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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 우울증 언제 죽음을 생각할까

by 글쓰는 워킹맘


얼마나 자주 '죽음'을 떠올렸나요?
언제 죽음을 생각하게 되나요?


본격적으로 우울증 치료를 시작하려면 검사부터 받아야 한다. 어느 정도 상태인지 정확하게 알고, 약물 치료를 시작하게 된다. 처음엔 100개가 넘는 객관식 문항을 고르는 것조차 힘들었다. 우울증 증상 중 하나는 선택, 결정이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4개의 문항 중 하나를 고르는 일에도 에너지가 들어간다. 그 에너지조차 바닥이 나버린 상태가 우울증이다.


객관식 문항에 답을 하고 나면 주관식 검사도 받아야 한다. 문항 수는 줄어들어도 손으로 써야 하니 쉽지 않다. 하지만 난, 질문에 답을 하는 일만큼은 성실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시험도 아닌데 열심히 답을 썼다. 마치 100점이라도 맞고 싶은 학생처럼 말이다.


그때 받았던 질문 중 하나는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흔히 우울증, 하면 자살로 연결시키곤 한다. 그러니 이런 문항이 포함되는 건 당연하다. 얼마나 자주, 죽음을 생각하는지 빈도수가 중요할 것이다. 처음 진료를 받았던 지난 12월, 나는 생각보다 자주 죽음을 생각했다. 구체적으로 '죽고 싶다'는 마음은 아니었다. 우울증은 곧, 죽음이 아닐 테니까.


그렇다면, 언제 '죽음'을 생각하는 걸까. 가장 우울할 때일까. 화가 나다 못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질 때일까.


pexels-augi-883441.jpg 출처 : https://www.pexels.com/


끝없이 나를 탓하고 또 탓할 때, 더 이상 탓할 것이 없어진다. 지금까지의 (잘못되었다고 믿는) 선택을 한 나를 견디지 못할 때 그때 죽음을 떠올렸다. 나를 이런 지경에 밀어 넣은 주범이 '나'라고 굳게 믿었다. 나를 이렇게 만든 '나'는 용서받기가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약물 치료를 시작하기 전, 나의 마음 상태는 한마디로 '사라져 버리고 싶다'였다. 19층 우리 집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는 1층 주차장이 가깝게 느껴졌을 때,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아 눈물이 나던 그때, 나를 붙잡아준 것은 남편과 두 아들이었다.


절대 혼자 있지 마세요.
특히, 혼자서 술 드시지 마세요.
괴로울 땐 가족을 기억하세요.
환자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동네병원에서 대학병원으로 옮겨 진료를 받던 첫날, 교수님은 "죽고 싶어지면 택시 타고 응급실로 와서 나를 찾으라"라고 했다. 마음이 아픈 것도 응급상황이니 응급실로 오라는 말이었다. 맥주도 안된다며 혼자 술 마시지 말라고도 했다.


그럼요, 혼자 술 마실 일 없습니다.
응급실에 갈 일도 없을 겁니다. 설마요, 교수님.


절대 그럴 일 없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했는데, 놀랍게도 교수님의 예측은 정확했다. 휴가를 내고 집에 혼자 남겨졌을 때, 맥주 한 잔이 생각났다. 맥주 반 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냉장고에 묵혀둔 맥주 캔을 따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이 맥주 한 모금에 나는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 순간 곁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따놓은 맥주캔을 싱크대에 버리면서 울었다. 시키는 건 참 잘하는 나인데, 왜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있나. 내가 나를 통제하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두려웠다. 내가 나를 어찌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은 생각보다 공포였다. 병원 응급실까지 갈 일은 만들지 말아야 했다.


우울증이 의심된다면, 아래 문장을 적어두고 잘 보이는 데 붙여두면 도움이 된다.


- 나는 나아지고 있다.

- 나는 혼자가 아니다.

- 내겐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

- 내 탓이 아니다. 내 잘못이 아니다.

- 나는 나를 사랑하고 아낀다.

- 나는 매 순간 나를 돌보고 사랑한다.



2주 간격으로 병원 진료를 받고, 매일 약을 먹는다. 최대한 일상을 단순하게 만들고, 수시로 내 안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글을 쓴다. 나는 나아지고 있다. 당연히 나아질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래오래 웃으며 살아갈 것이다. 또다시 내 탓을 하고, 나 스스로를 벌주고 싶을 때 죽음을 생각하지 않도록 오늘도 내 마음을 살피고 또 살핀다. 40대 중반에 나를 찾아온 우울증이 저주가 아니라 선물이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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