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시골이 궁금해요. 가보고 싶어요.
어느 날, 큰 아이가 물었다. 엄마의 시골이 궁금하니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것이다. 친정 부모님 두 분은 결혼하자마자 서울에서 사셨고, 시어른들도 도시에서 자라 여전히 도시에서 사신다. 그러니 우리 아이들에게 '시골'이란 여행이나 가야 만날 수 있다. 어딜 가든 그곳이 아이들에게 시골이 되었지만 조부모님이 태어나 자란 곳이 궁금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부모님의 고향에 간 지 꽤 되었다. 두 분의 고향은 경북 울진군의 한 작은 마을인데 한 마을에 사셨기에 내게 친가와 외가는 200 미터 떨어져 있을 만큼 가깝다. 지금 이 마을에는 나의 외할머님만 집을 지키고 계신다. 운이 좋은 편이다. 한 번에 두 곳을 다 갈 수 있으니 말이다.
마침 나도 휴직 중이고, 아이도 시험 기간이 아니라 마음을 모았다. 그래, 이번 기회에 가보자. 마침 친정 부모님도 고향집을 간다 하시니 우리 둘도 함께 가기로 했다. 남편과 작은 아이는 집에 남겨뒀다. 이번에는 각각 아이들이 외동놀이를 즐기기로 한다.
토요일 이른 새벽길을 나섰는데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시골에 도착했다. 아이는 한껏 들떴다. 시골집에서는 스무 걸음만 걸으면 바닷가에 도착한다. 집 안에서도 바다가 보일 정도니 그야말로 '오션뷰 숙소'인 셈이다. 생선회에 봄나물까지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려진 밥상 앞에서 아이는 행복해했다. 천천히 꼭꼭 씹어 먹으라 말해도 아이는 그저 신나게 먹을 뿐, 말이 필요가 없었나 보다.
엄마에게도 이곳은 제2의 고향이죠? 엄마도 좋으시죠?
그렇다. 친정부모님은 모두 7남매 중 맏이로 K 장남, K 장녀의 표본이시다. 덕분에 나의 어린 시절 가족여행지는 모두 동일했다. 바로 이곳, 울진의 시골집이었다. 어렸을 땐 이 먼 길을 오는 게 세상에서 가장 싫었다.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가족여행으로 부산이나 제주도에 가고 싶었다. 하다못해 롯데월드나 에버랜드에도 간 기억이 없다. 어린 시절의 가족여행은 곧 시골에 계신 할머니를 뵈러 가는 것과 같은 말이었으니까.
내 아이와 이곳을 다시 찾으니 상황이 달라졌다. 정말 이곳에 내겐 또 다른 고향인 것 같았다. 오랜만에 탁 트인 바다 앞에 서니 속이 다 시원해졌다. 지난 1월 말 강원도 인제살이를 마치고 돌아온 뒤로 한동안 두문불출한 탓인지 여행이 고팠을지도 모르겠다. 바다 앞에서 아이도 나도 해방감을 느끼곤 많이 웃었다. 어깨에 긴장감도 내려놓고, 깊은숨을 내쉴 수 있었다. 오길 잘했다.
제법 오래 머물다 돌아갈 예정이다. 아이는 공부할 것들을 잔뜩 가져왔지만 외할아버지를 도와 밭을 갈고, 외할머니와 함께 쑥을 캐고 다듬기도 한다. 열다섯 살 아이에게 수학공식, 영어 단어도 중요하겠지만 이런 경험도 소중하지 않을까? 아이가 더 자라 힘든 순간에 이곳의 기억을 더듬으며 힘을 낼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아들아, 함께 와줘서 엄마가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