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다 헛짓은 아니었다
선배님이 하시는 바에 오랜만에 친구와 갔다.
들어가 앉자마자 음악 소리가 달라진 게 느껴져서 스피커 쪽을 보니
리본 트위터가 달린 하얀색 스피커가 보인다.
눈이 나빠서 스피커 전면에 붙어있는 상표가 잘 안보였는데
인클로져의 모양새며, 리본 트위터라는 특징이며
피에가(Piega)의 스피커가 아닐까 싶었다.
술을 마시다 선배님이 오셨길래 여쭤봤더니 피에가가 맞다.
혹시 조XX 감독님이 관여하신 교체작업 아닌가요 했더니
맞다고 하신다.
그 시원시원한 리본 트위터에서 쏟아지는 고음을 들으며 어떤 생각을 했냐 하면,
아아- 살면서 해온 짓들이 다 의미 하나도 없는 헛짓은 아니었구나-다.
음악과 오디오 기기를 공부하고, 돈 쓰고, 시간 쓰고, 마음 다치고, 떠나고, 되돌아오고
그 긴 여정의 댓가로 내겐 스피커 소리를 구별할 수 있는 귀와, 그 소리를 매개로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구나...
내가 바로 알아봤다는 얘기를 전해 들으면 조감독님도 살짝 뿌듯해(? ) 하시겠지...
다른 어떤 일이라고 다를까. 어떤 관계인들 다를까.
그러니, 조바심 내지도, 스스로를 너무 엄하게 꾸짖지도 말고
마음 가는 길이 옳다고 믿으며 가야지 생각했다.
천천히, 오래오래 가야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