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우울증 환자입니다.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복용하고 정기적인 진료를 받고 있습니다.
나는 풀타임으로 일한다. 회사에서 가장 민감한 이슈를 다루는 부서에 있다. 입사 19년 차인 내가 우리 팀 막내일 정도로 팀원 평균 나이가 40세를 넘는다. 다들 일을 정말 잘하고, 많이 한다. 나도 그에 못지않지만 우울증 진단을 받고 나서는 자꾸 사고(!)를 친다. 하지 말라는 것부터 하질 않나, 하라는 건 또 늦게 하지 않나... 그래서 공개적으로 밝혔다. 나는 우울증이 있어 약도 먹고 치료도 받고 있으니 도와달라고 말이다. 누군가에게 도와달라고 말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웠던 나였다. 우울증이라는 병은 사람을 이렇게나 바꾼다.
우울증 진단을 받고 직장에서 겪는 어려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내가 가진 천성 (근면 성실함, 완벽주의) 덕분에 겨우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직장에서 힘든 점들을 적어보자면, 대강 이렇다.
- 집중하기가 힘들어졌다.
- 일에 우선순위를 정해 중요한 것부터 하기 어려워한다.
-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에 긴장한다.
- 편한 사람을 제외한 이들과 대화를 나눌 때 몹시 긴장한다.
- 가능하면 점심 먹는 자리를 피하고 싶다.
- 제대로 듣는 능력까지 떨어진 것인지, 다시 되묻는 게 공포스럽다.
- 일을 너무 급히 처리하거나 아예 잊을 때가 있다.
- 상사의 지적에 큰 타격을 받는다.
참고로 나는 회사에서 밝고, 활달하고 성실하다. 잘 웃고 반응도 잘한다. 그러던 내가 이렇게 소심한 사람으로 바뀌다니. 180도 바뀌어버린 내 모습이 낯설고 당황스럽다. 그래도 매일 아침 아이들 응원을 받고 출근할 때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난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구나!
예전에는 '오늘은 얼마나 대단한 성과를 보여줘야 할까'로 출근길을 열었다. 이제는 다르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할 수 있기만을 바란다. 중간에 집으로 도망가고 싶어 져도 꾹 참고 아이들 얼굴을 떠올린다. 나는 나아지고 있다고 되뇌면서 말이다. 어쩌면 이 회사 건물 안에도 나처럼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우울증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 것도, 부서에 우울증임을 알리게 된 것도 내겐 운 좋은 순간이다. 당분간 근무하면서 장애물을 만난 듯 난감할 때가 있겠지만,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는 생각에 힘을 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