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먹고 운전하지 마세요.
그랬다간 큰일 날 수도 있으니까요.
중증 우울증에는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함께 처방받는다. 처음엔 하루에 두 번, 아침저녁으로 약을 먹는데 아침 출근 전 약을 먹고 나면 몽롱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교수님은 신신당부를 하셨다. 아침에 약 먹고 혼자서, 운전하지 말라고.
다행히 남편과 함께 출근하니 운전할 일은 없어 다행이었다. 그런데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지하철을 타거나 택시를 탔다. 약을 먹고 나면, 모든 감각이 둔해지는 기분이 들었으니 예민하게 반응해야 할 때 반응하지 못한다면 큰 일이었다. 우울증 약은 불안에 덜덜 떠는 나를 잠재워주니 고마웠지만 둔해지지 말아야 할 감각도 잠재워버리는 듯 강력했다. 약의 힘을 이렇게 느껴보기는 또 오랜만이었다.
주말에도 운전할 일이 있으면, 낮에만 잠깐 운전대를 잡는다. 그럴 때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혹시 실수로 사고라도 내면 어쩌나 싶은 것이다. 항불안제를 먹어도 불안함이 다 사라지진 않는다. 어쩌면 이 약은 '난 불안하다. 불안해서 견딜 수 없다.'라는 사실을 잊게 해주는 건 아닐까.
이 약은 진정 및 안정 효과를 나타냄으로써 각종 불안장애를
개선하는 약이지만, 구역, 구토, 변비, 설사나
맥박 속도가 불규칙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줄이거나 중단하지 마세요.
중요한 것은 성실히 약을 먹고, 임의로 판단해 약을 줄이거나 중단하지 않는 것이다. 우울증 약을 먹다 보면 잠시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컨디션이 좋아지고, 기분도 가벼워지면 내가 언제 우울증이었냐며 자만에 빠진다. 슬그머니 약을 그만 먹어도 되겠지, 싶은 마음이 들지만 그때가 가장 위험하다. 우울증 치료를 시작하면서 다짐한 것은 절대 혼자 판단하고 결정짓지 말자는 것이다. 내 멋대로 치료받을 거라면 그리 큰 용기도 필요하지 않았을 테니까.
분명, 나을 수 있습니다.
환자분은 절대 혼자가 아닙니다. 이것만 기억하세요.
내겐 주치의가 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 절대 혼자가 아니다. 오늘도 어제보단 조금 더 나아졌다고 믿는다. 알람을 맞춰두고, 잊지 않고 약을 챙겨 먹는다. 예전보다 더 일찍 푹 자려고 노력한다. 적당히 먹고, 최대한 자주 웃으려고 애쓴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다시 우울의 늪에 깊이 빠져들더라도 이 사실만은 기억할 것이다. 약을 먹지 않고, 언제든 운전대를 잡아도 불안하지 않은 상태가 되도록 오늘도 우울증과 담담히 동행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