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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환자가 직장에서 겪는 어려움

by 글쓰는 워킹맘
저는 우울증 환자입니다.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복용하고 정기적인 진료를 받고 있습니다.


나는 풀타임으로 일한다. 회사에서 가장 민감한 이슈를 다루는 부서에 있다. 입사 19년 차인 내가 우리 팀 막내일 정도로 팀원 평균 나이가 40세를 넘는다. 다들 일을 정말 잘하고, 많이 한다. 나도 그에 못지않지만 우울증 진단을 받고 나서는 자꾸 사고(!)를 친다. 하지 말라는 것부터 하질 않나, 하라는 건 또 늦게 하지 않나... 그래서 공개적으로 밝혔다. 나는 우울증이 있어 약도 먹고 치료도 받고 있으니 도와달라고 말이다. 누군가에게 도와달라고 말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웠던 나였다. 우울증이라는 병은 사람을 이렇게나 바꾼다.

pexels-cottonbro-8443469.jpg 출처 : https://www.pexels.com/


우울증 진단을 받고 직장에서 겪는 어려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내가 가진 천성 (근면 성실함, 완벽주의) 덕분에 겨우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직장에서 힘든 점들을 적어보자면, 대강 이렇다.


- 집중하기가 힘들어졌다.

- 일에 우선순위를 정해 중요한 것부터 하기 어려워한다.

-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에 긴장한다.

- 편한 사람을 제외한 이들과 대화를 나눌 때 몹시 긴장한다.

- 가능하면 점심 먹는 자리를 피하고 싶다.

- 제대로 듣는 능력까지 떨어진 것인지, 다시 되묻는 게 공포스럽다.

- 일을 너무 급히 처리하거나 아예 잊을 때가 있다.

- 상사의 지적에 큰 타격을 받는다.


참고로 나는 회사에서 밝고, 활달하고 성실하다. 잘 웃고 반응도 잘한다. 그러던 내가 이렇게 소심한 사람으로 바뀌다니. 180도 바뀌어버린 내 모습이 낯설고 당황스럽다. 그래도 매일 아침 아이들 응원을 받고 출근할 때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난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구나!


예전에는 '오늘은 얼마나 대단한 성과를 보여줘야 할까'로 출근길을 열었다. 이제는 다르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할 수 있기만을 바란다. 중간에 집으로 도망가고 싶어 져도 꾹 참고 아이들 얼굴을 떠올린다. 나는 나아지고 있다고 되뇌면서 말이다. 어쩌면 이 회사 건물 안에도 나처럼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우울증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 것도, 부서에 우울증임을 알리게 된 것도 내겐 운 좋은 순간이다. 당분간 근무하면서 장애물을 만난 듯 난감할 때가 있겠지만,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는 생각에 힘을 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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