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마흔살의 워킹맘 성장기록
마흔이라는 나이는 특별하다. 두 아이들을 키우며 풀타임 근무를 하는 워킹맘에게, 왠지 마흔이 되면 뭐가 달라도 달라야할 것 같다. 가슴이 답답해지는 압박감이 든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온 것일까.
어린 시절 상상했던 나의 마흔은 어땠던가. 마흔은 불혹(不惑)이라는데, 여전히 나는 많은 것에 흔들리고, 미래를 걱정하며 불안해한다.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그 나이는 내게 어떤 의미인가. 2019년, 마흔을 맞이하는 우리들은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까.
인생의 긴 여정에서 모범답안이란, 없다.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로 이어진 12년 간의 '모범생 코스프레' 덕분에 나는 네모난 틀에 갇혔다. 모범답안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 믿었다. 그 답안대로만 살면 행복해질 줄 알았다. 시키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주어지는 과업을 해냈다. 그 과정 속에서 의심한 적이 없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 정답대로만 살면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인정받으며 성공한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철석같이 믿었다.
어이없게도 나는 정말 그랬다. 순진했던 걸까. 어리석었던 걸까. 둘 다였겠지. 부끄럽게도. 어느 순간,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이제 더 이상 모범답안 찾느라 헛수고하지 않겠노라고.
오랫동안 벗어날 수 없었을 것 같았던 그 생각의 틀에서 벗어난 건 작은 사건 덕분이다.
1년 전 가을, 약 석 달 간 회사에서 파업에 동참했다. 파업 기간 내내 집회에도 나가고, 살림과 육아를 맡아 해나갔다. 시간은 넘치는데, 월급이 들어오질 않으니 돈이 없었다. 남편도 한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고, 노조원이기까지 했으니 어땠겠는가. 부부가 3개월 간 월급 없이 지냈던 그 때, 의외로 돈보다는 마음이 힘들었다. 내가 없어도 회사는 문제 없어 보였으니까.
나는 언제든 다른 누군가로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아니, 끝까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회사의 인정을 받기 위해, 스스로를 만족시키기 위해 얼마나 나 스스로를 괴롭혀왔는지 잘 알았기에 더 그랬다. 회사에서 일했던 13년이라는 시간은 내게 말하고 있었다. '이제 정신을 차릴 때도 되었잖아? 알아서 틀을 깨고 나올 때야, 바로 지금!'
돈은 없고, 시간은 많았던 그 때 나의 마음이 우주에 전달이라도 되었던 것일까. '워킹맘'으로 검색해 찾아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여러가지 미션을 함께 해나가는 엄마들을 알게 되었다. 새벽기상, 독서, 운동, 자녀교육까지척척 해내는 그들에게 반해버렸다. 나도 동참하고 싶어졌다. 다른 엄마들의 이야기를 눈으로만 보다가 조금씩 미션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새벽에 일어나 기상시각을 인증했고, 매일 읽을 책과 분량을 공유했고, 외국어를 혼자 공부하는 것도 함께 해 나갔다. 인증을 해야하니 억지로라도 매일 미션을 이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하루도 빠짐없이 달려온 결과는 이렇다.
새벽기상 209일 째, 매일 아침 모닝페이지 작성
감사일기 312일 째, 매일 눈 뜨자마자 5가지 감사한 것들 기록
독서리뷰 266건, 박경리의 <토지> 21권 전권 완독
<영어회화 100일의 기적>, <일본어회화 100일의 기적> 완독
<중국어회화 100일의 기적> 84과 진행 중
셀프주간코칭노트 49주차 작성
회사와 집만을 오고갔던 내게 일어난 작은 변화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걱정만 하다간 나의 마흔살은 없어질 것 같았다. 작은 것이라도 기록하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되도록 해보려고 했다. 잘 안되더라도 일단 해봐야 후회가 없을테니까. 2018년은 내게 '도전하고, 또 도전했던 시간'이었다. 덕분에1년 전 써뒀던 버킷리스트 중 벌써 한 가지를 이뤘다.
바로,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이다.
영원히 동경만 하다 끝날 줄 알았던 이 곳에, 마흔으로 향하는 나의 성장기를 기록하겠다. 특별히 잘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뭔지 몰랐던 나를 살려준 '글쓰기'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다. 하는 일, 사는 곳, 결혼여부, 자녀유무를 따지지 않고, 온라인에서 연결된 예비 마흔살 여성들과의 '연결'에 관한 이야기 보따리도 풀 수 있다.
그것 뿐이겠는가. 나는 워킹맘이다. 10살(초3), 5세(유치원)가 되는 두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엄마의 이야기도 있다. 그러고보니, 나도 가진 게 많았는데 특별한 게 없다며 불평만 늘어놨다니, 부끄럽다.
이제 나의 이야기를 선물 보따리로 바꿔보자. 어쩌면 나와 같은 고민을 했거나, 지금도 하는 중인 분들께 조금 위로가 되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나의 버킷리스트 1순위에 적혀있는 꿈은, 세상에 도움이 되고,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글을 쓰는 것이다. 나처럼 평범한 워킹맘도 나름의 성장을 하고 있으니 그런 나를 보며 용기를 내보는 한 사람이 있기를 바란다.
더 이상 마흔이 되는 그 날을 디데이로 적어두고, 가슴 졸이며 시간 보내지 않겠다. 좀 더 웃고, 더 편안하고, 가슴 뛰는 마흔의 삶을 살아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