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해를 보면서 딱 30분만 걸으세요.
이것도 숙제로 드립니다.
이 추운데 산책이라니! 교수님은 중증 우울증 치료를 위해 아침 산책을 숙제로 내주셨다. 꼭 아침에 하라고 했다. 이왕이면 아침 해를 보면서 가볍게 걸으라고 했다. 보름간 병가를 내고 있었으니 아침 산책은 할 수 있었다. 숙제라고 하니 의욕이 좀 생겼다. 시키는 건 앞뒤 가리지 않고 참 잘도 해내는 나. 어쩌면 나의 성향을 완전히 파악한 교수님의 작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산책을 해야지, 마음먹으면 산책하고 싶지 않아 질 수도 있다. 그래서 꾀를 냈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갈 때도 걸어갔다. 쓰레기를 버리러 집 앞에 나갈 때는 일부러 동네를 크게 한 바퀴 돌았다. 출근하지 않고 집에만 있으니 나가는 일도 쉽지 않았다. 억지로 나갈 일을 만들어 그 핑계로 더 오래 걸었다. 처음엔 3 천보, 다음 날엔 6 천보를 걷다가 어떤 날엔 1만 보가 넘게 걷다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추워도 걷다 보면 땀이 나고, 잡념이 사라졌다. 우울한 생각이 들다가도, 당장 숨을 헐떡거리며 걸으니 우울감도 줄었다. 역시, 내게 필요한 숙제였던 셈이다.
걷기는 나다워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압박과 사회적 그리고 개인적 책임감으로 인한 긴장을 풀어준다. - 다비드 르 브르통, <느리게 걷는 즐거움> 중에서
우울증 환자에게만 산책이 좋겠는가. 우린 늘 머리에 열이 가득하다. 사무실에서 일하다 보면 점심시간이 되지도 않았는데,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를 때가 있다. 몸은 의자에 갇힌 채, 모니터 앞에서 머리로 씨름하다 보면 열이 절로 난다. 9시간 내내 긴장하고 있으니 목디스크가 낫지도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잠시라도 산책할 수 있다면 대부분의 긴장과 부담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 모른다.
산책은 불안을 누르고, 창조성이 밖으로 표출되도록 한다. 산책은 감수성을 훈련하는 것이다. 매일 산책하는 습관은 매일 건강을 지키는 습관이다. - 줄리아 카메론, <새로운 시작을 위한 아티스트 웨이> 중에서
우울증 치료를 받으면서 절실히 느끼는 게 있다. 마음의 건강은 곧 몸의 건강과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반대도 성립된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약해지고 병들 가능성이 높다. 몸과 마음은 하나다. 그런데도 우린 이 진리를 모른 척하고 산다. 우울증도 병이다. 약을 먹고, 열심히 치료받아야 하는 마음의 병이자 몸의 병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가 성공적으로 지금 이 순간에 초점을 맞춘다면, 언제나 마법과도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인 '오늘'에 집중하면 우리는 우리가 '오늘 하루' 성취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 줄리아 카메론, <새로운 시작을 위한 아티스트 웨이> 중에서
지금, 그리고 여기 (Here and NOW) 있게 머물게 하는 일 중 하나가 바로 산책이다. 우울증의 시작은 지나치게 과거를 후회하고, 다가올 미래를 두려워하는 것에 있다. 산책하는 순간만큼은, 그 순간에 머물 수 있다. 우울증 치료를 위한 매일 아침 산책은 특효약이었다.
다시 출근하면서 아침 산책은 어려워졌다. 그래도 점심시간엔 꼭 산책을 한다. 회사 주변을 걷기도 하고, 조금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갔다가 오기도 한다. 걸으면서 오전 내내 쌓였던 긴장과 불안감을 털어낸다. 아직 오후가 남았지만,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를 토닥거려 본다. 아직 완치되지 않은 나의 우울증은 오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을 거라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