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전에 알게 되었고, 지금은 1년에 한 번쯤 전화 걸어오는 선배가
맥락 검토를 해달라며 100페이지 짜리 원고 뭉치를 들고 왔다.
말이 '맥락 검토'지 이건 거의 감수 수준의 헤비한 일거리다.
짐짓 정색하고
"의뢰에요 부탁이에요?" 했더니
이 순진한 선배 당황하여 쩔쩔 매며
저자 고료 줄 돈 없어서 직접 쓰고 너한테 온건데...라고 한다.
ㅎㅎ
이 선배,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1인출판사를 차려
엄청 힘들어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 알고 있던 차다.
돈 안들고 그저 내 몸과 내 시간으로 때워 도울 수 있다면
그걸 안 도울 리가!
되돌려받지 못해도, 기억되지 못해도, 먼지처럼 가볍게 여겨지더라도
도움과 사랑 말고
우리 살다 간 자리에 무슨 흔적이 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