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인제의 겨울은 혹독하다. 평생 볼 눈 구경을 이곳에서 다 하고 있다. 눈이 왔다 하면 많이도 내린다. 눈이 오고 나서도 잘 녹지 않는다. 기온이 좀 올라가는가 싶어도 눈은 그대로다. 쌓인 눈이 살짝 녹다가 다시 얼면 빙판이 되는 게 이곳 일상이다. 그래서 매일 뉴스 대신 날씨정보를 챙긴다. 이곳에서는 일기예보를 맹신할 수밖에 없게 된다.
춥다, 춥다 해도 이 정도로 추울 줄 누가 알았으랴. 머리로는 알았다. 산골이니 당연히 춥겠지, 서울보다 북쪽에 있으니 추위를 잘 대비하겠다고 다짐했지만 현실은 암담했다. 아파트가 아닌 시골 한옥집에서의 겨우살이는 도시엄마를 주눅 들게 했고, 운신의 폭을 확 좁히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빨래하러 공용 세탁실로 향하는 길이 꽁꽁 얼어 엉금엉금 기어가듯 걸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문득 서러움이 밀려왔다. 도시 생활의 편리함을 포기하고, 이 불편한 생활을 감수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싶어서였다. 세탁기가 집 안에 없다는 사실이 그토록 서럽고 슬플 수가 없었다. 원래 펜션으로 사용되던 집이니 거주하기에 적당하지 않다는 것쯤은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그런데도 그날 세탁실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거웠고, 내 마음도 어두워졌다.
열흘 전, 이곳(브런치)에 쓴 글의 주제도 인제의 눈이었는데 그 뒤로도 많은 눈이 내렸다. 이 글에 첨부한 사진은 최근에 찍은 사진이다. 그때 나의 기대감을 이렇게 담아냈다.
아파트 생활의 안온함을 뒤로하고, 굳이 고생길을 자처한 내게 인제의 겨울은 무엇을 보여주고, 가르쳐주려나. 이 겨울이 끝나갈 때는 조금은 계절의 변화와 위력 덕분에 더 겸손하고, 차분한 내가 되어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 '엄마, 여기가 겨울 왕국이에요!' (2023.12.19 글 중에서)
오늘과 내일을 보내면 새해가 찾아온다. 여전히 혹독한 인제의 겨울 덕분에 고단하지만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문득 캐서린 메이의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라는 에세이집의 한 부분이 떠오른다.
그 어떤 계절보다도 겨울에는 가장 어두운 박자로 똑딱거려 우리에게 봄으로 향하는 멜로디를 부여하는 일종의 메트로놈이 필요하다. 어찌 됐든 한 해는 흘러가겠지만 그 시간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 박자를 느끼고 변화의 순간들을 인식함으로써, 시간을 들여 한 해 중 다음 국면에 우리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봄으로써, 우리는 그 시기를 가늠할 수 있다. - 캐서린 메이,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중에서
강원도 인제의 겨울은 혹독하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윈터링'을 하고 있다. 나는 겨울의 박자를 온몸으로 타고 있는 중이다. 겨울이 지나 새 봄이 찾아왔을 때, 나는 나만의 박자와 멜로디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눈이 더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만 덜 추웠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