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도 발 뻗고 잠이 옵니까?

[직장] 하루 한 페이지 나를 돌아보는 글

by 김형준

파푸아뉴기니 현지에서 도로공사를 진행 중인 'J건설사'에서 채용공고가 올라왔다. 국내에 근무하며 현지에 필요한 물품의 구매조달을 담당할 직원을 뽑았다. 자신 있는 업무 포지션이었다. 근무조건도 괜찮았다. 가장 맘에 든 건 집과 가깝다는 거다. 출퇴근 20분은 더 이상 좋을 수 없었다. 다행이 입사가 결정되었고, 연봉도 이전 보다 10%더 받는 조건이었다. 대부분 입사 첫 날은 선임에게 회사 분위기와 업무 파악을 위한 설명을 듣게 된다. 같은 부서에 직급은 아래였지만 먼저 근무 중인 직원이 있었다. 그를 통해 회사 분위기를 들었다. 그는 첫 마디부터 불만을 늘어놓았다. 한참을 듣고 있자니 그럴꺼면 왜 다니고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첫 날부터 이런 얘기를 듣는 내 입장은 생각 안 하는 것 같았다. 마치 이렇게 안 좋은 회사니 발들이기 전에 잘 판단하라는 식이었다. 한 시간 가량을 듣고 나니 의문이 들었다. 그가 한 말이 다 사실일까? 사실이라도 내가 겪지 않았으니 판단하긴 이른 것 같았다. 그가 보고 느낀 것과 내가 경험 한 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설령 그와 같이 느낀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내 선택이었고 내 몫이라 생각했다. 그의 말 중 맘에 걸린 하나는 완벽한 ‘패밀리 컴퍼니’라는 거였다.


결과부터 말하면 첫 날 그가 한 말은 100% 사실이었고, 발을 들이지 말았어야 했다. 감히 말하는데 내 인생 최악의 회사였다. 원칙 없는 경영 마인드, 용처가 불분명한 자금흐름, 존중 없는 기업문화, 의심과 모략 말 그대로 막장 난장판의 극치로 안 좋은 건 다 하고 있었다. 2년 정도 근무하며 별의별 일을 다 겪었다. 회사는 크게 국내 지원 부서와 현지 시공과 운영 부서로 나뉘었다. 큰 사위(회장으로 불렀다)가 실질적 오너였다. 그도 사업 초기 눈물 적은 빵을 먹던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파푸아뉴기니의 가능성을 보고 사비를 털어 현지 관료와 접촉하며 국책사업을 따기 위해 동분서주 했었다고 한다. 포기할 무렵 운 좋게 파푸아뉴기니 주 정부의 힘 있는 관료 눈에 띄어 도로공사를 수주하게 되었다. 적게는 수 십 억, 많으면 백억이 넘는 공사를 보증도 없이 계약하고 상당액의 선금을 받아냈다. 그 돈으로 국내와 현지에 회사를 만들었고 공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갖은 고생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운이 따랐기에 가능했다고 했다. 행운은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이에게 기회가 되지만 그렇지 못한 이에겐 재앙으로 끝날 수 있다. 그들은 몰랐던 것 같다. 자신에게 주어진 행운이 최악의 재앙이 될 수 있었다는 걸.


