로 했다. 친구가 좋다며 글러브를 두 개 가지고 온단다. 나도 소시적에(^^) 야구 좀 하던 남자다. 리틀 야구단 감독이 나를 스카웃 하러 우리 어머니를 찾아온 적도 있다. 물론 어머니는 당신 아들이 다리가 불편하고, 공부를 잘해서 운동 시킬 생각은 없다고 잘라 거절하셨다. 나는 투수였는데, 꽤 공이 빠르고 특히나 제구가 좋았다. 그런데도, 나는 타석의 아이를 아웃시켜야 하는 실제 경기보다 공터나 운동장에서의 캐치볼이 훨씬 좋았다.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캐치볼은 경기를 준비하는 과정이었지만 내게는 캐치볼 그 자체가 목적이고 즐거움이었다. 나는 멀리 던지고 정확히 던졌다. 받는 아이가 신기해하면 더 신나서 온갖 묘기를 부르며 던졌다.



  사람들은 곧잘 '즐겁게 하자'고 한다. 하지만, 살아오며 경험해본 바, 정말 즐거움 그 자체에 만족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더 잘하고 싶어하고, 이기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 그건 어쩌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본성일지도 모른다. 아니,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그 본성이야말로 세상을 움직이는 동력이리라.


  그렇다고 해도, 세상엔 캐치볼을 좋아하는, 끝나지 않는 랠리를 좋아하는, 주먹을 불끈 쥐는 것보다 상대가 신기해 하는 걸 보기 좋아하는 종류의 생물이 조금은 있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건 그것대로 충분히 재미있는 일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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