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밝은 대낮에 별을 보지 못하듯, 삶의 신성한 가치가 살아 있을 때는 그것을 망각하고, 삶이 평온할 때는 삶의 가치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영원한 별들이 얼마나 찬란하게 하늘에 떠 있는지 알려면, 먼저 어두워져야 합니다. - 슈테판 츠바이크,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중에서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평소엔 당연히 여겼던 것들이 우울증에 걸리면 당연하지 않게 된다. 한없이 우울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다가도,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들이 있다. 당연한 줄 알았던 매일의 일상, 그토록 가기 싫었던 회사, 매일 부대끼는 사람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이다.
언제나 찬란히 빛나는 별들이 당연한 줄 알면 소중함을 잊는다. 그래서 내가 먼저 어두워져야 할지도 모른다. 우울증에 걸린다는 것은, 소중한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잠시 어둠 속에 나를 두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근사한 야경을 보려면 내가 머무는 곳이 일단 어두워야 한다. 환한 곳에서 야경을 볼 수는 없으니까.
우리의 심장은 너무 작아서
일정량 이상의 불행을 감당하지 못한다.
- 슈테판 츠바이크,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중에서
무엇이 나를 '그럼에도' 살아가게 하는가. 온종일 업무에 시달리고 후다닥 퇴근길에 올랐던 오늘 저녁, 붉게 타오르는 저녁 해를 보며 눈물이 났다. 우울해서 눈물이 나는 게 아니라 기뻐서였다. 평소보다 더 크고 환하게 지던 저녁 해의 에너지에 마음을 빼앗기고 잠시 울었다. 나의 심장은 오랜 시간 불행함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에 안심했다. 적당히 고통받고 점차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에 기운이 났다. 그렇다. 나를 '그럼에도' 살아가게 하는 것은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이다. 떠오르는 해보다 지는 해에 더 마음이 가는 것도 우울증 덕분일까.
우리는 어떤 상황이나 만남이 우리 삶에 어떤 결정적 영향을 미쳤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이따금 가져야 한다. - 슈테판 츠바이크,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중에서
우울증 환자에게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또는 '내가 뭘 잘못해서 우울증에 걸렸을까'라는 자문자답은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 그저 지난 삶을 담담히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 그것만 생각하면 된다. 이런 시간조차 제대로 가지지 못한 채 앞만 보고 달리느라 우리는 메말라간다. 나도 모르게 껍데기만 남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만 있다면!
오늘 밤 약을 먹기 전 펴든 슈테판 츠바이크의 미공개 에세이집을 읽고, 또 읽는다. 내일을 위해 얼른 자야겠지만, 가끔은 책을 읽다가 자정을 넘기는 순간도 사랑스럽다. 이런 순간이 모이고 모여 '그럼에도' 나를 살아가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