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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워킹맘 Jun 23. 2024

마흔다섯 번째 생일에 받고 싶었던 선물


엄마, 오늘 저녁에 파티해요. 케이크 사 올게요!



마흔다섯 번째 생일 아침, 큰 아이가 생일 파티를 하자고 했다. 나는 제발 그만두라고 했다. 우리 집 먹돌이들이 케이크 한 판을 다 먹어치울 게 뻔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케이크라면 정신을 못 차린다.)


엄마는 케이크 괜찮아. 그냥 노래 불러줘.
그거면 족하다.


아이들은 시무룩한 척했다. 내가 아이들을 알듯, 아이들도 엄마의 본심을 안다. 엄마가 괜찮다고 하는 건 다른 의미가 또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엄마가 케이크를 좋아하는 것도, 엄마의 마음은 언제나 뒷전이라는 것도 말이다.


생일에 뭐 받고 싶어? 옷 사줄게.


남편은 생일 선물로 뭘 받고 싶냐고 했다. 복직하면서 제대로 된 옷을 사주고 싶어 했지만 제발 그만두라고 했다. 살이 쪄서 옷 태가 나질 않아 옷을 사고 싶지 않았다. 일단 갖고 있던 옷을 깔끔하게 바꿔 입으면 된다고 손사래 쳤다. 남편은 이런 내게 늘 불만이다. 다른 여자들처럼 옷, 구두, 가방을 욕심껏 사들이는 쪽이 더 낫겠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똑같은 답을 내놓는다.


물건이 아니라, 시간을 선물로 주세요. 제발.


젠가로 만들어준 사랑해요 메시지


결국 다 싫다고 했지만, 큰 아이는 제 고집대로 케이크를 사 왔다. 대신 엄마의 잔소리가 걱정스러워 가장 작은 크기의 케이크이었다. 초 개수가 너무 많아 보여 하나만 꽂았다. 두 아이들의 생일 축하 노래는 힘차고 신바람 났다. 그래, 엄마의 생일에 너희가 빠질 수 없지. 문득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게 태어나 가장 잘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혼자 보내는 생일은 좀 쓸쓸할 것 같았다.


생일날 퇴근 후 집 앞에서 운동하고 돌아오니 젠가 조각이 거실 바닥에 '사랑해요'라고 외치고 있었다. 아이가 가장 아끼는 장난감 총과 칼로 하트도 만들어 뒀다. 생일 선물, 편지보다 더 근사했다. 순간 왈칵 울 뻔했다. 멋졌다. 이런 선물을 받는 나란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구나 싶었다.

장난감 총과 칼로 만들어진 하트


결국 원하던 대로 물건 대신 '시간'을 선물 받았다. 내 고집도 참 대단하다. 값비싼 보석과 가방, 옷 대신 남편의 긴 포옹까지 선물 받고 나서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했다. 45년이라는 시간을 나름 잘 살았지만 내게 남은 삶을 더 근사하게 꾸리는 게 중요하다.


내년 생일엔 여름 바다를 보러 가야겠다. 내 생일은 장마가 시작되기 직전에 있으니까. 혼자 있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을 선물 받는 쪽도 좋을 것 같다. 혼자만의 시간은 틈틈이 시간을 쪼개서 즐기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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