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미국을 뜨겁게 달군 Black Lives Matter 운동을 기억하시나요? 아프리카계 미국인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가 백인 경찰에 의해 체포되던 과정에서 백인 경찰이 과잉 진압으로 사망한 사건을 시작으로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펼쳐졌습니다. 과거와는 다르게 이 운동에 수많은 기업들이 참여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로고나 제품 이름을 변경하는 등 과감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기업의 브랜드가 마치 인격체처럼 하나의 의견을 제시하거나 어떠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을 ‘브랜드 액티비즘(Brand Activism)’이라고 부릅니다. 브랜드가 사회적 이슈에 적극 참여하기 하면서 소비자는 겉만 번지르르한 브랜드보다는 브랜드의 ‘진심’에 반응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브랜드 액티비즘의 핵심은 ‘어떤 이슈를 고르느냐’가 아니라 ‘우리 브랜드의 본질과 핵심 가치가 무엇이냐’에 있습니다. 즉, 즉각적인 재미나 일회성 자극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브랜드가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꾸준히 소비자에게 보낸다면, 소비자는 브랜드를 인격이 있는 하나의 사람처럼 여기게 될 것이라는 것이 브랜드 액티비즘의 핵심이죠.
이제 브랜드는 더 이상 ‘사물’, ‘기능’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소비자는 점점 브랜드가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를 내재화하고 실천하는 바람직한 인격체이길 바라고 있습니다.
브랜드 액티비즘은 ‘마케팅의 아버지’라 불리는 미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 석좌교수는 브랜드가 사회적 이슈에 목소리를 내며 행동하는 존재가 되는 현상이라고 규정하면서 처음 개념화가 되었는데요. 석좌교수는 브랜드 액티비즘이란 공공선을 증진시키고자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겠다는 기업의 선언이라 정의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행동하는 것보다 리스크가 크다고 말했습니다.
코즈 마케팅(Cause Marketing, 경영 활동과 사회적 이슈를 연계하는 마케팅)이 마케팅에서 시작해 사회로 나아갔다면, 브랜드 액티비즘은 사회에서 출발해 마케팅으로 나아갑니다. 브랜드 액티비즘에서 소비자는 단순히 브랜드 소비 주체인 고객이나 이해관계자 역할을 넘어 브랜드 시민으로 진화하는 것이죠.
첫째, 브랜드 측면
먼저 브랜드는 기존의 브랜딩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과거 제품이 가진 차별적 강점을 홍보하여 구매를 자극하던 시대가 끝이 나고, 철학과 가치를 가지고 차별화하는 브랜드들이 등장했죠. 하지만 이는 곧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 대부분의 브랜드가 저마다의 철학과 가치를 외치게 되었고, 치열한 경쟁과 고도화된 브랜딩 속에서 크고 작은 브랜드들은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빠졌습니다. 이에 브랜드의 가치를 알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 행동에 나서는 브랜드가 생겼습니다. ‘행동’만큼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은 없기 때문이죠.
둘째, 미디어 측면
미디어의 환경이 변화하면서 브랜드 액티비즘이 더욱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각 브랜드는 SNS로 고객과 더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더 큰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는데요. SNS에서 관계를 맺는 방식을 팔로우(Follow)라고 표현하는 것도 브랜드 액티비즘 관점에서 브랜드가 전달하는 메시지와 행동을 지지하고 추종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셋째, 소비자 측면
마지막으로 소비자는 각종 사회 이슈에 대해 브랜드에 점점 더 큰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성차별이나 인종차별 문제의 경우, 대중의 의견을 정치인이나 유명인들이 대변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브랜드가 가진 철학과 가치에 따라 약자와 정의의 편에 서서 목소리를 내주기를 기대하게 된 것이죠.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정부나 정치 지도자들도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사실이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각지대를 기업들이 채우기 시작한 것이죠. 기업의 핵심 역량을 활용하여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위기 상황에서 브랜드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형성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환경문제의 경우, 지구온난화와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전 세계 환경 단체들의 노력은 굉장히 오랜 시간 진행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실제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는 실패했는데요. 이를 이어받은 생산의 주체인 브랜드가 생산 단계에서부터 환경을 고려하는 것이 사회적 분위기로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세계적인 기업들이 펼치고 있는 브랜드 액티비즘에 대해 살펴볼까요?
먼저 N사의 ‘Dream Crazy’ 캠페인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N사의 2018년 ‘드림 크레이지’ 캠페인은 브랜드 액티비즘의 촉발제가 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6년 NFL(National Footbal League) 선수 콜린 캐퍼닉(Colin Radn Kaepernick)은 미국 경찰의 흑인 과잉 진압에 반발해 NFL 경기의 국민의례를 보이콧하는 ‘무릎 세리머니’를 보였는데요. N사는 그런 캐퍼닉을 모델로 발탁하여 그와 그의 신념을 지지하는 광고를 공개했습니다.
예상대로 이 광고는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미국에서는 불매 운동이 확산되기도 했습니다.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N사는 더 큰 목소리를 냈고, 결국 광고 이후 10%의 매출 상승과 14%의 순이익을 달성합니다. N사는 브랜드 액티비즘이 가진 힘을 증명했고 이 이후 브랜드 액티비즘은 더욱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또,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키고 기후 변화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 위한 유명 의류 브랜드 P사의 ‘멸종을 마주하다(Facing Extinction)’ 캠페인이 있습니다. 이 캠페인은 ‘멸종을 마주하다’라는 슬로건으로 전 세계 2,500여 명의 P사 직원이 사무실과 매장 문을 닫고 청소년 활동가들과 연대한 캠페인인데요. 청소년 활동가들의 얼굴과 함께 이들이 파업에 나선 이유를 조명하는 캠페인 영상과 옥외 광고를 제작해 그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으며 소비자들에게 큰 지지를 받기도 했습니다.
기업은 이윤만을 추구하는 집단이라는 정의는 과거가 되었습니다. N사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입장을 내놓았는데요. 반대 여론도 심했지만 오히려 그러한 브랜드의 태도와 신념이 브랜드의 이미지를 강화시키는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제 브랜드는 상표가 아닌 정의와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인격체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기업들이 사회 변화를 어떻게 바꿔나갈지 기대가 되는 부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