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도 이제는 N차 신상
몇 년 전만 해도 “MZ세대”를 이야기하려면 많은 설명이 필요했죠. 하지만 이제 MZ세대는 “요즘 세대”를 관통하는 말로 자리 잡았습니다. 여러 기업과 브랜드들이 앞다퉈 MZ세대의 니즈를 파악하고 그들의 눈치를 보는 까닭은 MZ세대가 장악한 소비 시장이 단순히 거대해서는 아닙니다. ‘창의성, 모험심, 파급력’이라는 삼박자를 고루 갖춘 그들은 시장을 뛰어넘어 세상에 막대한 영향력을 선사하며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MZ세대의 마이크로 트렌드는 1년 이내 사회 주류 트렌드가 된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그들이 가진 힘은 막강합니다. 그렇게 MZ세대가 만들어가고 있는 트렌드 중 재밌는 트렌드가 있는데요. 바로 ‘N차 신상’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소비 트렌드입니다. 그렇다면 N차 신상은 무엇이고, N차 신상으로 변하고 있는 소비 시장은 어떨까요.
‘세컨슈머’란 Second와 Consumer의 합성어로 당장의 편리함보다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대안을 찾아 즐기는 소비자를 뜻하는 신조어입니다. 환경과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대다수의 MZ세대가 만들고 있는 하나의 트렌드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세컨슈머는 주로 중고 제품이나 로컬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경향이 ‘N차 신상’ 문화를 만들었던 것이죠.
N차 신상이 트렌드가 된 배경을 살펴보면 현재 MZ세대가 처한 현실을 파악해야 합니다. 높은 실업률과 부동산 값 폭등, 지속된 장기 불황의 중심에 있게 된 MZ세대는 소비에서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돈을 절약하고 투자하는 습관을 선호하죠. 게다가 코로나19의 등장으로 환경 보호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환경적 낭비를 줄이려는 노력과 맞물리면서 세컨슈머, 즉 새로운 제품을 소비하기보다 중고 거래를 통해 N차 사용한 제품을 사는 문화가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또한, 공유 킥보드, 공유 주택 등 공유라는 개념에 익숙해진 MZ세대에게 중고란 결국 물건을 공유하는 정도의 개념이지 예전의 중고라는 개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중고에 대한 거부감이 적어짐에 따라 중고를 단순히 ‘타인이 쓴 제품’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N차 신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죠. 이렇게 형성된 N차 시장은 거래 규모가 약 20조 원에 육박할 전망이며 이에 관련된 여러 플랫폼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N차 신상’이란 단어를 보면 직관적으로 어떤 뜻인지 와닿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상이 N차라니 아이러니한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트렌드에 민감하지만 새 제품을 사기엔 부담스러운 MZ세대는 주로 중고거래로 핸드폰, 노트북 등 전자기기를 구매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N차 신상 시장이 커지면서 플랫폼도 동반 성장하고 있는데요. 지역 기반 중고 장터 D사는 사용자가 거주하는 동네 기준으로 반경 4-6km 이내에 있는 이용자와 거래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입니다. 사용자가 모두 동네 주민이라는 점에서 신뢰감을 가질 수 있는 장점과 지역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MZ세대의 주요한 문화 트렌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중고 거래 특성인 ‘익명성과 느슨한 유대감’을 세컨슈머의 소비 형태가 단단한 유대감으로 변화시켰기 때문에 단순히 제품을 사고 팔고가 아닌 코로나19 비대면이 지속되며 코로나 블루로 대면의 즐거움이 없어진 지금,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중고거래가 활발해진 까닭은 코로나19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폐업’이란 키워드가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상위 랭크를 차지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코로나19로 폐업을 한 사업장이 물품을 중고로 내놓으면서 중고 시장이 더욱 커지고 있는데요.
이와 관련하여 좀 더 재테크 관점에서 살펴보면 한정판 운동화를 구매 후 재판매하는 ‘슈테크’ 거래도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2020년도 캐주얼화, 런닝화, 운동화 카테고리의 거래 건수는 총 50만 건이며 거래액은 전년도보다 약 20% 증가했습니다. 슈테크는 N차 신상의 선봉대장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거래 금액에서 압도적인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가수 GD와 협업으로 만들어졌던 나이키의 한 신발은 무려 1270%의 수익률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N차 신상이 트렌드가 되고 중고 시장이 커지자 왝 더 독(Wag The Dog),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현상, 즉 신상이 오히려 N차 신상에게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차별화된 디자인과 새로운 트렌드를 반영하여 기능, 품질을 앞세워 ‘신상품’을 선보이며 시장을 주도하였는데요. 특히 IT 제품의 경우 ‘얼리어답터’, ‘이노베이터’로 불리며 새로운 제품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소비자를 감각적이고 트렌드를 잘 읽는다고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세컨슈머가 유통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시작한 것입니다. 구입하는 순간부터 중고가 되어버리는 신상의 약점은 오히려 중고 시장을 키우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언박싱을 한 신제품만을 노리며 합리적인 가격에 중고 제품을 거래하기 시작한 것이죠. 이젠 새로운 제품을 사기 위해 백화점이나 인터넷 오픈마켓을 가는 것이 아닌,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더 합리적인 가격으로 언박싱한 새 제품을 구매하는 것입니다.
중고 제품은 지속 가능한 소비를 실현시켜준다는 점에서 만족감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만족감을 얻으며 지역 기반 커뮤니티에서 중고 거래는 계속 성장하고 있는데요. 단순히 저렴하기 때문이 아니라 중고 거래를 통해 취향 공동체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각박한 비대면에서 ‘관계 맺음’ 문화가 형성된다는 점에서 N차 신상 문화는 우리가 지금 어떤 것을 갈구하고 어떤 것이 결핍되었나를 방증하는 결과이기도 합니다.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작은 행복이 필요한 지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