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때 아이들 데리고 어디 갈래? 가고 싶은 곳 있어?
이미 강원도 인제로 이사해 시골 생활을 시작한 지 두 달째. 어느 날 남편이 물었다. 추석연휴에 이어 길게 휴가를 냈으니 가고 싶은 곳에 가자고 말이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미 여행을 떠나오듯 시골로 왔는데, 또 여행을 가자고?
그러고 보니 휴일이면 어디든 가자고 졸라대던 (과거의) 내가 겹쳐 보였다. 남편은 집에 있어야 푹 쉬는 사람인데, 쉬는 날만 되면 밖으로 나가자고 성화였으니 얼마나 귀찮고 성가셨을지. 이제야 그 마음이 이해되어 미안하고 고마웠다. 마누라의 역마살 때문에 언제나 고단한 쉼이었으리라.
두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를 가야 할까 고민했다. 추석이니 국내여행은 꺼려졌다. 차라리 인제에서 열흘 정도 함께 있을까도 싶었다. 인제 주변 동네를 섭렵해 나가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인제에서 가까운 곳은 양양, 속초, 고성, 양구, 춘천, 홍천 정도가 된다. 나름 계획을 세워 남편에게 말했더니 반응이 영 별로였다. 열흘이면 유럽을 가도 되는 거 아니냐며 내 생각을 멈춰 세웠다.
순간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일본의 작은 도시가 떠올랐다. 시코쿠 지역의 다카마쓰라는 곳이었다. 국내 항공사로는 에어서울이 유일하게 취항하는, 인구 43만여 명의 도시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아이들과 동행하기에 대도시보다는 마음이 편한 곳이 아닐까 기대되었다.
아이들 좋아하는 가락국수 먹으러 갈래요? 다카마쓰는 어때요?
내가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 김영하, <여행의 이유> 중에서
남편이 OK 하자마자 모든 것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비행기 티켓을 구하고, 에어비앤비로 집을 얻었다. 아이가 둘이다 보니 호텔에서 묵기가 쉽지 않은 터라, 에어비앤비를 자주 이용하기에 꽤 넓은 크기(일본 숙소 치고는!)의 집을 찾는 데 성공했다. 그랬더니 약간의 활력이 생겼다. 김영하 작가의 말처럼 나는 언제나 과거를 후회하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생각하며 불안해하는 사람이라 여행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인 걸까. 일주일 간,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 '그림자'로부터 탈출할 수 있을 것인가.
이미 (강원도 인제살이를 하며) 여행 중이면서도 또 여행을 떠나는 내가 마음에 든다. 여행할 때마다 아이들이 부쩍 큰 것을 알게 되듯 나도 이번 여행으로 좀 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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