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란 일상에서도 자주 쓰이는 페르소나란 그리스 어원의 ‘가면’을 나타내는 말로 ‘가면을 쓴 인격’을 뜻합니다. 페르소나는 일종의 가면으로 집단 사회의 행동 규범 혹은 역할을 수행한다고 알려졌습니다. 심리학에서나 쓰일법한 페르소나라는 말이 이제는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습니다. 바로 ‘멀티 페르소나’라는 트렌드입니다.
현대인은 하나의 개인이면서도 상황에 따라 여러 정체성을 드러내야 하는데 ‘멀티 페르소나’는 이러한 현대인의 모습을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호창’, ’매드몬스터’ 등으로 youtube에서 맹활약 중인 개그맨 이창호는 여러 페르소나를 담은 캐릭터를 연기하며 보는 사람들도 하여금 실존 인물인지 헷갈리게 만들었는데요.
인형탈을 뒤집어쓴 EBS의 “펭수”부터 유재석의 새로운 자아라 불리는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까지 모두들 그들의 진짜 모습이 아님을 알고 있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독특한 모습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멀티 페르소나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N잡러’의 탄생입니다. 다양한 멀티 페르소나가 하나 이상의 경제적인 활동으로 연결돼 발현될 때 이러한 사람들을 ‘N잡러’라고 표현합니다. 이전의 직장이란 주어진 사다리를 타고 쭉 올라가는 것이었다면 지금의 직장은 정글짐에서 다양한 모듈을 조합하면서 나의 주체성과 내 안의 다양한 직업적 흥미와 능력을 바탕으로 나만의 정글짐을 만들어 가는 것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멀티 페르소나에 바탕을 둔 다양한 직업 정체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는데, 더 나아가 다양한 정체성은 취미나 여가 활동으로 연결되어 ‘취미 부자’로 표출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SNS 계정을 여러 개 만들어 자신의 다양한 정체성을 표출하는 것이 좋은 예시라고 할 수 있는데요. Z세대의 경우 평균 두 개 이상의 SNS를 운영하며 상반된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과 정체성을 표출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멀티 페르소나가 등장한 이유를 알아볼까요?
멀티 페르소나의 등장은 과거 존재했던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희미해지면서 생겨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안하고 불확실한 미래가 지금 세대들에게 다양한 직업 정체성에 대한 관심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죠. 게다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고 여겨졌던 직군도 ‘위기’를 맞게 되면서 ‘여기서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끊임없이 고민하며 다양한 직업적 정체성을 찾는 것입니다.
멀티 페르소나가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로 소비 패턴이 독특하다는 것이 있습니다. 양면적 소비라 불리는 멀티 페르소나의 소비 패턴은 ‘가성비’와 연관성이 깊습니다. 기존의 계층적 측면에서 고가의 상품과 저가의 상품은 완전히 분리되었는데요. 멀티 페르소나를 가진 세대는 이러한 기존의 계층적 소비 패턴을 철저히 무시하고 가성비 좋은 옷들에 비싼 명품 아이템 하나 정도를 입는 식으로 저가의 상품과 고가의 상품을 동시에 소비하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프리미엄 소비와 일상형 소비를 동시에 즐기는 야누스 소비, 평소에는 저렴한 물건을 골라 구매하지만 특정 물품은 비싼 것을 구입하는 일점호화 소비 등 양면적 소비 패턴은 멀티 페르소나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멀티 페르소나의 소비 성향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저렴한 식당에서 끼니를 때우기도 하지만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것에 전혀 거부감이 없는 멀티 페르소나들은 SPA 브랜드에서 옷을 사고 샤넬 백을 사기 위해 백화점 대기 명단에 이름을 적는다고 할 수 있죠.
또한, 멀티 페르소나는 ‘취향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터에서 발현하지 못했던 자신의 정체성, 취향을 퇴근 후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신만의 취향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인데요. 가령 요가를 배우거나 러닝을 하면서 ‘워라밸’을 지키고 멀티 페르소나 중 가장 자신다운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멀티 페르소나는 자연스레 ‘젠더 프리’를 불러왔습니다. 남자와 여자에 어울리는 정체성이 뚜렷한 것이 과거였다면 이제는 그 경계가 흐려진 것이죠. 그중 도드라지는 것은 메이크업입니다. 멀티 페르소나의 대두와 함께 남성 메이크업 산업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많은 뷰티 브랜드에서도 이미 남성을 겨냥한 제품을 쏟아내고 있는데요. 멀티 페르소나로 새로운 시장이 형성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이제 다양한 자신의 페르소나를 연출하기 위해 더 다양한 스타일을 원하고 있습니다. 상황과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페르소나를 달리 표현하기 위해 직업 정체성으로부터의 자아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스타일과 다채로운 아이템으로 새로운 자신을 만들기도 하는데요. 이러한 소비자들을 공략하기 위해 기업들은 멀티 제품을 꾸준히 내놓고 있습니다.
멀티 페르소나와 소셜 미디어 그리고 새로워진 트렌드를 포착한 패션 브랜드들은 취향 정체성이 중요한 시대로 변화하면서 워라밸 트렌드와 함께 “이브닝 컨슈머(Evening consume)”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브랜드들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영입하여 새로운 모습을 소비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는데요. L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이 시대 최고의 스트릿 패션의 아이콘이 맡게 된 것도 트렌드에 맞춰 브랜드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트렌드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여러 자아를 갖는 것이 한때는 ‘병’이라고 생각했던 시대를 지나 다양한 자아를 가지고 다양한 삶을 사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되었죠. 끊임없이 자신을 탐구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고민하는 MZ 세대가 만들어내는 트렌드는 기존의 많은 것들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과연 이러한 변화가 앞으로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MZ의 행보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