회장은 신용 문제로 대표로 이름을 올릴 수 없어 아내 명의로 회사를 세웠다. 아내를 대표로 앉히고 그녀의 가족 전부를 회사에 이름을 올렸다. 아버지는 전무, 여동생은 회계부장, 남동생은 공사부장, 여동생의 남편은 장비기사, 압권은 국내사무실 임대료를 어머니에게 주고 있다는 거였다. 이들 중 직책에 맞는 전문가는 남동생뿐이었고, 그마저도 현지 사업과는 결이 달랐다. 사업 초기 현지 현장 개설을 위해 다양한 장비를 투입해야 했었다. 워낙 열악한 곳이라 현지에서 조달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었다. 몇몇 장비는 국내와 해외에서 들여오는 게 싸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중고 장비를 구매해 선박을 이용해 운송했고 그 과정을 되 짚어보니 말도 안 되는 부분이 여기저기 숨겨 있었다. 연식과 상태대비 지나치게 비쌌고, 구매과정도 불투명했다. 교량을 짓기 위해 꼭 필요한 크레인의 구입 과정은 가관이었다. 국내에서도 충분히 구입 가능한 제원의 장비를 굳이 독일까지 간 건 운송비를 아끼기 위했다면 이해할 수 있다. 더 어이없는 건 크레인의 필수 제원인 보조 붐대(전도 방지 역할로 이 기능이 없으면 국내에서 운행이 불가능 함)도 없는데 국내 유통 가격보다 더 비싸게 샀다는 거다. 상황이 안 좋아 현지로 못 보내고 국내에서 매각하려 했으나 보조 붐대로 인해 이마저 불가능했다. 이밖에도 상식적으로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 뜰채로 멸치를 낚듯 줄줄이였다.


5년도 더 지난 일들을 이제와 글로 옮기는 데는 이유가 있다. 상식으로 이해 안 되는 그들의 행태를 알리고 싶었다. 부실경영으로 체불 된 급여를 해결하려는 노력에 미안해하기보다 직원을 도둑으로 모는 비양심적인 행태를 고발하고 싶다. 나이 어린 이유만으로 자신의 종처럼 부렸던 비인간적인 사장을 드러내고 싶다. 한 사람의 인격을 개인적 감정과 언어폭력으로 피폐하게 만들었던 그들의 덜 성숙된 인성을 드러내고 싶다. 부족한 글 솜씨지만 하나하나 낱낱이 끄집어내고 싶다. 그들의 부도덕함을 많은 이들에게 알림으로써 기업을 운영하는 이들의 도덕적 책임이 무엇인지 상기시키고 싶다. 그들의 생각 없는 행동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었는지 알려주고 싶다. 그들 중 누군가는 앞으로 쓰게 될 글을 꼭 봤으면 좋겠다. 어쩌면 그들에겐 잊힌 일이 되었을 수 있지만 아직도 그때의 일로 고통 받는 이가 있음을 알려주고 싶다. 죄짓고 잘살 수 없다는 걸, 결국 죄 값을 치르게 될 거란 걸 어떤 형태로든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알렉상드르 뒤마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비난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일은 그것 때문에 우리가 불리해진다는 것이다.”


이 말은 사람을 함부로 대하면 결국 자신에게 해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상대방을 존중하면 자신도 존중받고, 상대방을 함부로 대할 때 그 순간은 별일 없어도 지나고 나면 어떻게든 자신에게 해가 되어 돌아오게 된다. 그래서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고 한다. 이런 단순한 진리를 깨우치면 타인과 더불어 살게 되고, 그렇지 못하면 껍데기뿐인 관계로 살게 된다. 사람이 사람을 비난하는 경우를 회사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잠시 몸담았던 J건설의 대표가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의 위치와 힘을 이용해 직원들에게 무차별 비난을 날렸다. 마치 내일은 없는 사람처럼 지금 순간에 최선을 다해 바닥부터 퍼 올린 비난을 날렸었다. 그런 오너가 있는 회사는 정수기에 물통 바꾸듯 직원이 자주 바뀌며 회사이미지도 안 좋아지고 결국 필요한 인력을 제때 채용하지 못한다. 오너는 이런 경우 문제의 원인을 자신이 아닌 외부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직원의 자질을 탓하거나, 참을성이 없다고 단정지어 버린다.


J건설을 다닐 때 경리부에 띠 동갑 정도 되는 여직원이 있었다. 사회생활 경험도 적었고 착하고 여린 성격을 갖고 있었다. 작은 부탁도 거절 못하고, 힘들 땐 힘들다는 말도 못하는 스타일이었다. 여사장은 이런 점을 악용했다. 평소엔 세상 좋은 큰언니처럼 편하게 대했다. 그러나 술만 마시면 태도가 180도 달라진다. 술자리 시작부터 몇 차가 이어지든 끝까지 자신의 곁에 앉혀준다. 이유는 편하게 술을 마실 수 있게 자신의 손발로 부리기 위해서다. 다른 사람들과 마신 뒤에도 시간에 상관없이 꼭 불러내 괴롭힌다고 했다. 그 여직원은 싫어도 싫은 내색을 못했다. 술자리에서 보이는 여사장의 이중적인 모습에 겁을 먹고 있기 때문이다. 여사장은 수시로 농담 반 협박 반으로 그녀를 꼼짝 못하게 겁을 주었다. 또 여사장은 가깝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돈을 빌리기도 했다. 수 백 만원을 사장과 직원이 아닌 언니 동생이란 이름으로 빌렸고, 퇴직하고도 돌려받지 못했다고 전해 들었다. 여사장은 정도는 덜 했지만 맘에 들지 않는 남자 직원에게도 서슴없이 비난을 퍼부었다. 2년 정도 다니며 짧게는 두 달, 길면 육 개월을 버티지 못한 직원이 굴비 한 두름은 되었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파푸아뉴기니와 필리핀을 오가며 프로젝트를 관리할 임원을 뽑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조건은 50대 후반의 다양한 해외 경력과 영어도 가능해야 했다. 십 여 명 면접을 본 끝에 비슷한 조건을 가진 한 분을 채용했다. 이때 면접을 위해 A4 한 페이지 분량의 질문지를 만들만큼 심혈을 기울인 채용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분은 입사 후 한 달을 못 채우고 쫓겨났다. 아니 여사장에게 폭행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입사가 확정되고 며칠 뒤 파푸아뉴기니로 입국했다. 입국 후 며칠은 업무 파악을 위해 사무실과 현장을 오갔다고 한다. 적응 될 즈음 여사장의 주관으로 현장직원들과 임원이 함께하는 술자리를 가졌다고 한다. 취기가 오를 즈음 여사장의 주사가 시작되었고, 이런저런 말이 오가던 중 임원의 행동이 맘에 안 들었던 사장은 결국 뺨을 때렸다고 한다. 술만 마시면 안아 무인이 되는 추태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평소 현장 직원들도 여사장의 이런 태도에 불만이 많았지만 월급을 위해 참아왔었다고 한다. 나도 국내에 있을 때 여사장의 행동을 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일이 있고 임원은 서둘러 귀국했다. 이런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여사장은 국내 직원들에게 임원이 불미스러운 일을 저질러 부득이 돌려보내게 되었다고 거짓말까지 했다. 이 일이 있기 전에도 현지 업무를 위해 채용된 대부분의 직원들이 비슷한 사건을 겪고 몇 달 만에 돌아온 일이 부지기수였다. 사정이 이러니 국내에선 일 년 내내 채용공고를 올렸고, 구매를 담당하던 나는 뜻하지 않게 면접관 역할까지 해야 했다.


여사장은 사람을 쉽게 대했다. 파푸아뉴기니의 낯선 환경에서 능력 있는 직원끼리 똘똘 뭉쳐도 원하는 성과를 내기 어려운 실정이었지만 이를 아랑곳 않고 자신의 기분대로 직원을 대했다. 이 과정에 비난과 모략, 욕설과 하대를 아무렇지 않게 했고, 결국 회사가 문을 닫을 때 어느 누구도 안타까워하는 이가 없었다. 그들 모두 당연한 결과였고,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했다고 입을 모았다.


여사장은 사람 귀한 줄 몰랐다. 특히 해외의 척박한 환경에선 직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몰랐다. 나가면 다시 뽑으면 된다는 무지와 자신의 태도에 일말의 자책도 없는 당당함이 잘 나갈 수 있는 사업을 스스로 꼬꾸라지게 만든 장본인임을 알아야 했다. 물론 대의를 위한다면 여사장에게 충언하는 직원도 필요하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부하직원 의 충언도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을 가진 오너 에게만 효과가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본 여사장은 그 정도 그릇을 갖지 못했다. 오히려 역성과 월권이라며 쌍욕을 안 먹으면 다행이었다.


다음에 계속........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잠재력을 깨우는 한 가지